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허고진에서 만난 청춘

중국 (5)

by 이수하

호도협 트레킹을 마친 후 티나객잔 앞에서 버스를 타고 리장으로 돌아갔다. 리장 버스터미널에서 배낭을 찾은 후 다음 행선지인 수허고진을 가기 위해 버스를 탔다. 버스에서 내린 후 더 가깝게 보이는 장엄한 옥룡설산과 탁 트인 전경에 나는 입을 다물지 못했고 수허고진을 선택하길 정말 너무 잘했다고 생각했다. 수허고진은 나시족이 리장에서 가장 먼저 정착한 옛마을로 알려져 있다. 리장에는 3개의 고성이 있다. 가장 큰 고성이 리장고성, 그 다음이 수허고진이다. 어차피 같은 고성이니까 비슷하겠거니 생각했지만 웬걸. 너무 다르다. 수허고진이 훨씬 고즈넉하다. 리장고성보다 덜 관광지화되었으며 관광객이 적어 한적하고 여유롭다. 리장고성은 가장 큰 고성답게 관광객들로 붐비는데 수허고진은 고즈넉하고 옛스러운 느낌을 잔뜩 풍겨 첫눈에 호감이었다. 역시 나는 고즈넉하고 소박한 분위기가 좋다. 마음이 좋아진다. 내 마음도 같이 고즈넉해지고 차분해진다. 충만해진다.

이번 숙소는 호스텔 도미토리를 선택했다. 이곳을 추천하는 후기들을 보고 선택했는데 정말 낭만적인 곳이었다. 특히 해가 지면 야외 영화를 틀어주는데 그게 아주 낭만이 충만하다. 호스텔이라고 하기엔 규모가 크고 인프라가 잘 구축되어 있으며 몹시 깔끔해서 호텔 같은 호스텔이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호스텔에 묵어봤고 이곳은 그중 가장 낭만적인 곳인데, 이곳 직원들이 거의 대부분 젊은 중국청년들이라는 점도 눈에 띄었다. 그들끼리 친구처럼 지내는 모습이 마치 청춘영화 한 장면 같았다. 직장 동료로 일한다기보다 같은 대학 같은 학과 친구들이 모여 일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하긴, 호스텔에서 또래끼리 일하면 정말 재밌지.

그들의 모습을 보면 한때 게스트하우스에서 일했던 그 시절이 떠오른다. 그 시절의 내 인생은, 청춘영화 그 자체였다. 한국인 근이, 중국인 유학생 범이, 재일교포 리, 아르헨티나 교포 리카. 외국에서 온 친구들은 게스트하우스에서 살면서 일했기 때문에 나는 그들을 거의 가족처럼 느꼈다. 스탭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너무 재밌었고 다양한 국적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즐거웠다. 무엇보다도 나는 그곳에서 첫사랑 원이를 만났다. 사실 나는 원이랑 사귀지도 못하고, 그를 알기 전에 연애를 몇 번 했었지만 원이를 알면서 처음으로 강렬한 감정을 느꼈다. 이 정도로 누군가를 좋아해본 적이 없어서 나는 무척이나 당황했고 또 어설펐다. 실수하고 잘못했다. 아니란 걸 아는데, 포기하지 않았다. 첫사랑이라 그런건지, 포기가 안됐다. 원이 이후로도 다른 이와 연애도 해봤지만 그 정도의 감정은 찾아오지 않았고, 안 올 것이고, 안 오기를 바란다. 강력하고 강렬한 쓰나미 같은 감정은 내 인생에 있어서 한 번으로 충분하다. 첫사랑은 그냥, 첫사랑으로 남는 것이다. 어찌됐건 내 인생 청춘영화의 로맨스는 나에게 몹시 큰 교훈을 주었다. 사랑은 타이밍이며, 곰이 인간이 되기 위해 쑥과 마늘을 씹는 것처럼 매서운 인내심과 동시에 예리한 눈치가 필요하다. 그땐 참 배려하는 인내심도 없고 눈치도 엄청 없었다. 그저 감정에 이리 휩쓸리고 저리 휩쓸렸다. 무엇보다도 원이와 나의 타이밍은 기가 막히게 맞지 않았고, 그래서 우린 더욱 아니었다. 이젠 타이밍이 자꾸 어긋나는 사람은 미련없이 빠이다. 그냥 내 사람 아니겠거니, 미련을 두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것을 나는 처절하게 깨달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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