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18
노인의 거처는 일본식 가택이다. 복도가 길고 반들반들하다. 2층에는 본디 노인의 아들내외가 살았지만 지금은 진즉에 떠나고 없다. 그들은 이방의 도시로 이사를 갔다. 아들은 정신과 의사라고 들었다. 정확하진 못하다. 본디 앞뜰엔 작은 마당이 정원처럼 가꾸어져 있었지만 그곳은 이제 묵정밭처럼 살풍경하다. 부인이 살아계셨을 적엔 인근의 거지들이 밥을 얻어먹으러 몰려들곤 했다. 보리쌀밥을 해놓고 부인은 찾아오는 이들을 내쫓지 않았다. 본래 불단에 향을 올리는 일도 부인께서 하셨다. 부인께서 심장병으로 세상을 뜨자 그곳엔 먼지만이 쌓일 뿐이었다. 노인을 돌보아 줄 사람도 필요했다.
밥을 해서 베푸는 일도 없어지자, 처연히 왕래하는 사람도 줄었다. 떠밀리듯 이곳에 다다랐을 적에 나는 노인에게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저항시를 쓰던 총기어린 눈빛은 희뿌옇게 흐려졌고, 귀는 심히 어둡던 노인은 미쳐가고 있는 것 같았다. 노인은 넋두리를 늘여놓고 쳇바퀴 돌듯 반복했는데, 꼭 다라니경을 듣는 일처럼 아리송했다. 노인의 고독함은 그의 기억을 멈추어놓고 태엽을 감듯이 하고 있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노인은 정신을 놓치고 괴물처럼 변했다. 방에서 웅크려있던 노인에게 어떻게 그런 기력이 나오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마당에서 낙숫물과 비를 맞으며 개처럼 뛰어다녔다. 툇마루서 만류시키려하다가 얻어맞고 나서야 나는 노인이 원하는 대로 내버려놓았다. 때문에 나는 장마철이 두렵다. 비를 맞고 난 다음날엔 노인은 열병을 앓았고 지독한 기침을 뱉어대었다. 다음 날 그에게 물수건을 얹으며 간호할 적에 노인은 아이처럼 “누이야. 누이야.”하고 나를 불렀고 그에 대해 가졌던 연민과 숭고함은 진즉에 떠나가고 없었다.
나는 신세가 서러워지면 산턱의 벽돌담으로 가서 훌쩍거리곤 했는데, 그 장소는 단순히 응달이라 눈에 잘 띄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곳에 온 것은 온전히 나의 선택이었고, 떠나가지 못하고 버티기로 한 것도 나의 선택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면벽을 하고 푸념을 할 수 밖에 없는 처지인 것이다. 노인에게 나는 죽은 부인과 누이의 환영이다. 하지만 나는 나이기도 하다. 그 벽돌담에서 겨우 나는 서른을 앞두고 보모 일을 하는 인간임을 알 수 있다.
부인께서는 어떻게 그 많은 일들을 혼자서 하셨을까. 궁금할 따름이다. 그녀는 급성 심장병으로 떠나가기 직전까지 팔십의 노구를 이끌고 그 모든 일을 하셨다. 가사를 훤히 보고 다스렸다. 꼭 제 팔다리를 가누듯 당연하다는 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부인만큼 기민하지 못하다. 이 집의 모든 것들을 다스릴 순 없다. 기껏해야 왕래가 잦은 1층의 복도와 부엌을 닦아놓았을 따름이었다. 정원은 여름이면 풀을 베는 사람들을 부르지만 그 외론 내버려두었다.
정신이 희약해지고 있다. 노인과 닮아가고 있다. 그러니까 더는 견딜 수 없다. 노인은 지금 색색거리며 잠을 자고 있다. 눈꺼풀이 완전히 닫히지 않았지만 알 수 있다. 그는 온전히 잠에 빠져있다. 내 손엔 무딘 과도가 들려있다. 아침의 녘이 들고 있다. 저항해야한다. 순간의 진동이 나의 머리를 잡아채기 이전에 나는 그것을 멀리 치워놓아야 한다. 숨을 멈춘다. 나는 고양이처럼 걷던 발을 돌려 복도로 향했다. 향을 올릴 시간이다. 과일을 깎자. 근처 농원에서 받아온 사과가 있으니 그것을 깎으려 한 것으로 하자.
진동이 내게서 떠나갔다. 어쩌면 죽은 부인의 덕인지도 모른다. 가로등의 점등을 다시 발견한 것은 그 맘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