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udolf Apr 20. 2021

아주 슬픈 (10&11/20)

10     


송연은 두서없이 나온 할머니의 말을 정리해서 마음에 묻어두었다. 그 이야기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키 작은 할머니의 이모, 그분은 45년 전에는 60대 중반이었다. 그 이모할머니는 자신의 40대 조카가 젊어서 소박맞은 뒤 자식도 없이 혼자 살아가는데 그 꼴이 말이 아니어서 항상 마음에 남아 있었다. 게다가 어려서 다리를 조금 다쳐 걸음걸이 때 살짝 절룩거리는데 언뜻 보면 알아차리기 힘들긴 하지만, 그래도 그것이 늘 안쓰러웠다. 그런데 마침 그 당시 장애인들에게 정부에서 일시적으로 후원해 주는 정책을 편 적이 있었다. 동사무소에 가서 장애인 확인을 받으면 얼마 안 되는 양이지만 생필품을 받을 수 있게 해준 것이다. 조카의 처지를 늘 딱하게 생각하던 이모할머니가 동사무소 직원에게 가서 장애인에 등록해 달라고 부탁했으나 거절당했다. 그래서 집에 돌아와 주변 사람들에게 하소연을 했더니 어떤 심술 많은 할머니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에구, 요령도 없으셔. 내 아는 사람도 그 비슷한 것으로 동회 여러 번 찾아갔더니, 처음에는 안 된다고 하더니만 오히려 동회 사람이 나서서 먼저 방법을 가르쳐 주더래. 방위병한테 가보라고. 그렇게 해서 정부에서 주는 거 다 받아먹었대요. 그렇게들 많이 한대. 그리고 그놈들도 그렇지, 늙은이가 찾아가서 부탁하는데, 자기들 것도 아니면서 왜 그렇게 인정머리 없게들 굴어. 금덩이를 주는 것도 아니면서. 뭐 개미 눈물처럼 쬐끔 주는 것 가지고 그렇게들 위세를 부리는 게야. 에구 참…….”

    그 말을 듣고 이모할머니는 정말로 담배 한 상자를 사서 들고 방위병에게 갔다. 그렇게 해서 그 조카가 정말로 얼마 안 되는 물품을 받긴 받았는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심술할멈이 키 작은 조카에게 찾아가서 정부 지원물품이 뭐냐고, 구경 좀 하자며 말을 건넸다.

    “에고, 뭐 별것도 아닌 걸 가지고 그렇게 호들갑 떨어. 나 같으면 이런 것 안 받겠다. 임자도 이런 거 받아서 도움이 되겠어? 차라리 일을 하나라도 더 해. 일을 해야 살지. 맨날 방 안에만 처박혀서 세상 등지고 있으면 쌀이 나와 돈이 나와…….”

    심술할멈이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를 한없이 늘어놓고 간 뒤에 키 작은 조카가 무심코 동사무소 물품을 살펴보니 한 가지가 없어졌다. 

    “요 할멈이……!”

    조카가 열불이 나서 심술할멈 집으로 찾아갔다.

    “어서 내놔요! 내 거 훔쳐간 거!”

    “훔쳐가긴 내가 뭘 훔쳐가? 나를 도둑년으로 아는 거야? 나이도 어린 게…….”

    이렇게 해서 둘이 한바탕 싸운 뒤, 조카는 기어이 방구석까지 다 뒤진 끝에 없어진 물품을 찾아내어 소리를 빽 지르고 나서 가지고 가버렸다. 

    그러자 이번에는 심술할멈이 동사무소에 가서 소리소리 지르며 고자질을 하고 말았다. 

    “군대도 못 가고 동회에나 나와서 기껏 나라 일 한다는 방위병 새끼가 뒷구녁으로 돈 받아 처먹고…… 어쩌고저쩌고…….” 

    이렇게 해서 결국 사달이 나고 만 것이다. 담배 한 상자 받고서 다리 약간 저는 아주머니를 장애인으로 올려준 방위병과 그 옆 친구, 즉 송정섭 둘이 함께 뇌물죄로 걸려들고 말았다. 다리 저는 아주머니가 받아간 물품도 물론 회수되었고. 반 이상은 벌써 다른 데다 빼돌려놨지만. 그래 봤자 얼마 되지도 않는 것들을.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방위병 두 사람이 헌병대에 가서 조사받고 나왔는데, 그 뒤에 한 사람은 국방부에 간다고 나갔다가 보안사로 끌려가고, 또 한 사람은 실종, 즉 탈영했다가 무의도 남쪽 해안가에서 칼에 찔린 시체로 발견된 것이다. 

    이로 인해 무의도가 발칵 뒤집히고 말았다. 헌병과 경찰이 송정섭의 집에 들이닥쳐 놈팡이 짓만 하고 다니던 형을 끌고 갔다. 그 뒤 이 사건은 점점 더 커져, 그 형은 취조 받다가 자살했다고 하고, 송정섭은 간첩과 내통한 죄에다가 동사무소 옆 동료 방위병까지 살해한 죄까지 겹쳐져 재판받게 되기에 이른 것이다. 일이 이렇게 되자 동네 사람들은 송정섭네와는 발을 끊고 내왕을 하지 않았다. 그렇잖아도 그 집 아버지가 3년 전 바다에서 실종되고 나서 생사를 모르는데다가 그 2년 전 북한 경비정에게 끌려갔다가 한 달 만에 돌아온 전적도 있고 해서 그 집안은 완전히 빨갱이 집이 되고 말았다. 그러니 어느 누가 그 집에 드나들겠는가. 

    그 몇 년 전에 그 집의 송정섭 손윗누이 둘이 돈 번다고 서울로 나갔는데, 그 둘도 몇 년 뒤에 이러저러하게 모두 죽고 말았다. 하나는 동대문 평화시장에서 일을 했었다고 하고, 또 하나는 동두천에서 갈보 짓을 했었다나 그러고. 

    그런데 여기에서 더욱 얄궂은 일은 어느 날 혼자 남은 송정섭 어머니가 서울 어딘가에 가서 핏덩이 같은 갓난아기를 데리고 왔다는 것이다. 이름은 선희라고 했는데, 그 애가 누구 씨인지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혼자서 키우다가 어느 날 또 아기를 데리고 서울로 올라갔다. 그런 뒤 어머니만 내려와서 한동안 아무하고도 왕래하지 않다가 목매 자살하고 말았다.

    다리 살짝 저는 할머니는 여기까지 말하고 나서 고개를 푹 숙였다. 근처 나무숲에 들어가 조그만 공터의 나무벤치에 앉아서 이 이야기를 다 해주었다. 8월말이지만 숲 바람이 좋아서 그런지 덥지는 않았다. 그러나 할머니는 땀을 많이 흘리고 있었다.

    죄책감 때문일까? 자신을 도와주기 위해 이모님이 나섰다가 결국 남의 집안을 결딴낸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 

    그러나 송연은 마음속에서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 것과는 다르다고 송연은 느꼈다. 할머니가 고개를 다시 들고 송연을 바라보는 그 눈에서 어떤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는 없었다. 찰나처럼 스쳐가는 그 눈빛 속의 어떤 것.

    무엇일까……? 

    송연은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어떤 한기가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8월 한여름 뜨거운 태양 아래의 대낮에.      



11     


송정섭은 광화문과 세종로 사거리 일대에 여러 번 나가보았다. 그러나 그곳은 늘 시위로 어지러웠다. 메가폰에서 흘러나오는 각종 구호와 노래, 전단지를 나눠주는 사람, 피켓을 들고 몰려다니는 사람, 텐트를 치고 서명받기 위해 지나가는 사람들 붙잡고 승강이하는 사람, 몸 앞뒤에 구호 판을 걸고 다니는 사람 등등.

    주말에는 그것이 더 심했다. 수백에서 수천, 어떤 경우는 수만 명이 모여들어 외치고 항의하고 저주하고 노래를 부른다. 경찰, 전투경찰, 경찰버스, 기자들, 외국 기자들, 방송국 차, TV 카메라……. 


[다음 화로 계속]




이전 09화 아주 슬픈 (8&9/2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