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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 sun 리선 Dec 12. 2022

흰머리 소녀의 그림일기

어머님 뭐 먹을 거 없나요? 


"어머님 뭐 먹을 거 없을까요?"


언제부터인가 남이 나를 부르는 호칭이 달라졌다

나도 이제 나이가 들긴 들었나 보다 

지하철 안에서였다. 어떤 낯선 젊은이가 내 옆을 지나가며 말을 걸었다.

갑자기 물어보는 상황이라 생각할 여지도 없이 나는,

"없는데요"

곧바로 젊은 친구는 휑하니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다음칸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나서야 내 가방 속에는 먹을 것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가끔씩 간식을 먹을 필요가 있을 때를 대비해서 초콜릿과 젤리를 가지고 다니는데, 그 사실을 깜빡하고 있었다.


그 젊은이의 모습이 갑자기 안타까워졌다. 배가 고파서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하고 다니는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일까 생각했다. 만약 그 젊은이가 다시 나에게 다가온다면, 내가 손에 든 초콜릿과 젤리를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용기를 가지고 공사판에서라도 일하며 돈을 벌 수 있는데 왜 저렇게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다니는 걸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젊은이가 이런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는 사실이 너무 안타까웠다. 아직도 먹을 것이 없어서 그렇게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내 마음을 더욱 무겁게 만들었다. 젊은이의 앞날이 걱정되기도 했다.


그때, 지하철 노인석에 앉아있던 한 할머니가 젊은이를 향해 나지막이 말했다.

"한참 젊은 나이에, 왜 저러고 다닌댜? 막일이라도 해서 돈을 벌 생각을 해야지... 쯧쯧."


그 말을 듣고 있던 젊은이는 갑자기 마스크를 내리고, 눈을 부릅뜨며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젊은이가 왜 이러고 다니냐고요? 저라도 이렇게 하고 싶어 이러겠냐고요? 저도 정말 싫습니다. 갑자기 부모님 다 돌아가시고 저 혼자 살아가기가 막막해서 노숙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도와주지도 않으면서 말씀 함부로 하지 마세요."

그래 그런 자존심이라도 남아 있다면, 그 용기로 세상 밖으로 뛰쳐나가 무슨 일이던 해봤으면 좋겠다. 가장 큰 재산 '젊음'이라는 걸 가지고 있지 않은가 라며 속으로 나 혼잣말을 했다.


이 말을 듣고 나니까, 내가 처음에 그 젊은이의 상황을 얼마나 잘못 이해하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그의 눈빛에는 분노와 상처가 함께 녹아있었다. 그의 말에서는 그가 얼마나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남을 너무 단순하게 평가하거나 비난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나름대로 각자의 이유와 사정이 있으며, 그 어려움을 이해하고 공감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만약 그에게 초콜릿을 줬더라면, 

초콜릿 하나로 그 젊은이의 배고픔을 채울 순 없었겠지만, 먹을 것 하나를 나누는 작은 행동이 청년에게 큰 의미를 갖는 것처럼, 우리 일상에서 작은 선행을 통해 사람들에게 나눔과 따뜻함을 전할 수 있지는 않았을까 생각해 보았다. 


우리의 인생이 함께 하는 여행이라면,     

작은 갈등이나 불만을 품지 않고, 함께 하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인생은 짧고 소중하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떠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나의 마음을 열어두고, 작은 불편함이나 갈등에 휩쓸리지 않고,      

감사하며 여행을 해 나가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다.     

우리는 이 여정에서 어떤 역이 내 인생의 마지막 역이 될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완벽함이 아니다. 여행지에서 불편함을 겪을 때마다 새겨 보는 말이다.     

'나는 잠시 이곳에 여행 온 거야, 곧 여길 떠나게 될 것이다.'     

라며 생각을 하면, 불필요한 감정이 곧 사라지게 되고 어떠한 것에라도 부정적인 무게가 실리지 않게 된다.     

사는 동안 언제나 감각은 열어 놓아두되 사소한 것에 화를 내거나 마음이 무너지지 않아야겠다.     

우리가 함께 하는 여행 시간은 너무 짧다.     

어쩌면 당신과 나는 다음 정거장에 내려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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