정글에서 산맥까지 Ep. 6
다툼은 항상 사소한 것에서 발화점이 되어 폭발한다.
아침 6시. 수정은 잠이 아직 고스란히 남은 눈을 비비며 비몽사몽 농장 가는 준비를 한다. 이제 일복을 입으려는데 전날 필립이 사다준 긴 셔츠가 없는 것이다. 여태 목이 늘어진 반팔을 입고 일했는데 이것은 열대야 생활 초보자 티를 내는 실수이다. 목 뒤, 팔이 강렬한 햇빛에 지져지고 가축들이 선호하는 날카로운 풀잎에 상처를 입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물어보지 않아도 될 것을 물었다. 필립은 당연하게 같이 일하는 언니에게 주었다는 것이다. 별거 없는 일이 성가시게 되면서 오랫동안 쾨쾨히 묵힌 때들이 뜨거운 물 한 바가지에 불어나듯이 일이 커졌다. 잠자코 자고 있는 애를 깨운 것이다.
수정과 필립은 이 사소한 일을 빌미로 평소에 쌓아두었던 불만을 토해내며 서로를 할퀴고 뜯었다. 그리곤 잠시 동안 침묵이 흘렀다. 그들은 연인인 동시에 일동무이니 서로의 눈을 피한채 오토바이에 말없이 올라탔다.
해안가 마을 팔로미노에서 그들의 농장까지 가는 여정은 특별하다. 콜롬비아 최북단 캐리비안 해안을 가로지나 가는 유일한 Troncal del Caribe 고속도로를 60km/h로 5분가량 달리면 시원한 바닷가 바람과 함께 양옆은 온통 초록색으로 도배된다. 그리곤 San Salvador 골짜기로 들어가는 흙길이 나온다. 건기에는 조약돌과 흙이 섞여있으며 우기에는 흙탕물이 잔뜩 고인 길을 15분 정도 지난다. 양옆 농장에는 소, 말, 닭, 노새, 공작들이 매일 그렇듯 먹이를 찾고 있으며, 간간이 지나는 동네 사람들은 항상 밝은 미소를 띠고 있다. 그리곤 깊지 않은 계곡이 나타난다. 뒤에 탄 수정은 바지를 걷고 필립의 신발을 들며 한발 한발 찬물을 건너면 드디어 농장에 도착한다.
그날은 그만큼 특별한 날인지 순탄치 않았다. 이제 흙길을 달리기 시작했을 때 어젯밤 강하게 내린 비로 인해 고여있는 흙탕물의 깊이가 평소의 발목 위를 훌쩍 넘어 종아리 밑까지 올라와 건너는데 애를 먹었다. 핸들이 요리조리 왔다 갔다 하던 도중에 한층 더 미끄러워진 진흙탕에서 그만 오른쪽으로 쓰러진 것이다.
가스탱크에 물이 들어간 오토바이를 진흙탕길에서 빼려고 하니 진땀이 났다. 언덕바지에서 오토바이를 땀이 뻘뻘 나게 밀어도 보았지만 시동은 켜지지 않았다. 계속되는 땡볕과의 싸움에 힘이 들었다. 수정은 왠지 오늘 아침 시비를 걸어 시작돼 다툼이 이 결과를 낳은 것 같아 더욱더 미안했다. 그렇게 30분간 흙탕물과 오토바이 사이에서 씨름을 하고 있을 때 동네 우유 아저씨가 지나가다 오토바이를 멈췄다.
“무슨 일이니?”
그들은 자초지종은 설명했고 아저씨는 최대한 도움을 주셨다. 몇 분이 지나자 동네 청년 둘이 가던 길을 멈추고 그들을 도왔다. 그렇게 아이들, 청년들, 아저씨들이 모이고 모여 총 7명이나 그들의 오토바이를 옹기종기 에둘러싸며 아이디어를 내기 시작했다. 결국엔 어느 또래보다 훨씬 성숙해 보이는 남자아이가 오토바이에 올라탄 후 청년들이 뒤에서 힘껏 밀자 묵묵부답이었던 엔진이 그제야 대답을 했다.
몇 번이나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고 수정과 필립은 농장 가는 길에 다시 올라탔다. 그 짧은 길에서 많은 감정이 오고 갔다. 옷 하나에 다툰 응석받이인 자신이 부끄러웠고 콜롬비아 시골인심에 감동하였다. 농장에 가는 길은 도시의 정갈한 길보다 험하지만 그만큼 더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