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와 꽃샘바람을 기다리며
봄비는 처녀, 꽃샘바람은 총각일까? 목마른 대지 위로 촉촉이 내리는 봄비. 그러다가 갑자기 무엇이 못마땅한지 따스한 봄날 심술부리듯 쌩하며 부는 꽃샘바람.
그렇다면 거꾸로 봄비를 총각, 꽃샘바람을 처녀라고 한다면 어떨까? 겨우내 얼어붙었던 땅을 일구기 위해 쟁기를 짊어지고 가는 농군이 기다리는 봄비. 그리고 무심한 남정네 마음이 심술나서 ‘날 좀 봐요’ 하듯이 헛헛한 가슴으로 파고드는 봄바람.
따스한 봄비사이 앙칼진 꽃샘바람
봄처녀 치맛자락 사르르 나부낄제
봄총각 마음설레어 눈길자꾸 가더라
진달래 꽃잎물고 봄바람 맞이할제
앞산에 아지랑이 포르르 피어올라
쟁기든 남정네마음 한숨처럼 퍼지니
꽃바람 연정삼아 휘파람 불고지고
개나리 꽃잎따서 호불어 날려볼제
바알간 봄처녀가슴 콩닥콩닥 뛰누나
봄은 그러니까 서로 어긋나고 마는 계절이라는 것일까? 그렇다면 이 시는 어떠한가?
I Wandered Lonely as a Cloud
- William Wordsworth
I wandered lonely as a cloud
That floats on high o’er vales and hills,
When all at once I saw a crowd,
A host, of golden daffodils;
Beside the lake, beneath the trees,
Fluttering and dancing in the breeze.
구름처럼 외로이 거닐었지요
- 윌리엄 워즈워스
구름처럼 외로이 거닐다가
언덕과 계곡 위로 떠다닐제
갑자기 한무더기 눈에 띄었지요
황금색 국화 꽃밭
바로 호수 옆, 나무그늘 아래에서
바람에 흔들리며 춤을 추고 있는 꽃들
(아차, 이것은 가을꽃 노래……. 죄송합니다. 꾸벅. 에잇, 잘 알지도 못하는 영시는 통과.)
早春寄王漢陽 | 조춘기왕한양
이른 봄에 한양 친구에게 부치다
- 李白(이백)
聞道春還未相識 | 문도춘환미상식
走傍寒梅訪消息 | 주방한매방소식
昨夜東風入武陽 | 작야동풍입무양
陌頭楊柳黃金色 | 맥두양류황금색
碧水浩浩雲茫茫 | 벽수호호운망망
美人不來空斷腸 | 미인불래공단장
預拂青山一片石 | 예불청산일편석
與君連日醉壺觴 | 여군연일취호상
봄이 왔다는 말 들었으나 아직 알지 못하여
차가운 매화에게 달려가 봄소식 물어보누나
어젯밤 동풍에 실려실려 봄바람 불어들어와
길가의 버드나무 황금빛 물결로 출렁이도다
푸른 물결 호탕하고 망망 구름 둥실 떠돌되
귀인은 오지않고 공연히 애간장만 태우지만
일찌감치 청산에 바위 한조각 쓸어놓았으니
그대와 밤새우며 마시고 마시어 취해보리라
(하, 술 한 모금 마시지 못하는 이 내 몸, 어쩌자고 술태백 이백의 시에 취했는고. 상큼한 봄바람에 정신은 혼몽하여 봄꽃 가을꽃 구분 못 하니 봄비에 홀딱 젖은 처량한 모양새로다.)
봄비가 내리면 하늘은 흐드러지게 봄으로 물든다. 숨 쉴 수 없이 흐트러지는 하늘. 엷은 구름들이 하늘을 가리고 가는 물줄기 흩뿌리는 날, 우리는 콧노래 흥얼거리며 봄비를 맞아야 한다. 감기 잘 걸리는 분들은 빠지시고.
봄 하늘이 맑은 날에는 구름들이 끊임없이 모양을 바꾸며 흐른다. 그러면 우리는 얼른 하늘에 올라 구름 따라 떠돌아야 한다. 나무들과 꽃들과 새들과 버나비들이 어우러지는 산하를 내려다보며 가끔은 우리네 옛 산천을 떠올려도 좋다. 개울물 졸졸 흐르고 그 옆으로 연한 풀들이 새곰새곰 자라는 동화 속의 어린 시절들.
그러다가 봄바람 불면 그 속에서 봄내음이라도 흠뻑 맡는 거지. 두 구멍 벌렁 코를 하늘에다 내밀고 흠흠흠흠 바람을 훔치는 거다. 봄바람을. 봄향기를. 그러다가 시들해지면 봄바람에 우리네 소식들을 먼먼 나라로 날려보내면 되고. 그런 뒤에 봄밤이 또다시 내리면 먼먼 옛적 별이 되신 우리 엄니에게, 그리고 은하수 따라 주욱 내달리는 그리운 얼굴들에게 마음엽서 한 장씩 띄우는 거지 뭐.
잘 있었니? 나도 잘 있어.
우리 모두 잘 지내자.
언젠가 다시다시 만날 때까지.
그때까지 살아 있다면…….
아하, 이때 갑자기 꽃샘바람 불어오면 어쩌지? 한낮도 아니고 한밤중에.
바람아, 기왕에 불어올 거면 저 재 너머 샘물 가 그 동네 처녀총각들 소문이라도 한 아름 가져다 다오. 돌쇠랑 언년이가 물레방앗간에서 어쩌고저쩌고도 아이고 재미있겠고, 순이랑 영이랑 오지게 싸운 이유도 조곤조곤 알려다오. 그래, 왜 그랬대? 그 애 맹돌이 땜에 그런 거지? 내 말 맞지? 자세히 얘기해 봐. 애태우지 말고. 궁금해 죽겠어…….
봄은, 봄밤은 그렇게 깊어만 가는데 은하수는 낮잠을 못 자서 그런지 한밤중이 지나도록 까막까막 졸다가 어느새 후다닥 몰아닥친 새벽에 혼꾸녕이 나서 저만치 도망쳐 버리고, 드디어 우람한 장닭의 꼬끼오 소리에 온 세상은 화들짝 잠에서 깨어난다. 이렇게 해서 봄, 봄, 봄, 파릇파릇한 봄의 하루가 또다시 시작되는 것이다.
봄하늘 구름따라 희디흰 소원빌제
산새들 땅지렁이 그사연 궁금하여
오종종 모여모여서 귀기울여 들으니
여보셔 여보시오 내사연 들어보소
지난달 아니글쎄 새끼손 걸고걸어
순이랑 땡칠오라비 철석같던 그약속
봄바람 불어오니 마음이 싱숭생숭
순이년 봇짐싸서 건넌말 사기쟁이
허리춤 꼭꼭붙들고 한밤중에 줄행랑
아이고 이럴수가 저이고 저럴수가
삼년간 모아놓은 알토란 혼수자금
고년이 꾀는바람에 모두모두 주었지
내팔자 상팔자라 여기고 살았건만
한숨에 날려버린 내청춘 내사랑아
그돈은 없애버려도 하루빨리 돌온나
내눈물 내한숨이 네년놈 뒤따라가
두꼭지 한꺼번에 휘감고 메치기전
내사랑 돌리돌리도 사정하며 비노니
오늘밤 새기전에 은하수 지기전에
그깟돈 버려치고 네한몸 성히성히
돌아와 달려돌아와 안겨다오 내품에
눈물로 비니비니 제제발 비니비니
내사랑 돌려다오 돌리도 내사랑을
산새들 잠도못자고 눈물함께 흘리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