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노-커피 수업
가을비 내리는 우요일, 노노스쿨에서 커피 수업은 가을비가 내리던 수요일이었다. 1학기에 수요일마다 우리는 차, 와인, 사진, 정리수납, 캘리, 칼림바 수업을 했었다. 이번엔 커피 수업이다. 2주에 걸쳐 하게 될 첫 수업은 커피의 기원설부터 설명하신다. 우리나라에서 커피를 가장 먼저 즐긴 사람, 커피 파종과 경작 수확 건조 가공을 거친 커피콩이 우리에게 커피 한 잔으로 오기까지의 과정을 듣고 점심 후에는 손수 그라인더에 갈아 여과지에 내린 커피를 한 잔씩 나누는 수업이다.
커피를 즐기지 않고 커피 맛을 모르는 나는 커피점에 들르면 봄과 가을 가리지 않고 으레 따듯한 카페라테만을 고집한다. 하지만 아침 식사 후 남편과 믹스 커피 한 잔씩 나눠마시는 게 커피를 즐기는 유일한 낙이어서 달리 말하면 의미 있는 수업이다.
내게 커피는 늘 추억과 함께였다.
여고 시절, 친구 집에 놀러 가면 바가지에 가득 타주던 커피 맛이 첫 기억이다. 달콤하고 쌉싸름한 향기 속에서 우리는 소녀들의 꿈을 이야기하며 친한 친구가 됐다. 그다음 기억나는 커피는 도청 앞 경남다방에서 설탕 둘, 프림 둘 넣은 달달한 다방 커피였다. 몇 번의 약속을 위해 그 다방에 갈 때마다 나는 커피를 탄 후 설탕과 크림통을 톡톡 탁자에 쳐서 표면을 고르게 한 다음 살며시 내려놓았었다. 오래도록 나는 커피를 마실 적마다 설탕 둘, 프림 둘을 고집했다.
그 후, 서울에 올라와 첫 사무실에서 미스고 언니가 타주던 ‘프림 고봉 셋’ 들어간 고소했던 맛의 커피를 오래 잊지 못한다. 탕비실에 커피를 타 두고 고개를 내밀어 살짝 불러내던 기억은 아직도 따듯하다. 나는 그 후 그렇게 믹스봉지 커피에 길들어 갔다.
커피콩을 고르고 그라인더로 곱게 갈아 내려 마시는 풍미보다는 화하게 퍼져가는 프림맛이 좋았다.
세월이 흘러 사무실에 커다란 커피머신이 들어오고 아르바이트생이 일하던 시절, 그 언니가 다시 같은 직장 동료로 돌아와 직접 내린 커피를 챙겨주던 장면도 잊을 수 없다.
그녀는 내 첫 직장과 끝 직장을 함께 한 인연이다.
나는 세련된 커피 맛은 잘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나에게 가장 소중한 커피는 남편과 함께 나누는 커피 한 잔이다. 그 소박한 커피가 하루를 여는 의식이 되고, 작은 행복이 된다.
커피는 내 삶 곳곳에서 만난 인연을 이어주고, 추억을 담아내는 그릇이었다. 그리고 오늘도 그 향은, 내 곁에 있던 사람들과 나눈 시간의 기록이 된다.
노노에서 커피 수업이 있던 날.
커피 한 잔을 나누기에 적당한 비가 종일 내린다.
커피 원산지, 우리에게 오게 된 커피 이야기 등 선생님의 강의보다 내린 커피 한잔으로 행복하다.
커피는 기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