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나마 다행이었다. 3층 자율학습실이 아니었다면 오늘은 스타벅스를 세 군데쯤 전전할 각오를 했을 것이다.
‘밖에 눈 온다!’
온통 희끄무레한 오후 나절. 백여 석은 족히 넘어 보이는 314호 강의실은 만석이고, 열기는 후끈하다. 또래로 보이는 어르신들마저 제법 활기차다.
나는 오늘 대부분의 오전과 늦은 오후까지 이곳에서 지낼 참이다.
일곱 과목을 이수해야 하는 이번 학기, 리포트 하나가 부족한 과목이 생겼다. 이 과목을 어찌할까 고민하다가 특단의 대책을 세웠다. 오전에 집중해 공부하고, 오후 늦게 현장에서 시험을 치르는 것.
밖에는 눈이 온다는데, 이러고 있는 내가 온전히 이해되지는 않는다.
이곳에 적을 둔 시간만 스무 해 남짓. 지금도 시험 앞에서 진심인 걸 보면, 그 열정은 조금도 식지 않았다.
뚜렷한 목적의식은 없다. 무심히 책을 보고 시험을 치른 뒤, 그저 성적표를 받아보는 일이다.
다만 한가지, 지금까지 버티어 온 나를 멈추지 않고 지탱하게 하는 것.
내가 이 공부를 처음 시작한 건, 이른 나이에 ‘학생’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한 아쉬움 때문이었다. 그 후로 나는 평생 집과 직장 사이의 편안한 틈마다 방송대와 함께해 왔고, 이제 여섯 번째 졸업을 앞두고 있다.
늘 “이제는 그만하자” 말하지만, 아무 일 없이 편안한 시간은 나를 가만두지 않는다.
올해도 노노스쿨과 이 공부를 병행하며 나름 부지런을 떨었다.
그동안 규정은 참 많이도 바뀌었다.
80년대 초, 처음 입학했을 땐 리포트 과제를 200자 원고지에 적어 십 리 길을 걸어 나가 우체국에서 부쳤고, 성적표는 우편배달부가 집까지 가져다주었다. 동숭동은 내 우편물의 수·발신지였고, 멀고도 먼 동경의 도시였다.
B4 용지를 나눠준 뒤 주관식으로 답안을 써 내려가던 기억. OMR은 그 이후의 일이었다.
카세트테이프에 방송강의를 녹음해 교재와 함께 배포하던 시절도 있었다. 라디오는 시험공부에 꽤 요긴했다.
동영상 강의를 생략한 채 객관식 시험을 준비해도, 지금처럼 ‘완결 체크’ 기능이 없던 시절은 오히려 좋았다.
태블릿으로 기말시험을 치르게 된 건 불과 얼마 전의 일이다. 종이 시험지가 아닌 것, 필기도구 없이 화면 위에서 정답을 체크해야 하는 방식은 아직도 낯설다. 대신 시험 응시 날짜를 스스로 정할 수 있다.
이수해야 할 과목에 맞춰 평일과 주말, 원하는 날짜와 시간을 지정하면 이번 주에 네 과목, 다음 주에 세 과목으로 나눠 치를 수도 있다.
스케줄 관리가 가능해졌고, 시험공부를 전략적으로 분산할 수도 있다. 비슷한 과목을 묶어 랜덤 문제에 대비하거나, 어려운 과목 하나를 뒤로 빼 집중해 준비하는 것도 가능하다.
점수에 연연하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한 학기를 마치고 나면,
‘벗어나지 않고 또 잘 살아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속도감 있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나도 여전히 동참하고 있구나’ 하는 뿌듯함도 따라온다.
나이테 하나를 더 보탠 보람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