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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정 Sep 01. 2023

우리의 보편 8

  지난해 여름 은영과 엄마가 이사한 방도 그랬다. 길과 맞닿은 반지하 원룸이었고 밖으로 통하는 창에는 11자 방범창이 달려 있었다. 은영과 달리 엄마는 그것을 못 견뎌 했다. 이제 빛도 없이 지내게 됐다고 한탄했다. 그러면서 은영에게 여전히 잘사는 엄마의 친구들 얘기를 끝도 없이 했다. 지난해 친구들이 이유 없이 돌아가며 엄마에게 밥을 샀다. 고급 일식집에서 엄마는 서울의 집값이 무서운 속도로 올랐다는 것을 알았다. 엄마는 그 당시에는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나누는 것들, 넉넉함, 우정. 그러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서서히 욕지기가 올랐다고 했다. 그게 자랑 값이더라. 아무것도 뺏긴 게 없는데 다 뺏긴 것 같아 더 더러운 기분이라고 했다. 은영은 그때 창틀을 닦고 있었다. 싱크대 하부장을 열자 쏜살같이 달려 나온 바퀴벌레를 잡고 난 뒤였다.

  “남 얘기 좀 그만해!” 

  창틀에 수북한 먼지를 닦다가 은영은 소리쳤다. 먼지 속에서 은영은 씹다 버린 껌과 담배꽁초, 각종 영수증, 포장을 벗기지 않은 콘돔을 발견했다. 그날 밤 잠들기 전 엄마는 은영에게 자니? 라고, 너는 이런 데서 잠이 오니? 라고 물었다. 은영이 대답을 하지 않자 한숨을 쉬었다. 

  “우리가 사는 게 다 남의 얘기야.”

  그래서 은영의 엄마는 친구들에게 은영이 임용고시에 합격했고 조기 유학에서 만난 남자와 내년에 결혼을 할 거라고 말했다고 했다. 은영이 따지자 그게 왜 거짓말이야? 내가 밥 샀는데, 라고 했다. 그런데 진짜 우리 얘기를 누가 들어주겠니? 그 말이 은영은 서글펐다.      

  다음 날 출근을 하는 은영에게 보숭은 문자로 오전에 입관했고 발인은 내일이라고 알려 왔다. 점심시간에 은영은 옥상 난간에 재를 비벼 껐다. 난간에 팔을 괴고 아래를 내려다보자 잘 자란 잔디 위에 검은색 바둑알처럼 작고 동그란 머리들이 움직이는 게 보였다. 그걸 보자 은영은 인형 뽑기 기계가 떠올렸다. 중학교 때 은영이 자주 했던 게임이었다. 은영은 오른손으로 집게 모양을 만들어 아이들의 머리를 하나씩 건져 올렸다. 아이들은 잘 잡히지 않았다. 그때 갑자기 스프링클러가 작동됐고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며 운동장 밖으로 뛰어나왔다. 은영은 천천히 진해지는 잔디밭을 보다가 보숭이 누나가 죽었는데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게, 이렇게 일상이 지속된다는 게 이상했다.

  그날도 그랬다. 조기 유학에서 돌아와 은영이 버스 정류장을 지날 때 어떤 사람이 전화기에 대고 사고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 그는 그건 사고고 누구의 책임도 아니라고 말했다. 

  

  하늘공원은 산꼭대기에 있었다. 납골당과 분리된 화장장은 자동화 시스템이었다. 작은 화면으로 온도와 진행 상태가 표시된다고 했다. 새벽에 장례식장에 나타난 은영에게 보숭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은영은 관이 레일을 따라 천천히 들어가는 것을 봤다. 그러다 비상음이 울렸다. 갑자기 레일이 멈췄다. 기계를 만지던 직원은 이런 일이 가끔 있다며 두꺼운 유리로 된 문을 열고 기다란 쇠파이프로 관을 힘으로 밀며 버튼을 다시 눌렀다. 레일은 다시 작동했고 관은 더 깊숙이 안쪽으로 빨려 들어갔다. 은영과 보숭은 부모님과 조금 떨어져서 편하지도 불편하지도 않은 의자에 앉아 있었다. 어느 순간 불길이 화르르 치솟는 소리가 들리더니 잦아드는 것을 모두 함께 느꼈다. 뜨거운 열기가 솟구칠 것 같았지만 정말로 그렇지는 않았다. 

  보숭은 마지막 날까지 조문객이 거의 없어서 사람들이 몰리는 저녁 시간에 특2호의 손님들에게 자리를 빌려줬다고 말했다. 잠시 사람들이 바글거렸고 정신이 없었다고 그래서 좋았다는 건지 싫었다는 건지 모를 말투로 그냥 그랬다고 했다. 그리고 그사이 조의금을 챙겨 남자와 아이가 사라졌다고 했다. 조문객이 별로 없어 돈도 얼마 되지 않았다고 그래서 부모님들이 오히려 조금 미안해했다고 말했다. 

  “어린이집 차량 선생님이라는 말도 거짓말 아니야?”

  은영의 말에 보숭은 아니라고 했다. 

  “누나도 완전 모르는 사람 같아.”

  보숭은 누나를 도와준 고마운 사람이라는 똑같은 말만 했다. 그럴수록 은영은 마음이 조급해졌다.

  “아닌 것 같아.”

  “뭐가?”

  “그런 사람… 고마운 사람.”

  은영이 조문을 끝내고 나왔을 때, 남자는 장례식장 입구의 벚나무가 있는 흡연 구역에 있었고 은영을 손짓으로 불렀다. 둘은 함께 담배를 피웠다. 남자는 아주 깊숙이 담배를 빨고는 허공에 연기를 내뱉었다. 그는 보숭이 누나가 왜 죽었는지 진짜 이유를 아느냐고 물었다. 교통사고가 아니냐고 은영이 되묻자 그는 자살이라고 했다. 그는 누나가 어린이집에서 늦게까지 일을 하다 사고를 당한 것이 아니라 남의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 뛰어내린 거라고 했다. 은영에게 오른쪽 새끼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애인이 여자였지비, 음지의 사랑이라고 말하고 그는 은영에게 사람들이 믿고 싶어 하는 건 없는 거라고 했다. 없으니까 악착같이 믿고 싶어 하는 거라고 말하며 은영을 놀리듯 징그럽게 웃었다. 

  자신의 몸이 타들어 가는데도 보숭이 누나는 사진 속에서 여전히 웃고 있었다. 이제 누나는 아는 사람일까? 모르는 사람일까? 

  “누나가 잘 웃던 사람이었던 것 같아.” 

  은영이 말하자 보숭은 아니라고 했다. 이건 셀칸데. 자기 자신한테 웃어 주는 거였다고 했다. 아닌 것 같아. 은영은 고집을 부렸다. 

  “넌 몰라.” 

  보숭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은영을 쳐다봤다. 은영은 진짜 누나가 별 얘기 아닌데도 크게 웃어 주는 사람 같았다. 어쩌면 보숭이 친구죠? 딱 알겠네, 라고 말하고 뭐가 우스운지 크게 웃고는 미안해요, 초면인데, 라고 말해 줄 것 같은 사람. 뚱하고 무뚝뚝한 보숭이와는 정반대였을 것 같은 사람. 어쩌면 은영과 함께 보숭이 앞에서 보숭이 욕을 하며 두루 공모와 애정을 동시에 드러냈을지도 모를 사람이라고 느껴졌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살아 있었다면을 전제하는 것이라 어쩌면 그것과는 정반대의 상황이 진실이었을 수도 있지만 이제는 영영 그것을 알 수 없게 돼버렸다고 은영은 생각했다. 죽는다는 것은 모든 가정과 가능성의 죽음 같았다. 그러니까 손상도 복구도 없는.

  “킹스턴에서는 누구나 우리에게 친절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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