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고리 없는 연인의 사랑
사람의 마음 안에는 작은 갈고리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평소에는아무렇지 않게 흔들거리는 이 갈고리가
비슷하게 튀어나온 누군가의 갈고리와 만나 훅 걸리는 순간, 우리는그 상대와 무언가 특별한 게 있다고 느끼는 게 아닐까 싶었다. 나는 너와 무언가 이렇게 걸리고 싶었다. 그게 무엇이든 좋았다. 너랑 나 사이에만 통하는 무언가, 어떤 느낌을 갖고 싶었다. 비슷한 결핍이 있다거나 서로만이 이해할수 있는 취향, 유머코드, 비밀 같은 것. 그런 것들이 우리 둘만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재료가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 달랐다. 빨강과 파랑이 다르듯 다른 게 아니라 사과와 파도가 다른 듯 달랐다. 물론 네가 나와 다른 사람이기 때문에 너와 사귈 수 있다는 건 안다. 하지만 네가 좋아하는 작가 한 명 없다는 사실에 나는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너는 야구를 좋아한다. 이상하게도 숫자를 좋아하고 웹툰은 보지않는다. 요리하는 걸 좋아하고 아는 맛집은 별로 없다. 미술관에가서 미술을 보는 대신 미술관 건물을 보는 걸 좋아한다. 네가 좋아하는 것들 중에 내가 좋아하는 게 없다는 게 그렇게 싫을 수 없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너와 시작해야 할 지 모를 느낌이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외국인이었다. 너라는 낯선 세계에서 나는 마음 붙일 곳을 찾았다.
너와 내가 “찰칵” 소리를 내며 연결되는 부분을 찾고,
이거 보라고, 우리는 이렇게 인연인 거라고 확신하고 싶었다.
분명 네 안에 혹은 내 안에 서로를 연결해 줄 무언가가 있다 믿고 싶었다.
아직 스스로 발견하지 못한 것뿐이고, 서로를 통해 발견해 갈 수 있을 거라고. 그래서 나는 너에게 심리학수업을 듣게 하고, 전시회에 같이 가고, 내가 좋아하는 소설을소개했다. 나는 건축에 대한 책을 읽고, 요리를 끄적여 보고야구에 대해 열심히 물어봤다. 그 모든 노력 끝에 깨달았다. 이것이 부질없는 노력이라는 것을.
매일 야구 기사를 찾아보는 사람과 야구 구단이 9개라는 걸 겨우알고 있는 사람은 같이 야구를 즐길 수 없다. 이미 어릴 때부터 하루에 10권씩 성실하게 만화를 읽어온 나와 추천 받은 웹툰 한 두 개 보는 너는 똑같이 웹툰을 즐기는 것이 아니다. 노력으로 맞출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울고 싶어졌다.
익숙한 얼굴 하나 없는 반에 배정 받은 새 학기 첫날마냥.
그때부터 나는 네가 내 유머에 웃지 않을 때 화를 내기 시작했다. 유머코드가맞지 않는다는 건, 유머코드조차 맞지 않는다는 건 우리가 정말 어울리지 않는 커플이라는 증거 같았다. 내가 던진 농담에 웃지 않고 대답하는 네 모습이 참을 수 없었다. 너와 연결될 고리를 찾으려 아무리 손을 휘둘러봐도 걸리는 것이 없는 느낌이었다. 그런 날이면 나는 내가 아닌 너의 연인이 될 법한 사람을 떠올렸다. 오렌지와 사과가 함께 있다면 서로의 농담에 키득거리며 웃을 수있지 않을까? 파도와 바다가 함께 있다면 소금의 짠내를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지 않을까?
그 불안한 마음이 너와 연애하는 내내 마음 한 켠에 있었고, 사실지금도 여전히 있다.
그러나 나는 어느 날 아침 들었던 마음을기억하고 있다. 그 전날도 나는 너에게 우린 정말 다른 인간인 거 같다고 습관처럼 말했고, 나의 그런 툴툴거림에 익숙해진 너는 능청스럽게 “알아. 그래도 좋아하잖아”라고 대답했던 거 같다. 이런 순간들이 수없이 많았다. 우리가 통하는 점이 없는 사람이라는 걸 발견하고 놀라고 좌절하거나 불안해 하는 순간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헤어지지 않았다. 우리 마음에는 서로를 걸어주는 갈고리가 없다. 대신 우리의 갈고리는 서로의 옆에 나란히 바짝 붙어있다.
서로 어울리지 않고 함께 있을 법하지 않는 것들이 함께 있는 이유는 하나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앞으로도 종종 너에게 “우리 정말 너무 달라! 우릴 연결해주는 게 뭐야?”라고 물어볼 것이다.
어쩌다 나와 비슷한 사람을 만난 날이면 “사실 이런 사람과 연애했어야 하는 건 아닐까?” 싶은 날도 있을 것이다. 아무리 덧칠해도 서로의 색으로 물들지 않는 사람들은 고개를 돌릴 때마다 낯선 광경에 놀라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인내심을 갖는다면 새삼스러움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그렇게 네 속의 낯선 것들이 여전히 낯선 채로 익숙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