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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요 Mar 06. 2020

신기루 (1)

하루에 세알 이상은 안돼요



최근 계속해서 괜찮다가 괜찮다고 생각해와서 그랬던 건진 모르겠지만

평범하고 행복하게 지내다 이틀 전부터 심장 쪽이 너무 아프고 아려와서

마지막으로 있던 약을 먹었다.

약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던 터라 병원 예약은 저번 주에 했었다.

어제 오랜만에 다녀왔다.


예약은 3시 30분. 시간이 남아 중고서점에 가서 책을 읽었다.

예전 눈여겨봐 뒀던 책이 있었지만 이미 집에 물건이 너무 많아 정리를 하고 있던 터라

읽기만 하고 다시 꽃아 뒀다.

병원은 조금 오래된 건물에 5층이었다.



'오랜만이네요. 요즘은 좀 어떤가요?'



늘 그렇듯

같은 질문을 받고


'요즘은 좋아졌어요. 많이 좋아졌어요.'


같은 대답을 했다.



사적인 얘기는 길게 하고 싶지 않았기에

어차피 해도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기에

그냥 약에 대한 부분만 이야기를 나눴다.



'그때 받았던 알약 세 알. 그게 잘 들었어요. 최근에 다 먹었어요.'



'아 - 이제 다 드신 거예요? 띄엄띄엄 드셨네요. 많이 심하진 않으셨나 봐요.'



'네. 매번 그렇지는 않았었어요.'



'아- 참을 수 있을 정도였나 보네요.'



'네'





그렇지.

참을 수 있냐 없냐의 기준은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못 참을 만큼 힘들진 않았으니까 

그때처럼.






'요즘은 더 아프다거나 불안증세나 다른 부분이 불편한 건 없으신가요?'



'최근에 불안감이 갑자기 오긴 했었어요. 그리고 이쪽 가슴이 아팠어요.'



'아 그럼 그럴 때 따로 드실 수 있는 약을 처방해 드릴게요.'



'네. 전에 주셨던 한알 짜린 먹어도 먹은 것 같지 않더라고요.'



'그건 좀 약한 거라 그럴 거예요. 그럼 다른 걸로 드릴게요. 이건 강한 편이라 반알씩 드릴 테니

하루에 세 번 이상 드시지 마세요.'



'네. 감사합니다'



그저 매번 약을 타러 가는 용도로 간다. 병원은


역시 보험이 되지 않는 얄궂은 약값과 비용은 오늘도 다시금 나를 놀라게 한다.

뭘 놀래고. 새삼스럽게.

첫날은 십만 원 정도가 나왔었는데. 그거에 비하면 껌이지.

난 술도 담배도 안 하니까.


거기서 반알짜리 약을 먹고 싶었지만 일단 집에 가서 먹어야지 생각하고 돌아왔다.


-


친구 K에게 연락했다. 누구라도 만나 얘기하고 싶었다. cafe sarr라고 했다.

카톡으로 '지금 갈게'라고 했더니 지금 데이트 중이라고 좀 있다 보자고 했다.

방해하고 싶지 않으니 데이트 잘하라고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자마자 약을 먹고 몽롱하게 기절하듯 잠을 잤다.

두 시간이 지나있었다.

K에게 연락이 와있었다. 사실 그전에 연락 온 걸 보고 잠이 든 것 같기도 했다.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도저히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다. 잠깐 일어나니 그렇게 어지러울 수가 없다.

약이 너무 강한 건가. 눈앞이 빙글빙글 돈다.

약이 나를 먹은 건지 내가 약을 먹은 건지 모르겠다.

겨우 의자에 앉았다.

일단 뭐라도 먹어야겠다.

저녁을 먹고 범죄 스릴러를 봤다.

밤엔 다시 잠이 오지 않아 두시까지 깨어있다가 자기 전에 먹는 약 (3알)을 먹었다.

기절하듯 잠들었다.


-


아침에 몽롱하게 일어났고 밥을 먹고 할 일을 했다.

또 낮잠을 잤다. 소리가 들리는데도 잘 잤다.

일어나 다시 밥을 먹고 그림을 그렸다.

잘 잤다. 정말로

샤워를 하는데

이렇게 정신이 말짱한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그럼 그 전에는 어떤 정신으로 살아왔던 걸까.

더 이상 불안하거나 흔들리지 않는다.

정신은 그렇지 않지만

몸이 흔들릴 뿐.


그래도 최근 들어 가장 잘 잔 이틀이다.



어쨌든,

약이 필요하면 약을 먹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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