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이 내민 손

시즌2-4화

by 이로티

돈이 벌리기 시작하자
나는 내가 인생을 해킹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동안 내 머릿속에만 있던 ‘부자’의 삶이
현실로 튀어나왔다.


돈을 쓰는 게 무섭지 않았다.
아니, 돈이 남으니까
오히려 더 써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이제
누구의 직원도 아니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
사장이었다.


사업이 커지면
세상은 갑자기 다정해진다.
가맹점주님들은 나를 ‘사장님’이라고 불렀고
기사들은 나를 믿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그 과점 업체 사람들마저
나를 편하게 대하기 시작했다.
예전엔 우리를 보며 비웃던 사람들이
이젠 술자리에 불렀고
함께 웃으며 얘기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자주 연락이 오던 사람이 있었다.
그 과점 업체의 대표.
사람들이 ‘형님’이라 부르던 사람.
나도 어느 순간부터
그를 형님이라 부르게 됐다.


처음엔 낯설었다.
경쟁 업체 대표와 술을 마신다는 것 자체가.
하지만 그는 이상하게
나를 치켜세웠다.

“야 너네 진짜 대단하다.”
“어린데 어떻게 이렇게까지 하냐?”
“너네는 앞으로 더 클 거다.”

칭찬은 달콤했다.
특히 내겐
그 칭찬이 더 달콤했다.
왜냐하면
나는 늘 마음 한편에
불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운이 좋았던 걸까?’
‘이게 실력일까?’
‘언제 무너지는 건 아닐까?’

그 형님은
그 불안을 싹 덮어주는 사람처럼 보였다.


어느 날, 형님이 말했다.
술잔이 몇 번 오가고
분위기가 풀렸을 때였다.
형님은 담배를 피우며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한 도시를
한 업체가 운영하면
너도 알겠지만 수익이 어마어마하다.”

그 말이
내 귀에 꽂혔다.
형님은 이어서 말했다.

“우리도 이제 한 물 갔다.”
“너희가 올라가는 세대다.”
“내 업체 네가 인수해라. 독점해라.”

독점.
그 단어는
내가 꿈속에서만 쓰던 단어였다.
형님은 너무 자연스럽게
그걸 내게 건넸다.


“대신 형 자리 하나만 줘.”
“팀장 이런 거.”


그 제안이
너무 현실감 없이 달콤했다.
나는 순간
세상이 나에게만 유리하게 돌아가는 것 같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사실은 고개를 끄덕인 정도가 아니었다.
앞뒤 없이 찬성했다.
이미 그때 내 머릿속엔
그 도시 전체가
내 회사가 되는 그림이 그려졌다.
가맹점들도
기사들도
모든 콜이
내 손에서 돌아가는 세상.
그때의 나는
돈을 벌고 있는 게 아니라
왕이 되는 기분이었다.


인수는 돈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돈을 빌리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미 한 달에 몇천이 찍히는데
대출은 그냥 ‘시간을 당겨오는 도구’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대출을 받았다.
그리고 더 신기한 일이 있었다.
형님이
“이건 계약서를 잘 써야 한다”며
변호사를 부르자고 했다.
그 순간 나는
형님을 더 믿었다.


‘봐라, 이 사람은 깔끔한 사람이다.’
‘나를 생각해 주는 사람이다.’


그때 나는 몰랐다.
사람은 나를 생각할 때가 아니라
나를 이용할 때 가장 친절하다는 걸.


계약서를 작성했다.
지분.
역할.
직함.
지역.
수익구조.
형님은 팀장으로 들어오고
기존에 형님이 맡던 구역을 관리한다.
나는 전체 대표로 독점 운영한다.
겉으로는 완벽했다.

문제는
내가 그 계약서를 읽을 ‘눈’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거다.
나는 서류를 읽는 사람이 아니라
꿈을 읽는 사람이었다.
그 꿈은 너무 반짝였다.


그리고 계약서를 쓴 다음 날.
정말 그 다음날.
형님이
형님 밑에 있던 직원들이랑 함께
전원 사직서를 썼다.
나는 처음에 이해가 안 됐다.
진짜로 머리가 멍해졌다.


“형님 이게 무슨 소리예요?”
“장난하시는 거죠?”


그 형님은
담담하게 말했다.


“우린 퇴직금 줘야지.”

“우린 인수할 때 근로기간 인정한다며.”


순간 내 귀가 멎었다.

나는 화를 냈다.

“아니 형님, 나 돈 줬잖아요.”
“인수한 거잖아요.”
“같이 해준다며요.”

나는 핏대 세워서 소리쳤다.
그러자 형님은
내가 처음 보는 눈빛으로 말했다.

“계약서 다시 읽어봐.”


나는 계약서를 다시 읽었다.
그때까지 나는
계약서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근데 이상하게
하나하나 읽을수록
내 손이 떨렸다.
겉으로는 문제없어 보였는데
이건…
작정하고
사람 하나를 죽이는 계약이었다.


그 이틀 동안
내 핸드폰은 미쳐 있었다.
가맹점에서 전화가 왔다.

“배달 밀려요!!!”
“기사 어디 있나요?”
“왜 안 와요?”

그 소리들이
내겐 총성이었다.
나는 꿈에서 깨고 있었다.


형님은
내가 만든 문제를 해결해 주는 척하며

기사들을 달래고
가맹점을 붙잡고
현장을 정리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가 만든 시스템이
내 회사가
내 기사들이
내 브랜딩이
하나씩
형님 손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이에.


나는 선택지를 들이밀었다.

“퇴직금 못 줍니다.”
“말이 안 됩니다.”

그러자 형님은 말했다.

“그럼 지분 넘겨.”
“아니면 돈을 청산해.”

“어차피 청산 안 하면 지분은 넘어와.”


내가 지불할 수 없는 금액이었다.
나는 이미 대출을 받아
인수 자금을 지급했다.
그런데 여기서 퇴직금까지 얹히면
끝이었다.


그리고 형님은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했다.
그 말이
내 인생을 끝냈다.

“대출은 내가 내줄게.”
“대신 지분 넘기고 꺼져.”


그때
처음으로 느꼈다.
아, 내가 사기를 당했구나.
계약서를 쓴 건 하루인데
무너지는 건 이틀이었다.
이틀 만에
나는
내가 쌓아 올린 모든 걸 잃었다.


나는 울지도 못했다.
울면 내가 진짜 끝나는 것 같아서.
나는 그저 다시 현실을 보기 시작했다.
내가 꿈꾸던 추월차선이
실은 절벽이었다는 걸.

그리고
그 절벽 아래로
내가 직접 뛰어내렸다는 걸.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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