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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지 Feb 03. 2022

나의 첫 프랑스 친구, 막심 下

낭트에 머무는 동안 막심이는 꽤 자주 나를 그의 집에 초대했다. 프랑스 친구의 집에 놀러 갈 때면 관광객이 아닌 현지인이 된 기분이 들어 또 다른 즐거움이 있었다. 막심이는 5층 정도 되는 아파트의 꼭대기 층에 살고 있었는데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나선형 계단을 빙글빙글 돌아 한참을 올라가야 했다. 현관 앞에 도착하면 언제나 숨이 찼다. 막심이도 예외는 아니었다.


막심이네 집은 작지만 포근한 공간이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짙은 초록빛의 몬스테라가 보였는데 식물을 잘 키우는 사람들은 대개 따뜻한 마음씨를 갖고 있을 거라 믿는 나는 건강하다 못해 반짝이는 몬스테라를 보고 그가 좋은 사람일 거라 직감했다. (비록 나는 선인장도 죽이는 사람이지만.) 


집은 주택의 다락처럼 한쪽 벽이 기울어져있었다. 창문이 커다랗게 뚫려 있어서 하늘을 보기에는 좋았지만 비가 오는 날에는 창문이 조금이라도 열려있으면 카펫이 축축해졌다. 맞은편에는 붉은색 벽돌로 채워진 벽을 노란색 조명이 비추고 있었고, 그 아래에는 친구들과 찍은 사진이 걸려있었다. 나는 막심이와 어울리며 자연스레 그 사진 속 친구들과도 가까워졌는데 그중에서도 막심이의 단짝 친구들인 레나와 예신과는 금방 친구가 될 수 있었다. 막심이의 소꿉친구인 레나는 언제나 안경을 머리에 얹고 다니고, 장난을 좋아하며, 나보다도 더 Kpop을 잘 알고 있었다. 예신은 막심이의 남자 친구로 언제나 특유의 느긋한 표정을 하고 있으며, 말수가 적고, 요리를 좋아한다. 막심이의 집에는 예쁜 꽃 장식들이 많았는데, 그가 플로리스트라는 말을 듣고는 그 모든 꽃들의 존재가 납득이 되었다.


각자의 개성이 뚜렷한 친구들이고 하나같이 좋은 친구들이었다. 우리는 함께 요리를 해 먹거나 보드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노는 방식은 한국 친구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 언제나 서로에 대한 호기심으로 눈이 반짝였다. 함께 시간을 보낼수록 그들은 내게 ‘프랑스 사람'에서 '친구'가 되었고, 덕분에 나는 한국에 돌아온 뒤로 다른 외국 친구들을 만날때도 조금 더 편안한 마음으로 대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스스로 인복이 가득한 사람이라 여겨왔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한국 한정’이었다. 하지만 나의 인복은 꽤나 세계적이었다. 돌이켜보면 쉽지만은 않았던 타지 생활이 결국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었던 이유의 8할은 바로 좋은 친구들에 있다.


한국에 돌아온 지 1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 우리는 종종 택배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소중한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 또한 멀어진다지만 모두 그런 것은 아닌가 보다. 이렇게 꾸준히 유지되는 관계를 보면 내가 그들과 보낸 시간이 나 혼자만이 아닌 서로에게 좋은 시간이었음을 이야기해주는 것 같아 다행이고 기쁜 마음이다.


그러고 보면 친구란 함께 공유했던 시간을 추억할 수 있는 가장 생생한 일기장 같은 존재인 것 같다. 내게 남달랐던 낭트의 기억을 담고 있는 이 친구들이 소중한 인연으로 여겨지는 이유이다.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이 꼭 올 것만 같다.


낭트에서 도착한 편지와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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