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플레이 Oct 21. 2023

나와 그대가 걸림 없이 함께 할 수 있는 길

경기 파주 헤이리무장애노을숲길

매거진 재직 당시인 2022년 11월 퇴고한 원고입니다. 출사지를 소개하기 위한 글로, 전장연의 타당성을 논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며칠째 복잡한 출근길이 계속되고 있다. 긴 시간 투쟁을 이어오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장애인 이동권 보장 시위가 최근 더욱 격해졌기 때문이다. ‘왜 하필 나는 경기도에서 서울로 출퇴근해서 이 고생을 겪는가’에서 시작한 생각은 갈수록 짜증으로 변했고, 결국엔 혐오로 가득 찬 말들을 중얼거리며 지하철에서 내리고 말았다. 다른 대중교통편을 찾았지만, 인파가 몰리는 것은 역시인지라 이번에도 지각을 면치 못했다. 몸보다는 마음이 더 불편한 출근길이었다. 


   사무실에 도착한 뒤 불편한 감정을 한 움큼 내려놓고 차분히 생각해 보니 겨우 두어 시간도 되지 않는 짧은 아침 시간에 괜히 내가 격분했구나 싶어 부끄러웠다. 애초에 '평등'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나름의 가설을 늘 가지고 살았고, 그것이 정설이라 확신하게 되는 근거를 종종 아니 수시로 마주했다. 아주 그냥 도처에 널려있다. 비장애인을 기준값으로 정해진 우리 사회에서 내가 불편함을 겪었던 것이 무엇이 있나 하고 돌이켜 보면 정말로 생각나는 것이 없으니 말이다.


   이번에 소개할 출사지는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소재의 헤이리무장애노을숲길 이다. 통일동산을 둘러싼 산책길로, 경사가 낮은 데크길인데 이곳을 소개하자니 출근길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어서 서론이 길어졌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당연히 휠체어로 이동이 가능하고, 총거리가 약 1km밖에 되지 않는지라 느리게 이동해도 왕복 40여 분이면 충분하다. 이맘때쯤 가면 예쁘게 몰든 단풍과 나무들을 여유롭게 둘러볼 수 있으니 파주 쪽에 촬영 일정이 있다면 한번 즈음 들러보기를 추천한다. 




데크길의 시작은 대로변과 맞닿아 있어서 대중교통을 이용해도 좋고, 자차를 이용한다면 7번 게이트 근처 무료 주차장을 이용하면 된다. 이번 출사는 다양한 색감으로 기록하고 싶어서 미러리스와 필름 카메라, 구형 DSLR까지 전부 챙겼다. 필름은 코닥사의 울트라맥스 400을 사용했다. 특유의 노란빛이 잘 드러나는 필름인지라 지금과 같은 계절에 쓰기 딱 좋다.


바닥에 떨어진 잎들에서 바삭함이 느껴졌다. 


쌓인 낙엽들을 보고 있으니 어느덧 가을도 끝을 향해 가는 것이 느껴져서 아쉬웠다. 유독 봄 보다 짧은 가을이다. 


나무 사이로 들어오는 빛이 너무 예뻐서 가지에 포커스를 맞췄다. 빛이 번지는 효과를 더욱 잘 나타낼 수 있는 필터가 있다면 함께 사용해도 좋을 것이다. 


데크길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이동할 수 있게 적당한 폭을 유지하고 있으며 양옆에는 손잡이가 이어져 있다. 색감에 따라 다양한 느낌으로 연출될 수 있을 것 같아서 보정 또한 각각 다르게 했다. 


하늘이 맑지 않아서 최대한 나오지 않게 찍으려 했지만 어쩔 수 없이 하늘과 함께 담아야 할 땐 보정으로 하늘의 톤을 비현실적으로 바꿔도 좋다. 이렇게까지 하면 나뭇잎의 질감을 더 바삭하게 느껴지게 만들 수 있다. 


꼭대기로 올라가는 길은 두 종류의 길이 있다. 계단을 이용해도 좋고 그것이 어렵다면 반대편에 있는 데크길을 이용해도 좋다.  


데크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많지는 않지만 이렇게 갈대도 듬성듬성 보인다. 미세먼지가 가득했던 날이라 꼭대기에서 내려다본 풍경이 선명하지 않아서 식물들을 주로 찍을 수밖에 없었지만 맑은 날 올라간다면 시원한 뷰를 담을 수 있을 것이다.





크레타

¶ 경기 파주시 탄현면 헤이리마을길 82-91

☎ 031-948-6001

화~일 11:30-20:00 (매주 월요일 휴무, 14:30-15:00 브레이크 타임)

헤이리 근처에 식당은 많지만 높은 가격대에 비해 생각보다 괜찮은 맛집 찾기는 힘들다. 후기를 찾고 또 찾다가 가게 된 집 크레타에서 메인 메뉴 사진을 찍을 새도 없이 경양식 돈가스를 흡입해 버렸다. 함께 나오는 식전 빵을 수프에 찍어 먹으면 그리운 옛 추억에 잠길 수 있다. 식사를 마치면 식후 커피 한잔이 무료로 제공된다.




원고에 싣지 못한 B컷은 인스타그램 @play_archive_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출사의 맛


손가락으로 누르기만 하면 원하는 정보를 얼마든 얻을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보니, 나만 알고 싶은 것은 사실 나를 포함한 모두가 알고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진작가에게 촬영지도 마찬가지죠. 제가 기록한 장소가 희귀한 출사지는 아니지만, 다양한 이야기를 덧붙인 시선을 통해 진정한 출사의 맛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 맛을 더해 줄 식당 정보는 이번 주말 출사를 계획 중인 당신을 위한 덤이에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