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소정 Sep 01. 2023

우리의 보편 10

  지난여름, 은영은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저녁이었고 고기 좀 먹자는 엄마의 말에 은영은 삼겹살과 소주 한 병을 사 왔다. 엄마는 신이 나서 신문지를 깔았다. 휴대용 버너를 방 가운데 놓고 고기를 올리자 치이익 살 익는 소리가 났다. 조금이라도 빛을 더 보게 하려고 창틀에 올려놓은 화분의 상추와 치커리, 방울토마토는 뿌리까지 썩고 있었다. 

  “방 때문이야.”

  은영의 엄마는 소주를 털어 넣으며 말했다. 마늘은 안 샀어? 은영을 타박했다. 고기가 익어 가면서 방은 순식간에 연기로 가득 찼다. 환풍기를 틀었지만 소리만 요란할 뿐이었다. 

  “고기도 못 구워 먹는 방에 저것들이라고 잘 자라겠어.” 

  그때였다. 창밖에서 뭔가가 날아와 신문지 위로 떨어졌다. 그게 침이라는 걸 알았지만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아는 데는 한참이 걸렸다.

  “여기 사람 있어! 여기 사람 있다고! 개새끼야!”

  은영의 엄마가 연기 속에서 비명에 가깝게 소리를 질렀지만 아무런 대꾸도 없었다. 그날 이후로 은영은 자주 누군가 자신의 얼굴에 침을 뱉는 것 같았다. 그 여름이 다 지나갈 무렵 은영은 화분을 들고 재래시장 모종 가게로 갔다. 

  “물만 주면 된다면서요!”

  은영이 다 시든, 그냥 시든 것도 아니고 뿌리부터 썩어 물컹해진 상추를 가리키자 남자는 낮에 줬어요? 라고 물었다. 

  “네?”

  “한낮에 물을 줬냐고요? 자주 줬어요?”

  은영이 당황하자 그는 이렇게 더운 날 낮에 물을 주면 그대로 익어버린다고 말했다. 물을 자주 주면 썩는 거라고 그대로 삶아버리는 거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안 가?”

  “먼저 가. 좀 걷고 싶어.”

  은영이 말하자 보숭은 고개를 돌려 앞으로 내려가야 할 산길을 한번 쳐다봤다. 보숭이 부모님은 손에 뭔가를 쥐고 있었다. 돌미나리라고 했다. 

  “보숭이 아빠가 자꾸 어디선가 물소리가 들린다고 하잖아. 그러고 보니 향기로운 물 냄새가 나서 가 보니 이게 있지 뭐야. 가서 먹어요.”

  은영이 살짝 고개를 저었다. 

  “우리 것도 있어.” 

  보숭이 부모님은 기어이 은영의 손에 한 줌 미나리를 쥐여 줬다. 그들은 의심 없이 좋은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왜인지 은영은 차에 올라타는 보숭과 부모님을 쳐다볼 수 없었다. 부모님께 얘기하고 보숭이 내릴 것 같았지만 문이 닫히고 차는 그대로 출발했다. 천천히 저녁이 내려오고 있는 산허리를 돌아 점점 더 멀어지는 차가 너무 크고 좋아서 은영은 그게 어떤 보편의 행복으로 가는 안간힘처럼 느껴졌다. 

  누나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이 그것 같았다. 

  어쩌면 진짜 잘 웃는, 어떤 상황에서도 웃어 줄 것 같은 누나를 옥상에서 밀어낸 것이 우리의 보편인 것 같았고 그곳이 우리의 신발들이 버려진 저 모퉁이, 발길이 닿지 않는 곳, 외진 곳, 응달 같았다. 은영은 앞으로는 보숭이를 자주 만나지 못할 것 같았다. 특별한 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그렇게 될 것 같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