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방지축 단편열차 (4)
5
영순은 화상을 당한 뒤 병원에서 나왔지만 갈 곳이 없었다. 고향인 오정동에 간다 해도 받아줄 사람 하나 없다. 부모님 집까지도 이미 오래전에 남에게 빼앗긴 처지였기 때문이다. 그때 마침 아는 사람이 자기 집 문간방에 와서 잠시 있으라 해서 그곳에서 부엌일 등을 도우며 지냈다. 그러다가 더 이상 그곳에서 신세 질 수 없어서 몇몇 사람에게 자신의 처지에 대해 이야기를 했는데, 그 근처에 사는 어떤 사람이 찾아와 자신이 김포의 한 기도원을 잘 안다며 소개해 주었다.
영순은 기도원에 들어갔으나 그곳에서도 가능한 한 사람들과는 접촉하지 않고 숨어 지내듯하며 허드렛일 맡아 해주면서 숙식을 해결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한 노인이 찾아왔다. 그 노인은 자신이 영순을 보호해 주겠다며 함께 나가자고 했다. 영순이 싫다고 하는데도 그 사람은 며칠 뒤에 또 오겠다고 하며 돌아갔다. 그리고 그 노인이 오겠다고 한 날 영순은 아무도 모르게 기도원에서 도망쳤다. 이것 때문에 사람들은 두 사람이 함께 만나서 나간 것으로 오해를 하게 된 것이다.
그날 밤 영순은 기도원에서 얻어들은 것이 있어서 강화도로 향했다. 그곳에는 여러 곳에서 준설작업 등의 공사를 하고 있어서 크고 작은 함바집이 많이 있었던 것이다. 영순은 그중 한 곳에 가서 사정 이야기를 하고 일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 날 어떻게 알았는지 기도원으로 찾아왔던 노인이 함바집으로 또다시 영순을 찾아왔다. 그리고는 영순은 얼굴의 화상 때문에 어느 누구한테도 시집갈 수 없으며 어디를 가나 놀림감만 될 것이라면서, 자신의 말만 잘 들으면 평생 보호해 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적당한 때에 성형수술도 시켜주겠다고 약속했다. 한 번에 안 되면 몇 번이라도 수술을 시켜줄 테니 자신의 말만 잘 들으라고 한 것이다. 그리고 나면 번듯하게 시집도 갈 수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돈도 없고 갈 곳도 없고 도움 받을 친척도 없고 미래도 희망도 없는 영순은 눈물을 삼키며 자포자기식으로 그날 밤 그 노인에게 첫 몸을 주고 말았다.
그러나 노인은 몇 번 영순에게 와서 누릴 것은 다 누린 뒤에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영순은 한밤중 남들 눈에 띄지 않게 그 노인에게 찾아갔으나 오히려 핀잔만 듣고 돌아와야 했다. 노인은 자신에게 다시 찾아오면 영순이 강화도 함바집들을 돌며 화냥 짓을 하고 다닌다고 소문을 내겠다고 위협했다. 그리고 몇 푼 안 되는 돈을 땅바닥에 던져주었다. 당장 한 푼이 아쉬운 영순은 그 돈을 주워서 다시 강화도로 돌아갔다. 그 뒤부터 영순은 망가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서 1년이 반이 지난 뒤 어떤 건달의 손에 이끌려 영순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다. 이것은 영철이 강화도 그 식당으로 찾아가기 1년 전의 일이었다. 그러나 영순이 어디로 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단지 그 건달의 고향이 포항이라는 것만 알 뿐이라고 말했다.
온몸이 욱신거리는 영철은 힘겹게 몸을 일으켜 식당을 나섰다. 그러면서 자신은 곧 원양어선을 타고 나가야 하니, 혹 누이의 소식을 알게 되면 김포의 한식집으로 알려달라고 했다.
“제가 곧 부산에 내려가서 원양어선을 타야 합니다. 최소한 3년 안에는 돌아오기 힘들기 때문에, 혹 제 누이 소식을 알게 되면 이곳에다 알려주십시오. 제가 다시 귀국하게 되면……,”
이렇게 말하면서 영철은 공항동의 한식집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어서 식당 주인에게 주었다.
“꼭 부탁합니다.”
갑자기 눈물이 났다. 웬만해선 눈물을 흘리지 않는 영철은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하고는 얼른 돌아서서 절룩거리며 걸어갔다.
영철이 힘겹게 몇 걸음 옮기는데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잠깐만요.”
식당 아주머니가 지저분한 통바지에 손을 문지르며 눈을 껌벅거린다.
“저 혹시……, 그 사람 말이우……, 영순이한테 찾아오곤 했던 노인네 말유……. 그 사람도 식당을 한다는 말을 들은 것 같았는데……. 아니, 내가 직접 들은 건 아니고, 저 건너에 통일식당이 있는데 거기 여편네가 그 두 사람이 다투다가 한 말을 지나가다가 얼핏 들었던 것 같다고 한 게 생각나서…….”
영철은 순간 머릿속이 멍해졌다. 그러면서 혹시나 하고 물었다.
“저……, 혹시 그 노인 다리를 절었습니까?”
“아니, 우리는 잘 몰라요. 그 사람들 여기에는 잘 오지 않았으니까. 영순이만 두어 번 봤을 뿐이우. 그런데 그 노인네……, 다리를……, 왼쪽인가 오른쪽이라나……, 에구 생각이 잘 안 나네. 벌써 오래된 일이라……. 그런데 다리를 절긴 절었던 모양이우. 표는 잘 안 나도 좀 절었다는 것 같애…….”
영철은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얼굴에서는 핏기가 싹 가셨다. 반면에 눈에는 핏발이 돋았다.
이 새끼…….
영철은 몸을 돌이켰다. 그리고는 있는 힘을 다해 시외버스 정류장으로 달려갔다.
영철은 처음에는 사형을 선고받았다가 모범수로 지낸 덕에 나중에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 영철은 한식집 노인의 가슴을 정통으로 찔러서 죽게 한 뒤, 택시를 타고 오정동 정가네 집으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대문을 박차고 들어가서 마침 마당에 나와 한가하게 화초를 가꾸던 정필두의 배를 닥치는 대로 찔렀던 것이다.
그런 뒤 영철은 경찰이 올 때까지 그 자리에 서서 하늘만 쳐다보고 울부짖었다.
정필두는 병원에 가서 여러 번 수술을 받았지만 끝내 죽고 말았다.
6
그 뒤 45년 만에 영철은 누이의 부고를 받았다. 그리고 오늘 부모님과 누이가 묻힌 무덤에 와서 저 멀리에서 마른번개가 치는 먹구름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것이다.
누이가 남긴 노트에는 누이의 삶이 무질서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그 노트에는 날짜는 없이 대부분 자신의 심경에 대한 글만 남겨놓았기 때문에 어디에 가서 누구를 만났는지, 무슨 일을 했는지 등은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물론 그러한 글들 가운데 영철로서는 알 수 없는 이름이나 장소가 가끔 등장하지만 그러한 것들이 무슨 의미인지도 확실치 않았다. 그리고 그 글들 대부분은 자기 자신에 대한 원망과 학대였으며 독백이었다. 문맥도 잘 이어지지 않았고, 무슨 글자인지 알아볼 수도 없게 써놓은 곳도 수두룩했다. 결혼은 했는지, 자식은 있는지, 어디에서 살았는지, 집은 있고 돈은 있었는지, 심지어 건강은 어땠는지 등등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었다. 어렸을 때는 그렇게 총기 넘치고 눈이 초롱초롱했던 누이. 50년 전 공항 근처 식당에서 만났을 때만도 누이의 눈은 맑고 생기가 있었다. 그 뒤 몇십 년 동안 누이는 어떻게 살아간 것일까? 더군다나 얼굴 왼쪽 반쪽이 끔찍한 화상으로 뒤덮여 있었을 텐데 그것을 어떻게 견디고 살았을까? 그 착하디착한 누이가.
너무도 고왔던 내 누이……. [끝]
내 누이 쉼터
-- [고운 내 누이]를 마치면서
그곳은 곱디고운 내누이 집토여라
잔미소 무덤우에 가만히 걸리우고
바람이 왔다가그만 머뭇하고 앉는곳
봄꽃들 깨어나면 잔미소 아름짓고
옛소식 정다우어 가만히 귀기울여
먼먼날 그때까지도 잊혀지지 않을제
문득이 생각나서 가슴이 메어지는
내동생 타향살이 어히이 견디려나
아득타 저어린시절 총명하던 그아이
버나비 물러가오 바람도 흩어지오
나쉬는 이꽃동네 호사치 편치않아
불쌍한 내동생소식 어디가서 찾으오
내곁에 데려오오 따스한 편한쉼터
동생에 내어주고 그위에 떠돌여도
우리둘 천간지간에 떨어지지 않으리
[다음 화 '너무 늦은 편지'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