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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정 Sep 01. 2023

우리의 보편 9

  차는 밖에서 보는 것보다 더 화려했다. 차창에는 금색 실로 짠 커튼이 쳐져 있었고 천장에는 오로라 빛깔로 은은하게 번지는 조명이 설치돼 있었다. 

  “장례식장도 장의차도 좋아요.” 

  은영이 말하자 보숭의 부모님들은 흡족한 듯 말했다. 

  “그 사람들이 보라고.”

  산을 다 내려올 때쯤 버스가 갑자기 멈췄다. 화장실이 급하다고 말하고 보숭이 부모님들은 내려서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은영도 차에서 내려 도로변에 쪼그리고 앉았다. 산복도로 가장자리로 마른 풀들이 허리가 꺾인 채 누워 있었다. 꺾이고도 잘리지 않은 풀들 위로 지는 햇빛이 반짝거렸다. 보숭이도 버스에서 내려 은영이 옆에 와 앉았다. 

  “킹스턴에서는 누구나 우리에게 친절했어.”

  보숭은 오래된 뼈 같은 강만 뚫어져라 쳐다볼 뿐이었다.

  “세인트로랜스 컬리지는 9월에 새로운 학기가 시작됐잖아. 첫해에 나는 그것보다 훨씬 일찍 도착했어. 토론토에서 버스를 타고 2시간 30분 정도 걸려서 도착한 그곳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이 학교 투어였는데 방학인데도 우리를 환영하기 위해 교장 선생님과 아이들이 다 나와 있어서 좀 놀랐어. 아이들은 앞으로 같이 공부할 같은 학년의 반 대표들이었는데 뭐든 물어보라고 말하면서 자꾸 웃는 거야. 여기는 교실이야 하고 웃고, 여기는 식당이야 하고 웃고, 여기는 도서관이야 하고 웃고, 학생회관, 체육관을 일일이 다 돌며 꼭 끝에는 웃어. 처음에는 같이 따라 웃다가 나중에 나는 웃을 수가 없더라. …너무 과해서. 학기가 시작되고도 계속된 그 과한 웃음 끝에는 운동화가 한 짝씩 사라졌어. 학교 건물 뒤, 발길이 닿지 않는 곳, 외진 곳, 응달에 버려진 신발을 찾아 신으면 늘 한쪽 발이 시렸는데, 나는 모두 우리를 향해 웃어 줬기 때문에 동양에서 온 까만 조약돌 같은 아이들의 운동화만 사라진다는 사실을 아주 나중에 알았어. 너보다 먼저 간 나는 알았어. 그런데 너한테는 한마디도 안 했어. 네 신발이 사라져야 내 신발이 무사하니까….” 

  은영은 어디선가 물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이래도 나는 너한테 고마운 사람이야? 보숭의 얼굴은 빠르게 어두워졌다. 보숭은 크게 숨을 한번 쉬고는 한참 후 아주 작은 목소리로 됐다, 라고 했다. 겹쳐 입은 옷 속의 온기를 꺼냈지만 이미 식어 있었다는 듯. 

  “됐다. 다 지난 일이야.”

  그 말을 하는 보숭은 떠내려가지 않으려고 단단히 자리 잡고 있는 물속의 돌 같았다. 

  “누나도 원할 거야.”

  “뭘?”

  “…진실.”

  “누구를 위한?”

  “우리 모두를 위한.”

  그건 불가능한 일이라는 듯, 이 일에 합당한 말도 준비된 마음도 없다는 듯, 됐다라는 말로 보숭은 그 모든 이해를 잘라버렸다. 부모님이 돌아오는 소리가 들리자 보숭은 바닥에 주저앉지도 않았는데도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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