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림책 일러스트를 하기로 결정하게 된 이유
사실 추상적이고 감성적인 글은 나에게 익숙하고 편한데 이런 실질적이고 직관적인 글을 쓰는 건 여전히도 낯설고 어렵다. 그래도 기록을 통해 내가 한주 동안 어떤 일을 해왔는지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어 좋다.
지난주에는 여러 가지 스타일의 그림을 시도해 보고 고민해 보았다. 나만의 그림체와 스타일을 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그리고 싶은 취향의 그림체들은 어찌나 많은지 그리하여 인스타그램 계정이 5개가 탄생했다. 한 번에 다 만들었던 건 아니고 만들다 보니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하나는 개인적인 글과 사진을 올리는 계정, 나머지 4개는 모두 그림 계정이다. 하나는 러프 펜선 스케치, 다른 하나는 일상툰(메인 계정), 동화책 삽화 계정(두 번째 메인), 또 마지막은 그로테스크한 타투 스타일의 일러스트 계정이 있다. 내 속에 너무나 많은 내가 존재하는 것처럼 그림을 그릴 때도 그렇다.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어떤 상태인지에 따라 그리게 되는 그림이 다르다. 물론 지금은 동화 삽화를 좀 더 메인으로 그리고 준비하고 있으며 이건 일로써 하고 싶기 때문에 기분이나 상태와 관계없이 계속해서 그려나가고 있다.
사실 내가 동화 삽화를 내 그림의 메인 그림으로 정하게 된 이유는 내가 좀 더 따뜻하고 즐거운 메시지를 주고 싶기 때문이었고 그런 인생을 살고 싶기 때문인 게 크다. 예를 들어 그로테스크한 타투 스타일의 그림은 이전에 친구 가게에 그림을 판매한 적이 있고 티셔츠 콜라보를 하고 싶다 하여 보류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늘 그 그림을 그릴 때 나는 힘들고 우울했던 적이 많았다. 그런 마음속의 힘듦을 해소하기 위해 계속해서 그런 그림을 그렸었다. 그리고 그 그림은 가족들에게 보여주기 힘들었고 내 친구들이나 다른 사람들에게도 쉽게 공유할 수 없었다. 호불호가 갈리는 그림이었고 누구나 편하게 볼 수 있는 그림은 아니었다. 나는 작품에 너무나도 쉽게 공명하는 사람이기에 영화나 드라마, 웹툰, 소설을 볼 때에도 장르와 문체와 분위기를 굉장히 가리는 편이다. 너무 쉽게 빠져들고 헤어 나오기를 어려워해서 스스로 어느 정도 그런 작품들과는 거리를 둔다. 마찬가지로 내가 그리는 그림과도 쉽게 공명한다. 그렇기에 나는 내가 원하는 인생에 맞는 그림을 선택해야 했다. 일단 첫 번째로 가족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마음이 컸다. 지금은 결혼과 육아가 먼 일이지만 그래도 나중에 하게 된다면 아기에게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조카들과 내가 가르쳤던 아이들이 볼 수 있는 그림이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무엇보다 나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걸 좋아하고 웃긴 장난을 치는 걸 좋아한다. 그런 것들이 모두 들어간 이야기와 그림을 만들고 싶다. 그래서 동화책 일러스트로 결정을 하게 된 것이다.
현재에도 그림책 시놉시스는 여러 개가 있다. 자기 전이나 샤워를 할 때 길을 걷다가 갑자기 문득문득 이야기들이 떠오른다. 그 이야기를 쓰다 보면 처음에는 무생물이었던 캐릭터들이 나중에는 속에서 살아 움직이고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만들어 나간다. 그런 과정들이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다. 예를 들어 그냥 한 장의 그림을 그리더라도 캐릭터 성격이나 특징들을 정해둔다. 사실 캐릭터 설정 시 MBTI 가 굉장히 도움이 된다. 이 전에도 사람들 성격이나 성향/ 심리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관계성에 흥미를 가지던 터라 더 흥미가 갔다.
예를 들어 이 그림은 토요일에 그렸던 그림인데 이런 식으로 캐릭터별 mbti를 설정해서 한 장의 그림임에도 불구하고 작은 이야기를 담아 넣었다. mbti를 아는 사람들은 느끼겠지만 여기서 소녀와 개구리 이 둘은 추상적이고 직관에 의존하여 생각하고 판단을 내리고 즉흥적이기 때문에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계획파 코끼리가 고생을 할 가능성이 크다. 이 셋은 친구 관계일까? 모임에서 만난 사이일까? 직장동료일까? 이런 질문을 던져봐도 금방 재밌는 이야기 한편이 뚝딱 나올 수 있다. 이 한 장을 그려둔 후에 이 셋의 이야기를 담은 여러 종류의 그림을 좀 더 그려보면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셋이 만나게 된 과정이라든지 도착하여 어떻게 등산을 시작하는지 등산 과정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캠핑하다가 어떤 문제가 터질지, 과연 셋은 무사히 정상을 올라갔을지, 셋의 성격과 취향은 어떤 부분이 다르고 그런 부분으로 인해 생기는 마찰과 문제들은 어떤게 있을지, 중간에 어떤 에피소드를 넣을지 생각하는 일들은 나를 정말로 설레게 만든다. 그리고 생각하다 보면 이야기는 끝이 없고 즐거운 창작 여정의 연속이다. 처음에 스케치를 할 때는 생명이 없다가 이렇게 캐릭터성과 생명을 불어넣는 순간 캐릭터들이 알아서 움직인다. 캐릭터들을 만든 후부터는 내 관할이 아닌 자신들이 그들의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느낌을 받는다. 나는 그저 그걸 도와주고 표현해주기만 할 뿐 주체는 캐릭터들이다. 내가 만든 캐릭터들이 살아 움직일 때 정말 큰 행복감을 느낀다.
그리하여 완성한 그림은 바로 이 그림이다. 저 단풍들은 하나하나 점을 찍어서 그렸다. 처음에는 컬러 팔레트를 정하는 게 조금 막막했지만 내 감을 따라서 채색하다 보니 완성이 꽤나 만족스러웠다. 나중에 추후 엽서로도 제작할 예정이고 실물을 받아볼 생각을 하니 설렌다. 내 이야기가 담긴 그림을 더 많이 만들고 싶다. 어떻게 될지 모르니 다음 제작부터는 사이즈를 좀 더 크게 제작해야겠다.
요즘에는 쉽게 책을 낼 수 있고 그림책 내는 워크숍도 많이 진행하는 걸로 알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좀 더 기다리고 준비하는 시간을 가져보고 싶다. 첫 책을 내기 전 좀 더 많은 생각들을 수집하고 정리해서 제대로 된 책을 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