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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정인 Feb 18. 2023

절망과 희망

양극성장애가 계속되는 이유

� <어린이라는 세계> 김소영 작가

- 나는 삶을 선택할 수 있었다. 문제 해결은 여전히 요원하므로 어떤 의미에서는 날마다 살기로 선택하고 있는 셈이다. 나처럼 선택의 순간을 가졌든 아니든 간에, 지금 살아 있는 사람은 삶을 선택한 것이다. 그렇다면 살아 있는 사람은 무엇이든 어떻게든 해야 되는 것이 아닐까. 삶을 선택한다는 건 나아가겠다고 선택하는 것이니까. 나아가려면 외면할 수 없으니까. 나아가려면 맞서야 하니까. 삶을 선택한다는 건 그런 것이니까.  


- 언제나 절망이 더 쉽다. 절망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얻을 수 있고, 무엇을 맡겨도 기꺼이 받아 준다. 희망은 그 반대다. 갖기로 마음먹는 순간부터 요구하는 것이 많다. 바라는 게 있으면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고, 외면하면 안 된다고, 심지어 절망할 각오도 해야 한다고 우리를 혼낸다. 희망은 늘 절망보다 가차 없다. 그래서 우리를 걷게 한다.


� 절망

1. 바라볼 것이 없게 되어 모든 희망을 끊어 버림. 또는 그런 상태.

절망에 빠지다.

2. 실존 철학에서, 인간이 극한 상황에 직면하여 자기의 유한성과 허무성을 깨달았을 때의 정신 상태.

�희망

1. 어떤 일을 이루거나 하기를 바람.

희망 사항.

2. 앞으로 잘될 수 있는 가능성.

희망이 보이다.


* 나의 생각

  이렇게 살 바에는 죽는 게 낫지 않나라는 생각의 빈도가 잦아져서 막막한 요즘이었다.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그래도 살아야지'라며 당연히 삶을 선택하고 있지만 선택한 삶의 모습이 나에게는 시체가 누워있는 것과 다르지 않게 느껴져서 절망적이었다. 김소영 작가의 책에서 삶을 선택한 사람은 무엇이라도 해야 하고 맞서야 한다는 글을 읽었을 때도 막막했다. 나는 아무것도 못 하고 있고 그 무엇과도 맞서지 않고 누워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니까. 그래도 책을 계속 읽어 나가다가 절망과 희망에 관한 부분을 읽고서는 무릎을 탁 쳤다.

 '희망을 가지면 해야 할 게 많으니까 내가 절망을 택했구나!'

  살아가기로 마음먹었으면 내가 기대하는 많은 모습들이 있는데 그 기대를 충족시키기에는 에너지가 너무 많이 들고 나는 지쳤으니 그냥 다 관두고 싶었던 거였다. 잘 되지 않는 것을 붙들고 씨름하고 실패하고 실망하고 다시 도전하는 것보다 그냥 포기하는 게 쉬우니까. 어렸을 때부터도 오래 고민해야 하는 문제가 나오면 어려워했었다. 고민하고 풀었다가 틀리는 것보다 답안지에서 정답과 해설을 보고 문제유형을 익히면서 공부했다. 그 방법이 효율성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풀어본 문제는 잘 맞혔지만 새로운 문제가 나오면 풀어볼 시도도 못해서 수능에서 고득점을 받지 못한 것 같다(!). 오래 숙고하고 나의 의견을 쓰는 과제가 가장 어려웠는데 우리나라 정규 교육과정에서 그런 과제는 비중이 아주 적었기 때문에 큰 어려움이 없이 졸업하고 사회인이 되었다.

  그런데 4년 전부터 시작된 양극성장애로 인해 삶에 큰 굴곡이 찾아왔고 해결되지 않는 고민이 이어졌다. 삶에 대한 애착이 컸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는데 우울증과 육아로 인한 체력적, 시간적 제약까지 생기니 끝없는 무기력에 빠져들었고 끝은 죽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다가 경조증의 시기가 오면 우울증의 시기를 보상이라도 하듯 잠도 안 자고 하고 싶은 것들을 했다. 높이 올라갔던 만큼 추락의 낙폭도 커져서 무기력도 점점 심해졌다. 상담을 전공하고 상담사로 일하고 있고 아프기 전에도 교육의 목적으로 개인상담을 받아왔었고 약물치료도 꾸준히 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모두 하고 있는데도 몇 년째 나아지지 않아서 좌절스러웠다.

  최근에서야 내가 경조증 상태에 중독되어 있어서 이게 반복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인정했다. 나의 어릴 적 소원은 잠 안 자고 공부하고 하고 싶은 일도 다 하는 거였다. 잠이 많은 아이였고 대인관계에서도 민감성이 높아 신경 쓸 일이 많아 늘 피곤했었다. 그런데 공부 욕심도 많고 예체능에도 소질이 있어서 시간만 허락되면 다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환상을 가졌었다. 엄마가 불 끄고 자라고 해도 꾸역꾸역 책을 펼쳐놓고 졸기 일쑤였다. 그러다 가끔 잠이 안 오는 날이 그때도 있었는데 그런 날이면 얼마나 신이 났는지 지금도 기억이 선명하다. 밀린 공부도 조금 하고 주로 공부하느라 못했던 취미생활을 했었다. 소설책을 보거나 친구에게 편지를 쓰거나 추억의 물건을 펼쳐보거나 책상서랍을 다 뒤집어 정리하거나..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놓고 하고 싶었던 것을 할 수 있는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나만의 새벽시간은 정말 달콤했다. 다음날 학교에서 조금 졸리긴 했지만 큰 문제는 아니었다. 잠을 줄여서 원하는 것을 다 하려던 노력은 30대 초반까지는 꽤 유용했다. 체력도 받쳐줬고 싱글이었으니 나만의 삶을 살 수 있었다.

  그렇게 가끔 있던 시간이 나의 바람과 맞물려서 이제는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질병이 되었다. 경조증의 시기에는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일을 많이 벌린다. 하지만 그것은 증상(환상) 일뿐 사실 잠을 잘 못 자기 때문에 하루만 지나도 몸이 안 좋아져서 최소한의 일상만 가능하고 병원에 가거나 누워있다. 그래도 기분은 좋고 의욕이 넘치기 때문에 몸이 바스러지더라도 결과는 생각하지 않고 일단 달리고 본다. 그렇게 에너지를 다 소모하면 당연히 무기력한 우울증이 찾아올 수밖에 없다. 그걸 알면서도 경조증의 시기에 에너지를 덜 쓰는 것이 힘들다(지금도 우울한 2주를 보내고 찾아온 경조증의 시기라 새벽 2시까지 이 글을 쓰고 있다). 수면제를 먹고 자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자고 싶지 않다. 건강에만 문제가 없다면 나는 경조증의 상태가 너무 좋다. 이게 나의 문제다. 정말 조금만 더 노력하면 이런 경조증의 상태로 건강을 해치지 않고 평생을 살 수 있을 것만 같다. 이렇게 말하니 상담선생님이 그게 중독이라고 하셨다. 이번 판은 정말 딸 수 있을 것 같다면서 계속 매달리는 중독자.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무모해 보이고 현실성이 없어 보이지만 중독자에게는 너무나 간절한 바람이고 조금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현실 같다. 그동안의 치료과정으로 내가 왜 양극성장애를 가지게 되었는가를 이해하게 된 점도 의미 있었지만 이것이 왜 계속 지속되는가를 알게 된 것이 최근의 가장 큰 성과이다.

  절망과 희망에 대한 이야기를 쓰려다가 글이 이렇게나 길어져버렸다.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은 희망을 가지면 해야 할 것도 많고 절망하게 될 일도 있겠지만 그래도 쉬운 절망보다 어려운 희망을 선택하겠다는 거였다. 서툴고 실패하고 한 번에 잘 해내지 못하더라도 희망의 편에 서야겠다. 세상에는 풀리지 않는 난제, 소외된 이웃과 차별도 많고 환경오염도 심각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절망하기보다는 희망하면서 아주 작은 것이라도 시도해 봐야겠다. 처음 걸음마를 배우는 아기들의 실패를 다정하게 바라보는 엄마의 시선으로 나의 실패를 봐줘야지.  희망은 어떤 일을 이루거나 하기를 바라는 것이니까, 꼭 이루지 못하더라도 바라는 것도 가능한 것이니까. 그리고 절망도 두 번째 의미로는 '실존 철학에서, 인간이 극한 상황에 직면하여 자기의 유한성과 허무성을 깨달았을 때의 정신 상태'라고 했으니 나의 지금 상황에 적절한 것 같다. 나의 유한성과 허무성을 깨닫는 것도 아주 의미 있는 일이니까. 나는 신체(한계)를 가진 인간이니까 어서 잠을 자러 가고 내일을 살아야겠다.


- 긴 글을 읽어주신 분이 계시다면 감사합니다. 평안하시길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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