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17
무엇인가 점등하고 있다. 간밤에 헛기침 소리에 눈을 뜨인 후에 줄곧 나는 깨어있다. 그리고 그 점등을 보았다. 건넛방 노인의 기침소리는 아니었다. 축축하고도 깊은 동굴을 타고 오르는 휘몰이바람의 소리와 닮았다. 그러니까 그것은 낯선 타인인 셈이다. 도둑일 수 있다. 나는 몸을 일으켜 개처럼 기어 방문의 틈사이의 복도로 고개를 비집어보았다. 하지만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복도는 심히 낡았다. 누군가가 밟고 지났더라면 분명 삐걱거리는 음성이 먼저 나왔을 것이다. 잘못 들었을 수도 있다.
건넛방엔 노인이 거하고, 벽 너머로는 불단(佛壇)과 위패가 있다. 노인은 아주 먼 곳으로부터 온 손님들을 접대하곤 했다. 그러나 이젠 손님은커녕 드넓은 집에 인적 또한 드물다. 식객이 드물고 을씨년스러워지는 적막에서 노인은 컹컹 숨을 불어넣는다. 하지만 그 왜소한 노인의 기침이 그 고요를 메워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는 벽에 귀를 가져다 댄다. 본래의 방을 나누어놓은 가벽인 터라 심히 얇다. 그곳에 무엇인가가 들릴 까닭은 없다.
불이 점등한 것은 무엇인가가 창가에 다가서 있기 때문이다. 나는 순간에 화들짝 놀라고 그것을 들여다보았다. 내 방엔 산길을 향해서 들창이 비죽이 나 있다. 그곳엔 가로등이 보인다. 사소한 이유로 그것이 꺼지고 켜질 수 있다. 의미를 구가할 일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느끼고 떨었다. 겁을 집어먹었다. 그 겁은 새벽이 지나서야 깨어질 것 같다. “저 너머로는 아무것도 없다.” 나는 발음해본다. 하지만 그것은 도리어 고통스럽게 되새겨진다. “정말 아무것도 없는가?” 산길이 있고 그 위로는 잔해가 있고 벽이 있다.
그 너머로는 어떠한가? 나는 그 너머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야 그곳은 응달이다. 묫자리도 두지 않는 초라한 곳이다. 잣나무나 자작나무가 우거진 숲이다. 그 너머로는 모른다. 그 너머에 대해서 나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둔덕길에 자리한 잔해로는 사람이 살았던 흔적도 없다. 기껏해야 인부들이 마신 막걸리 병이나 동바리가 널려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두려워할 것은 없다. 그럼에도 진동을 닮은 그것은 밀려왔다. 공기를 찢고서 뭉뚝한 걸음처럼 방에 들었다. 그리고서야 나는 잔질머리를 떠는 것이었다.
그것을 포옹해야한다. 저항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그 진동하는 것을 품에 안았다가는 진즉에 찢겨죽을 것 같았다. 나는 저도 모르게 긴장과 겁을 집어먹고선 그것을 밀어내고야 만다. 가위눌림. 그것은 죽음처럼 밀려왔다. 잠기운처럼 안온한 형태가 아니다. 곧 새벽이 밝는다. 나는 또 다시 헛기침 소리를 들었다. 이번에는 고양이의 떨림처럼 얌전하게 가닿는다. 노인의 숨소리다. 그가 잠에 깬 것이다. 그러나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슬프게도 나는 내 몸에서 떠나와 있다. 그곳에 앓는 불운한 여자가 있다. 벌레처럼 웅크리고 취하는 불편한 잠에 취해있다. 얼굴은 일그러뜨렸다.
낯을 씻어야 한다. 그래야 조금은 정신을 차릴 것이다. 불단에 향이 꽂히지 않고 물그릇이 메말라 있다면 노인은 분명 역정을 낼 것이다. 노인이 분노하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화에 휩쓸린다. 성치도 못한 몸으로 길길이 날뛰며 욕설을 해댈 것이다. 그가 시인이었다는 말을 믿기 어려울 정도로 모진 말들이 장대비처럼 쏟아지면 나는 그것을 맞고 솟대 위의 새들처럼 뻣뻣하게 서 있어야만 한다.
문득 몸을 일으켜 세웠다가 나는 들창 너머의 가로등불이 아직까지도 껌뻑대며 점멸하다가 뚝하니 끊어지는 모습을 보았다. 꽤나 적절한 순간이었다. 정오 전에 시간이 난다면 나는 벽담이 있는 곳까지 올라설 것이다. 그곳의 주변으로는 지붕이 야트막한 가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나는 그곳을 난쟁이집이라 부른다. 판자들을 얽어 지었지만 그것은 분명 다른 용도가 있을 것이다. 분명히 묘소는 아니다. 사람이 누울만한 공간 같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