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하다. -1

2026/01/16

by 나무느을보

허물어져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여름철에 피어오른 이끼에 서서히 잠식되어가다 가을이면 그 섶으론 낙엽이 높다랗게 쌓이곤 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 자리에 있었다. 아스팔트 사이서 불어나온 골바람을 맞고 그 자리에 우뚝 서 있었다. 사람들은 그 사실을 알아차리고 있지 못한다. 그 역겨운 것이 땅으로부터 늙은 고목의 뿌리처럼 기어 나와 모든 것을 집어삼키려는 것을 그들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본래 건물의 일부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이제 아무것도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가끔 사람들은 그 벽담에 담배를 비벼 끄고 그을음을 묻혀놓곤 하지만 그 무례한 작용에도 그것은 아무런 반항도 없이 굳세게 버티어 섰다. 저항시를 쓰는 노인이 떠오른다. 하지만 그는 지금 작은 막집에서 폐병을 앓고 있다. 폐병이 그 작은 난쟁이 같은 막집에 깃들었고 숨을 거칠게 끄르는 소리가 방에 울려 퍼지곤 한다.


벽담은 바람을 움키는 법도 없다. 그것은 안과 밖도 없이 바닥에 빌붙어 있을 뿐이다. 저항시를 쓰던 노인은 무엇으로부터 저항하기 위해 시를 쓴다고 했던가. 분명 군부나 지구 반대편에서 행해지는 폭력과 부조리에 관해서 쓰고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그 일이야말로 부조리하다. 대체 골방에서 썩어가는 이의 말이 어떤 저항을 불러일으킨단 말인가. 그야말로 만용이고 난봉이다.


오래 전부터 그 벽담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자연녹림을 회복한다는 우습지 않은 목적으로 그 건물은 허물어졌지만 실은 그렇게 거창한 말이 필요하지만은 않았다. 그 건물은 세입자가 들지 않았고 건설사는 도중 서 도산했다. 다른 사정은 모른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 중턱만 지어진 마천루가 볕을 가린다는 일은 분명해보였다. 그 디오게네스와 알렉산더대왕의 만담 같은 사정으로 그 건물의 잔해는 철거되었고 벽담만이 남았던 것이다.


지금 벽담은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은 굳세게 버티게 섰다. 나는 사물이 썩어갈 때까지 바라볼 용기는 없다. 게다가 그것은 사과와 같이 벌레를 꾀지도 않는다. 그것은 기껏해야 비둘기의 집이 될 것이다. 그리고 결코 썩지 않을 것이다. 썩지 않음. 그 방부가 내 시선을 좌절시킨다. 나는 폴 세잔이 아니다. 그토록 관조할 수 있을 정도로 인내심이 강하지도 못하다. 다만 벽담. 그 벽담이 내 시선을 잡아끈다. 콘크리트의 벽돌로 얽어 짓고 그 안에는 철근이 자리했을 것이다. 그것은 망치질로도 쉽게 부서지지 않았다.


그 곁으로는 커다란 팽나무가 있다. 팽나무는 쓰러지듯이 자라나 빗물에 휘감기면서 내려앉았다. 그러나 죽은 것 같지는 않다. 그 찢어진 단면으로 벌레의 다리나 촉수같이 풍부한 것들이 뻗어 오르고 있다. 시각은 오후 3시하고도 반시간이 흘렀다. 첫 번째로 변화가 피어나는 순간이다. 해가 중천에서 고개를 틀고 벽담의 음영이 자리했다. 그것을 만족스럽게 바라본다. 돌아갈 차례이다. 골방의 노인에게 저녁참을 내와야한다. 그는 나무처럼 무력하다. 스스로 쌀을 씻고 밥을 짓는 법을 평생 해본 적이 없다. 당장 그의 몸도 이기지 못하는 이가 저항시인이다. 교육자로 일평생을 살았으면서, 스스로 밥 짓고 몸을 살찌우는 법을 모른다. 재작년에 그 아내가 죽었고 그는 집안에 필요한 것들을 갖추려 나를 들였다. 나는 몸종인 셈이다.


그의 집엔 상패와 명패와 갖은 직함들을 상징하는 것들이 즐비 한다. 그것들은 찬장에 무위 롭게 서 있다. 벽담처럼 잿빛으로 서 있다. 저항시인의 눈에 깃들었던 총기도 스러졌다. 처음에 이 근방에 왔을 적에 울 장소를 찾다가 산중턱에 비어지듯이 선 벽돌담을 발견했다. 그곳은 나의 울음못(池)이 되었다.


나는 이제 젊지 못하다. 굳세게 살고자 했지만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배우기도 많이 배웠지만 인문이란 이젠 스러져 가는 좁은 문으로 전혀 쓸모가 없었다. 덕분에 나는 생계를 위해 다른 일을 구해야만 했다. 처음 문학가 출신의 노인을 돌보게 되었을 적에는 나는 그것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나는 문학가라는 사람들에게 어떠한 선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운이 좋다면 그가 문장을 쓰고 퇴고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심히 게을렀다. 그의 몸은 병을 품고 있었으며 또 병을 중심으로 회전했다. 심지어 그는 헛소리를 지껄이곤 했다. 그 늙은 몸에 정욕이 깃들 수 있음을 알았을 적엔 경악스러웠다.


벽담의 음영이 나를 가리킬 즈음엔 나는 둔덕을 내려갈 것이다. 중턱의 해는 가속하고 벽담으로 지긋한 그림자를 들여놓았다. 이제 되었다. 일어서야 한다. 더는 나는 문학을 믿지 않는다. 저항이라는 말도 믿지 않는다. 그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말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