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기자로 촛불집회 현장 취재를 마치고 얼마 뒤, 강릉에 계신 어머니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전화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어머니의 목소리에는 걱정이 한 가득 담겨있었다. 그리고 어머니께서는 강한 어조로 말씀하셨다.
“강릉 작은집 아저씨 회사에서 사무직 직원 뽑는데, 여기 면접 봐라.”
어머니께서는 직장을 그만 둔 아들의 취업이 걱정되셔서 전화를 하셨다. 애초에 생각도 없었지만 스스로의 노력없이 버스에 무임승차하고 싶지 않았다. 서울의 아들은 “그 일은 제 자리가 아니에요”라고 말하며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 그렇게 일단락되는가 싶더니, 새해에 맞은 가족 저녁 식사 자리에서 또다시 일이 불거졌다. 이번에는 아버지께서 한 말씀하셨다.
“직장을 가져야지. 글 써서 용돈이나 벌겠어?”
아버지의 말씀에 저녁 식사자리 분위기는 냉랭해졌다. 이제는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다. 식사를 마친 뒤 가지고 있던 패드를 꺼내 들고, 그나마 나의 일을 우호적으로 바라보는 어머니께 최근 작성했던 기사를 보여드렸다.
돋보기안경을 끼고 유심히 글을 읽던 어머니가 던지는 말씀 한마디에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잘 썼네. 글 쓰는 건 언제 배웠대? 사진도 잘 찍네.”
글과 사진으로 처음 어머니에게 인정받는 순간이었다. 이후 어머니와 약속 했다. 언젠가 책을 내서 보여드릴 거라고. 하지만 나는 그 해에 험난한 숙제처럼 남겨진 아버지 설득을 위해 다시 회사 생활을 마음먹었다. 다시 회사에서 조직 생활을 시작하는 것이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키는 동시에, 아버지도 설득할 수 있는 합리적인 방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험난한 회사 생활에 다시 발을 담궜다. 물론 내가 마주한 회사 생활은 그리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장인으로 대학교에서 보낸 시간은 스스로에게 새로운 도전과 모험이 필요한 경험은 분명했다. 새로운 일을 시작했고, 새로운 사람들과 발맞춰 움직이며 여러 시행착오를 겪었다. 고 정주영 회장은 “모험이 없으면 큰 발전도 없다”고 했다. 작고 약한 힘을 가진 개인이라도 도전과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함께 힘을 합친다면 이 세상에서 무서울 건 없다. 촛불이 만든 건강한 변화의 바람처럼, 개인의 노력이 함께하는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성장하는 더 나은 발전으로 이어지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