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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지 Jan 14. 2022

낭트 한 입

입으로 떠나는 세계'혀'행

여행 이야기에서 음식은 결코 빠질 수 없는 주제이다. 

그 나라와 지역의 오랜 역사 그리고 문화가 한 접시 위에 모두 담겨있기 때문이다.

이곳 낭트의 대표적인 음식은 갈레트와 사이다(Galette & Cidre)이다. ('시드르'라고 발음하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사이다'가 훨씬 입에 잘 붙는다.) 낭트뿐만 아니라 브르타뉴 지방의 대표 음식이라고 한다. 이름만 듣고는 익숙한 칠성사이다의 맛을 예상했지만 낭트의 사이다는 전혀 다른 맛이었다. 사과즙을 발효시켜 만든 술이라서 그런지 상큼하게 톡 쏘는 느낌이 스파클링 와인과 비슷하고, 목으로 넘어간 뒤에는 입안에 향긋한 사과향이 남는다. 


햄버거와 콜라, 치킨과 맥주처럼 갈레트와 사이다는 세트로 메뉴가 구성되어 있다. 갈레트는 팬케이크 형태의 둥글고 납작한 빵인데, 감싸는 재료에 따라서 식사가 될 수도, 디저트가 될 수도 있다. 처음에는 얇은 빵 자체를 갈레트라고 부르기도 하고, 갈레트로 만든 모든 것들을 통상 갈레트라고 불러서 혼란스러웠지만 우리나라의 '떡'을 떠올리니 금방 이해가 됐다. 떡은 떡볶이처럼 식사가 되기도 하지만 달달한 꿀떡처럼 디저트가 되기도 하니까.

갈레트와 사이다(Galette & Cidre)

지역마다 대표하는 음식이 있으면 그 음식들을 한 데 모아놓은 골목이 있게마련이다. 우리나라의 떡볶이 골목, 순대 골목처럼 낭트에는 '갈레트 골목'이 있다. 즐비한 갈레트 레스토랑들 사이를 지나가면 맛있는 갈레트와 상큼한 사이다 냄새를 맡을 수 있다.


내가 처음 맛 본 갈레트는 프랑스 친구 레나와 함께 갈레트 골목에서 먹은 모차렐라 토마토 갈레트이다. 신선한 토마토소스와 모차렐라 치즈 그리고 고소한 반숙 계란이 갈레트와 잘 어우러져서 꼭 곡물향이 나는 피자 같았다. 짭쪼름한 갈레트와 사이다의 조합은 말이 필요 없는 단짠단짠. 낭트에서는 아주 일상적인 메뉴라고하지만 레나는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을 맛이라고 했다.


낭트의 대표적인 음식이 갈레트라면 대표적인 디저트로는 갸또 낭테(Gâteau Nantais)가 있다.

갸또 낭테는 '낭트 케이크'라는 뜻으로 아주 촉촉하고 달달한 케이크이다. 오리지널 갸또 낭테에는 럼이 들어가는데 알코올이 부담스럽다면 오렌지, 초콜릿과 같은 럼이 들어가지 않은 갸또 낭테도 있다.


나는 오리지널 갸또 낭테를 먹어보았다. 한 입 베어 물자마자 럼을 머금은 빵이 입 안을 촉촉하게 적시고, 이내 향긋하고 강한 럼향이 코 끝을 쳤다. 맛은 아주 달지만 럼향과 조화로워서 기분 좋은 달달함이 느껴졌다. 밀도가 진하게 느껴지는 맛으로 한꺼번에 많이 먹지는 못했지만 와인이나 맥주와 함께 먹기 좋은 디저트라서 한국으로 돌아온 지금도 종종 떠오르곤 한다.

갸또 낭테(Gâteau Nantais)


낭트 대표 음식은 아니지만 프랑스의 대표적인 겨울 음식 라클렛(Raclette)도 머무는 동안 자주 먹었다.

여러 가지 치즈를 녹여 감자, 채소, 햄 등과 함께 먹는 음식인데, 가을과 겨울을 낭트에서 보낸 덕에 나 또한 이 라클렛을 맛볼 수 있었다. 라클렛을 먹기 위해서는 전용 그릴이 있어야 한다. 이 그릴은 감자, 채소 등을 굽기 위한 커다란 팬 아래에 치즈를 녹이기 위한 작은 팬 여러 개가 들어가 있고, 치즈를 긁어내기 위한 도구도 있다. 여러 가지 형태와 크기가 있어서 집집마다 하나씩은 꼭 있고, 기념으로 사가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막심이네서 먹은 라클렛(Raclette)

라클렛 그릴이 없는 나는 프랑스 친구들의 집에서 라클렛을 맛볼 수 있었다. 라클렛을 먹는 방법은 간단하다.

우선 커다란 솥에 감자를 삶고 치즈와 햄, 채소 등 재료를 준비한다. 그릴을 달군 뒤에 치즈 전용 팬에 먹고 싶은 라클렛 치즈를 얹어 그릴에 넣고, 치즈가 녹기를 기다리는 동안 고기와 채소 등을 커다란 팬 위에 올린다. 치즈가 녹아 보글보글 끓을 때쯤 팬을 꺼내서 포슬포슬 익은 감자 위에 긁어서 얹고, 구운 고기, 채소와 함께 먹으면 된다. 다양한 재료를 하나의 그릴에서 함께 구워 입맛에 맞게 접시에 담에 먹는 방식이 한국의 고기쌈문화를 떠올리게도 했다. 미슐랭도 좋고 값비싼 레스토랑의 음식도 좋지만 이렇게 프랑스인들의 일상을 느낄 수 있는 음식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여행에서 추억은 감각으로 기억된다.

거리의 냄새, 음식의 맛, 상점의 음악 같은 것들이 여행지에서 덕지덕지 배이며 기록되는 것이다. '맛'은 그중에서도 가장 강력하고 또 오래 지속되는 기억을 선물해준다. 내가 맛본 낭트는 갈레트의 담백함, 갸또 낭테의 럼향, 라클렛의 따뜻한 치즈가 함께 어우러져 아주 포근하고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기억뿐만 아니라 뱃살로도 남았지만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애써 여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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