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21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노인은 죽은 듯이 자고 있다. 불단에 아미타불의 머리를 공구함에서 찾은 접착제로 대강 붙여놓았다. 불단에 깃든 줄향과 얽어질 정도로 강한 냄새이다. 세면대에서 희게 질린 얼굴을 씻고 나니 조금은 마음이 가라앉았지만 악몽을 꾸고 난 것처럼 몽롱했다. 빗소리가 집을 포위하고 나는 곤궁한 곳에 다다른 것 같은 착각 속에 있다. 그러나 이 집은 안전하다. 안전할 뿐더러 노인의 잠과 같이 무력하고 유약한 것들만이 이곳에 깃들어 있다. 애초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노인이 비에 홀려서 마당으로 향한다면 향하도록 내버려두자. 그를 애써 꿇어앉힐 필요는 없다.
거칠어진 마당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장대비가 오래된 필름처럼 쏟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이 일대를 집어삼킬 것 같은 비였다. 나는 노인의 방으로 돌아와 그가 숨이 아직 붙었는지 살펴보았다. 그의 가슴이 풀무처럼 오르내리는 모습을 보고서야 나는 비로소 안심했다. 노인의 머리가 그날따라 납작하여 서글퍼보였다. 되지 않는 연민을 집어삼켰다고 여긴 나는 곧장 내가 머무는 불단 옆의 작은 방으로 돌아와서 잠이나 청하고자 했다. 아직 오후 4시이지만 먹구름에 가린 해 때문에 한밤중 같았다.
꿈속에서 나는 마당서 구르는 머리를 잡으려 이리저리 개처럼 뛰어다니는 노인을 보았다. 머리는 외치고 있었다. “제발 나를 놓아다오. 얌전히 강을 건널 수 있도록 나를 놓아다오!” 그러면 몸뚱이뿐인 노인은 목청으로만 컹컹 개 짖는 소리를 내었다. 그러더니 서서히 자신의 꼬리를 물려고 빙빙 도는 검은 개의 형상으로 변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켜보던 나는 불단에 아미타불의 머리를 제대로 붙여놓았던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불단으로 달려가자 불단에서는 역정 내는 소리가 들렸다.
숨을 헉 들이쉬며 나는 깨어났다. 시각은 아직 다섯 시 무렵이었고 소낙비는 말끔하게 개어있었다. 밥을 짓기에 적절한 때였다. 쌀을 씻고 솥을 올리니 다섯 시 반. 노인을 깨울 시간이다. 그러나 내가 노인의 방에 다가섰을 적에 그는 옆으로 돌아누워서 평소보다 깊은 잠에 빠져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방에 들어 콧잔등에 손가락을 대어보고서야 알았다. 그의 숨이 그친 비처럼 멎어있었다. 순간 나는 집의 내부를 지탱하던 무엇인가 눅눅한 기물이 떠나간 것을 느꼈다. 불단의 향내보다 진득한 접착제의 냄새가 자리했다. 나는 당장에라도 벽돌담 곁으로 도망가고 싶어졌다.
떨리는 손으로 경찰을 부르고, 아들들에게 전화를 돌렸지만 늘 그렇듯 막내아들만은 받지 않았다. 첫째 아들은 해외의 학회에 있다고 그 아내가 말했다. “그 이는 못해도 일주일 뒤에나 돌아와요. 하필 이럴 때에…” 나는 당장에라도 벽돌담 곁으로 도망가고 싶었지만 자리를 지켜야만 했다. 오해를 사기 싫었다. 모든 게 순식간에 지나갔다. 진술과 여러 가지 가능성에 대해서 말이 오갔지만 노인의 사인은 심장마비로 비가 쏟고 기압이 변하면 심장이 쇠약한 노인들이 겪곤 하는 죽음의 방식이었다.
노인이 떠나고 나는 더 이상 그 집에 머무를 명분이 없었다. 고로 나는 밀린 삯을 받고 떠나갈 준비를 했다. 마지막으로 그 집의 막내아들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그 악마 같은 사람을 다시 마주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