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에서 일할 때 우리끼리 서로 우스갯소리로 이런 말을 했다. 참 가끔은 외국인보다 한국인이 더 말이 안 통해. 분명 서로 같은 언어를 쓰는데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나라마다 각기 다른 언어를 쓰는 것처럼 사람마다 사용하는 사랑의 언어도 다양하다. 내가 사랑으로 인식하는 언어는 곁에 머무름과 따뜻한 표현이고 엄마는 직접 행동하는 헌신이다.
엄마와 아빠는 아예 다른 성향의 사람들이고, 나는 아빠를 많이 닮았다. 엄마와 아빠가 서로 갈등하는 과정에서 서로를 받아들인 것처럼, 엄마와 나도 그런 과정을 지나갔다.
내가 엄마의 인생 로드맵이자 안전책에서 벗어날 때마다, 나의 자아가 고개를 들 때마다 우린 불같이 싸웠다. 나의 자아가 엄마의 자아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엄마는 숨죽였던 나의 자아가 고개를 들 때마다 크게 놀라며 받아들이지 못했다. 아무래도 나의 자유로운 영혼이 엄마의 불안 버튼을 눌렀던 것 같다.
“난 너 이렇게 사는 거 못 봐! 당장 회사에 들어가. 당장 취직해.”
“내 인생이야. 엄마, 제발 좀. 내 인생이라고. 엄마 인생이 아니야!”
나는 엄마를 부드럽게 설득하지 못했다. 평생 억눌렸던 마음을 폭발적으로 드러냈다. 우린 서로 사랑하면서 서로에게 큰 상처를 입히고 감정적으로 몰아세웠다. 서로 자기가 맞다고 우겼다. 엄마의 통제적 성향이 몸서리치게 싫었던 나는 이후로도 통제적 성향이 강한 사람을 만나면 강한 거부감을 느꼈다. 나의 방황기에 격렬했던 갈등은 내가 나의 길을 만들어가며 잠잠해졌다.
어느 날은 동생 얘기를 하다가 엄마는 갑자기 툭 동생과 나를 비교하며 울컥 외쳤다.
“넌 왜 이 씨인 거니!”
나보고 아빠를 왜 닮았냐니. 그 말에 가히 황당하여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왜 이 씨라니. 엄마는 현 씨, 아빠는 이 씨니까 내가 이 씨인 거지! 되받아치기엔 엄마의 마음을 나는 조금 알 것 같았다. 엄마의 외침엔 엄마의 서글픔, 원망, 슬픔이 뭉친 무언가가 서려있었다. 큰딸인 나는 아빠를 그대로 닮았고 두 여동생은 엄마 판박이다. 엄마에겐 미안하지만 지금 나는 내가 이 씨라서 좋다. 다정한 이 씨여서 좋다. 여리지만 따뜻한, 세상살이 어려운 성격이지만 결국 따뜻함이 모든 걸 이길 거라는 믿음을 가진, 그래서 상처받아도 용서하고 다시 계속 사랑하려고 애쓰는 그런 이 씨인 내가 좋다.
엄마는 멋있는 커리어우먼이었고 은연중에 나는 그 표상을 따라갔다. 나는 나라는 사람을 자각하면서 내 안에 거짓된 커리어우먼 환상을 몰아내기 시작했다. 그건 나의 것이 아니다. 환상을 따라간다면 그 환상에 미치지 못하는 나를 보며 계속 좌절할 것이다. 나는, 나다. 나는 자연스럽게 내가 좋아하는 걸 따라갔다. 충무로 호텔에서 일하면서 호텔 앞에 라이팅룸이라는 공간을 알게 됐다. 우연히 알게 된 ‘쓰는 공간’은 나의 ‘쓰는 삶’의 시작이 되었다. 나의 글쓰기는 완벽하게 준비가 된 상태에서 시작한게 아니었고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그냥 썼다. 계속 썼다. 처음이었고, 어쩌면 첫사랑이다. 누가 시켜서가 아닌, 내가 원해서 꾸준히 한 일.
비참함의 문을 열었는데 예상 외로 행복이 기다리고 있었다.
방문을 열고 나갈 수 없었다. 가장 비참하다고 느꼈을 때 나는 내 몸을 도로 위로 던졌고 다시 정신을 차렸다. 바로 다음 날 병원 문을 두드렸다. 내가 예전의 나와 다르고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은 나를 침몰시켰다. 그러나 인생은 늘 불행하기만 하지도 않고 늘 행복하기만 하지도 않게 설계된 것 같다. 인생의 밑바닥을 친 시기는 어떤 전조증상 같다. 뭔가 기다리고 있다. 비참함의 문을 열고 도리어 나는 어둠에서 벗어났다.
나는 어릴 때부터 깊이 우울했고 상처와 원망이 원 플러스 원인 것처럼 우울과 충동성이 늘 붙어다녔다. 나는 내가 충동성이 강한 사람이라는 것을 이 시기에 처음 자각했다. 아이일 적부터 늘 나의 장례식을 상상하고 꿈꿨으며 횡단보도를 건널 때마다 지나가는 차가 나를 치길 바랐다. 어릴 때부터 이런 생각을 해서 나는 모두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줄 알았는데 아니란 걸 한참 뒤에 알았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나를 갉아먹는다는 자각이 생긴 순간 의식적으로 이런 생각들을 중단했다.
최지은 작가가 자신의 에세이 ‘우리의 여름에게’에서 가장 어두웠던 그 시기 시를 쓰기 시작했다고 한 것처럼, 나는 가장 어두웠던 시기에 나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꺼내지 못해 안에서 썩어가는 마음을 써내려갔다. 학원 뺑뺑이를 가며 성적표에 자신의 존재적 가치를 둔 아이는 이제 자신만의 책상 위에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써내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