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낭트 공항에 도착했을 때 나는 그야말로 초긴장상태였다. 홀로 하는 첫 비행이었던데다 경유지에서 유심이 불통이 되어 식은땀을 한 바가지 흘렸고, 파리에서 낭트로 이동하는 비행기에서는 유일한 동양인으로서 사람들의 시선을 견뎌야 했기 때문이다. 반쯤은 정신이 나간 채로 짐을 찾고 보니 나의 버디 막심이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해있었다. 그리고 의외의 단어를 보고선 왜인지 조금 안심이 되었다.
"나 공항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어! 핑크색 머리를 찾으면 돼!"
막심이와 나는 서로의 버디로 처음 만났다.
버디란 교환학생과 본교 재학생을 1:1로 매칭해 교환학생들이 잘 정착할 수 있도록 학교에서 준비한 시스템으로, 학기가 시작되기 전부터 개인적으로 버디와 소통하며 이런저런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프랑스로 떠나기 몇 주 전, 매칭 된 버디리스트가 메일로 도착하였다. 떨리는 마음으로 파일을 열어보며 내심 여자이길 바랐다. 여러 가지로 여자인 친구가 이것저것 질문을 하기에도, 함께 놀기에도 더 편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확인한 그 이름 "Maxime". 프랑스 이름이 낯설었지만 누가 봐도 남자 이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막시무스 때문인지 용맹스러운 느낌마저 들었다. 나는 조금 걱정이 되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겪어보기 전엔 모를 일이라며 애써 안심했다.
그리고 며칠 뒤, 막심이에게서 메일이 도착했다.
막심이는 간단히 자기소개를 하고선 나의 비행 일정과 메일이 아닌 다른 연락 수단에 대해 물어왔다. 내가 이름에서 가졌던 인상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메일이었다. 거의 문장 끝마다 붙여진 이모티콘들과 기대감에 가득 찬 말투.. 나는 메일을 읽고선 안심하는 한편 귀여운 친구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우리는 그 뒤로 종종 연락을 주고받았고, 막심이는 내가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 공항에 마중을 나와주겠다고 했다.
당시만 해도 나는 그게 버디의 의무라고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그건 버디의 역할과 관계없이 막심이가 내게 베풀어준 친절이었다. 나의 첫 프랑스 친구 막심이 덕분에 낭트에 대한 첫인상이 좋았다.
그리고 마침내 낭트에 도착했을 때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핑크 머리를 찾았다. 안경을 쓰지 않은 탓에 앞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저 멀리 공항 입구에 다소 마른 체격의 조금 추운 듯 어깨를 움츠리고 반코트 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 넣은 핑크색 머리가 보였다. 생각보다 더 연한 베이비 핑크색이었다. 우리는 서로를 알아보고는 어색하고 짧은 인사를 나눴다. 막심이는 예상한 것보다 수줍음이 많았지만 다행히 나처럼 낯을 가려 말이 없어지는 사람은 아니었고, 기숙사로 이동하는 내내 쉬지 않고 낭트와 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낯선 자극들이 한꺼번에 몰려오는 탓에 그의 말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지만 열심히 알아듣는 척을 했다.
기숙사에 도착해 짐을 풀고 대화를 나누던 중 우연히 막심이에게 남자 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가 동성애자라는 사실보다 남자친구가 있다고 말하는 그의 조심스러운 표정과 말투에서 더 놀라움을 느꼈다. 유럽은 동성애에 대해 한국보다 훨씬 자유롭고 자연스러운 분위기일 것이라고 생각해왔던 내게 그런 그의 태도는 뜻밖이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도 내가 한국에서 왔다는 이유로 걱정했는지도 모르지만 이후 프랑스에서도 동성애에 대한 차별과 조롱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는 내가 그동안 단편적으로 생각해왔음을 느꼈다.
한국에서는 멀리서 그들을 존중한다는 생각만 해왔던 내가 그들과 가까이에서 어울리며 나와 다른 사람들에 대한 (비단 성적 지향뿐만 아니라) 의식하지 못했던 편견이나 그릇된 생각들을 정리하고, 유연하게 생각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막심이는 케이팝과 한국 드라마를 좋아해 혼자 한국어 공부를 하기도 했다. 그의 공책에 가지런히 적힌 한국어가 귀여웠다. 우리는 서로 언어를 가르쳐주기로 했지만 야심 차게 시작한 이 수업은 매번 수다로 시작해 수다로 끝이 났다. 막심이와의 시간은 언제나 그랬다. 영화를 보기로 하거나 게임을 하기로 한 날에도 언제나 수다를 떨다가 시간이 다 가버리곤 했다. 거기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는데, 막심이는 대화를 잘하는 친구였다. 언제나 이야깃거리가 끊이지 않았고 상대방의 말도 잘 들어주었다. 그는 내게 궁금한 것도 많았고 내게 해주고 싶은 말도 많았다. 그와 함께 있으면 나도 평소보다 훨씬 더 말을 많이 하게 됐다.
처음엔 영어로 대화하는 것만으로도 힘이 들어 기숙사에 돌아오면 지쳐쓰러지곤했지만 지나고 보니 오히려 그래서 낭트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다. 여러모로 그를 만난 것이 행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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