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19
가로등 아래로 누군가가 서 있었다.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었다. 헐거운 들창이 덜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깜빡깜빡하면서 그것은 서 있었다. 동시에 나는 비닐헝겊이 나부끼는 것을 보았다. 인근의 현수막이 떨어진 것 같았다. 우뚝하게 선 그것 사이로 녹색의 걸쭉한 공기가 흐르는 듯 했다. 그것은 분명 사람이었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시선을 둔덕길 아래로 두었다. 하지만 이 쇠락한 동네서 아이는 없었고 노인들뿐이다. 또 다시 가로등불이 꺼졌다. 그것은 사라지고 없었다. 곧장 나는 현관으로 향했다. 현관 서툴게 어깃장을 놓아놓았기에 쉽게 열리곤 했기 때문이었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한 번. 두 번. 나는 손님이겠거니 싶었다.
“누구십니까?” 여자의 목소리에 손님은 답이 없었다. 이제껏 바람에 문이 그토록 세게 떨렸던 적은 없었다. 그 너머엔 분명 무엇인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꺼지듯 사라져버렸다. 께름칙한 일이라 여기면서 나는 나중에 호신용품이라도 얻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그릇과 향을 올리는 일을 떠올린 것은 그 때였다. 시각은 여섯 시를 넘어서고 있지만 밖은 봄날의 여명은 늦다. 정신이 온전치 못한 노인의 역정을 내는 꼴은 보고 싶지 않았다. 까치발을 들고 소리가 나지 않게 불단으로 급히 향하여 문을 열고 향을 올렸다. 노마님의 얼굴. 명징한 정신이던 시절의 노인의 얼굴 그리고 아미타불. 순간에 나는 소스라치게 숨을 헉 삼키고 말았다. 아미타불의 머리가 없었다.
옻칠한 목상을 쥐가 갉아먹었을 리는 없을 테고, 나무 씹는 벌레가 아무도 모르게 들었을 수도 있다. 우선은 아미타불의 머리를 찾는 것이 먼저다. 바닥을 더듬거리고 불을 밝혀도 그것은 보이지 않았다. 머리만 사라진 것이다. 노인이 알아차린다면 더욱 뒤집어 질 것이다. 노인이 불편한 거동으로 걷는 소리가 난다. 삐걱삐걱.
다행히도 식사시간이 지나도록 주인은 아미타불의 머리가 어디론가 사라졌단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나는 아침식사 후 몰래 벽돌담 근처로 가서 밥풀을 뭉쳐다가 아미타불의 머리를 빚었다. 물론 미봉책이고 오래가지 못할 일이었다. 날이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 거무죽죽한 비구름이 몰렸다. 금방이라도 소나기가 쏟아질 것 같아서 급히 산을 내려가는 중, 다시 나는 들창에서 바라보았던 가로등의 위치에 다다랐다. 문득 호기심이 동해서 그 사람인지의 형체가 서있던 방향 그대로 시선을 두었는데 그곳엔 방금까지 불두(佛頭)를 빚던 벽돌담과 그 옆의 팽나무나 쓰지 않아 막아놓은 우물 같은 기물이 시야에 들었다. 분명 잘못 보았던 거다. 곧 점심시간이었다.
나는 불단에 들어서 밥풀로 얽은 머리를 아미타불상의 어깨 위로 올려놓곤 급히 새로 밥 준비를 했다. 노인의 식사량은 많지 않다. 그러나 때는 칼 같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줄곧 일과를 정해두고 정갈하게 살았을 것이다. 그는 더럽게도 밥을 씹어댄다. 노년이 그를 추하게 만들었다. 내가 우연찮게 그의 젊은 시절 사진을 보았을 적에, 그가 냉철하고 이지적인 눈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꽤나 놀랐었다. 사진으로 보았을 적에 그 청년과 중년은 영민한 사람이었고 언제까지나 그럴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추락했다. 고독에 미친 노인. 이전의 이지적인 문학가이자 저항시인은 기껏해야 몸을 가눌 뿐이다.
오후 3시. 나는 불단에 머리가 잘 붙어있는지 살피고 일지를 쓰고 있다. 머리는 잘 붙어있지만 나무 깎는 사람을 찾아보아야할지도 모른다. 언제까지나 저렇게 내버려놓을 수는 없다. 노인을 당장에 버리고 도망치고 싶다. 그러나 이미 저당 잡힌 것이 있다. 그것은 나의 뱃속과 외부에 있다. 노인의 막내아들은 글러먹은 인간이다. 그 벌레 같은 인간은 여기저기 붙어먹었다. 그러나 나는 그를 증오하지 않는다. 나는 그를 사랑한다. 적어도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나는 그 인간을 기다리고 있다. 그 인간이 집에 돌아오기를, 내 노고를 헤아려주길. 그 비뚤어진 기쁨이 나를 움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