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을 떠난 지가 어느새 삼십 년이 넘어간다. 내 고향은 덕유산과 기백산, 금원산, 삼봉산, 수도산, 월봉산 등 그 이름도 다 기억하지 못하는 많은 산들로 첩첩이 둘러싸인 곳이다. 산이 많아 구름도 어느 산봉우리 하나 걸리지 않고는 지나가지 못할 듯한 곳이니 먼 옛날에는 유배지로 손꼽히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그렇게 작은 산골마을에 살 때는 하루라도 빨리 고향을 떠나 넓은 도시로 가고 싶어 했다. 그곳은 극장도 없고 시내버스도 없고 햄버거 가게도 없고 바깥소식조차 없는 동네, 없는 것이 너무 많았던 곳이었다. 최신 유행이 무엇인지 상관없는 시장 옷가게의 옷처럼 거기에선 어떻게 해도 뒤쳐진 시간을 쫓아갈 수 없을 듯했다. 또 대문을 열고 나서면 서너 명쯤 인사를 해야 골목길을 벗어날 수 있고, 앞집 할머니의 심부름도 내가 해드려야 할 만큼 사람 사이의 거리감도 없어서 혼자 있고 싶은 날도 참 많았다. 내가 누군지 모르는 큰 도시에서 나 아닌 것처럼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사춘기를 좀 어둡게 만들기도 했다.
그런 날 그런 곳에서, 세계 명작 소설 속에서 우연히 본 ‘크루아상’이라는 빵 이름에 온 영혼을 빼앗기고 빠져버렸다. 책 제목도 주인공 이름도 이젠 기억나지 않는 문고판 소설에는 크루아상을 부드럽게 찢어서 먹는 장면이 있었는데, 어린 내 경험으로는 상상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부드럽게 찢어지는 빵과 악몽도 잊게 해주는 향기라니. 얼마나 향기롭고 얼마나 맛있는 빵일지 수없이 상상했다. 그 시절 내가 먹어 본 빵이라고는 구멍가게에서 파는 보름달같이 동그란 빵이 전부였다. 딱히 예쁘다고 할 모양도 아니었고 질감은 거칠고 텁텁한 단맛이 나는 빵이었다. 그런 빵을 먹는 일도 흔한 일이 아니어서 어쩌다 손에 잡히면 아껴서 조금씩 뜯어 먹곤 했었다. 그런데 먼 나라 어느 곳에서는 꿈꿔보지 못한 빵과 향기가 있다는 것이었다. 소설 속의 그 장면은 사춘기 소녀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고 동경을 부추겼다. 허공의 연기나 물 속 거품처럼 잡히지 않아서 더 애를 태우게 만드는 말이었지만, 그 이쁜 어감을 정말 아끼고 좋아해서 새 볼펜을 사면 제일 먼저 크루아상이라고 적곤 했었다. 만약 지금처럼 인터넷이 있었다면 내 호기심은 좀 더 일찍 해결되었겠지만, 그땐 어느 것 하나 쉽게 찾을 수가 없었으므로 프랑스말로 초승달이라는 뜻과 빵 모양을 알기까지 수년이 걸렸다. 어쩌면 내가 도시를 꿈꾸던 이유들 중에는 크루아상도 제법 큰 자리를 차지했을 거라고 믿는다.
크루아상이 마음속에서 굳어갈 즈음, 마침내 나는 고향을 떠났고 시내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며 대학교를 다녔고 시내 빵집에서 처음 크루아상을 먹었다. 악몽까지는 몰라도 어렴풋한 우울 정도는 가볍게 날려줄 만한 빵이었다. 얼마 안 되는 용돈으로 크루아상을 사 먹기 위해 어느 날은 점심값을 아끼기도 했다. 그때 커피 맛도 배웠다. 할아버지가 드시던 다방커피가 아니라 커다란 머그컵의 아메리카노는 나를 한 순간에 세련되게 만들어 주는 듯했다. 시골처녀에서 파리지엔이 된 것 같은 착각을 즐겼다. 하지만 도시는 또 다른 어둠의 방을 마음에 만들어주었고 외로움이라는 말을 설명 없이 알게 해 주었다. 의지였든 우연이었든 피어서는 안 될 곳에 핀 꽃처럼 젊음이 불편했다. 시간의 사각지대 혹은 세상의 모퉁이에서 내 것이라고는 내 얼굴 밖에 없다는 사실이 나를 초라하고 보잘 것 없게 만들기도 했다. 그렇게 여러 해 동안 떠나온 곳은 그립지 않고 있는 곳은 정들지 않을 때에도 크루아상 한 조각의 위안은 제법 따뜻했다고 기억한다.
더 뒷날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프루스트도 아침으로 항상 크루아상 하나를 먹었다는 데에 어처구니없는 동질감을 느끼기도 했었다. 자기 이니셜이 새겨진 은잔에 우유를 섞은 진한 커피와 크루아상을 먹는 소설가는 어딘지 더 문학적이게 보였다. 그래서 그의 소설을 읽기로 결심했노라면 너무 부끄러운 고백인지도 모르겠지만, 마르셀의 마들렌이 내겐 크루아상이었던 것이다. 지금도 크루아상을 보면 손이 먼저 다가간다. 이제는 크루아상의 달고 부드럽고 향긋한 맛에 조금 싫증이 나는데도 젊음의 한 때를 떠올리게 해주는 힘이 여전히 나를 이끈다. 그리고 마침내는 고향에 대한 기억까지 되돌려 놓는다.
세월이 지나면 그토록 저항했던 고향에 대한 마음이 고마움으로 바뀌기도 하나보다. 마치 나무에서 수확한 과일이 식탁위에서 나머지 단맛이 들듯이 그렇게 기억과 마음도 단내를 만들어낸다. 고향이라는 말이 내가 생각하는 방식으로 충분히 깊게 가라앉았기 때문일까. 나를 키운 것이 그 자그마한 물고기들이 사는 강물이고 첩첩의 산이고 그 위에 항상 떠 있던 구름들이라는 게 이렇게 정다울 수가 없다. 늙은 잿빛 버드나무 그늘과 옆집 담을 넘어 입이 벌어진 석류, 엿장수 아저씨의 가위질 소리, 늘 활짝 열려있던 대문들과 어느 집에선가 풍기는 빨래 삶는 냄새. 지금은 여기, 이 커다란 도시에 없는 것이 그곳에 너무 많았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지금 내 고향은 내가 그토록 궁금해 했던 크루아상이 가득한 빵집도 많아졌고 최신식 영화관도 생겼지만, 변화의 속도가 도시처럼 빠르지 않으므로 다행히 마음 속 고향에서 그리 멀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지치고 외롭던 어느 하루, 무작정 차를 달려 가 고향의 강물 옆에서 저녁이 오는 것을 볼 때의 깊은 위로는 잊히지 않는다. 너무 많아서 분류가 불가능한 삶의 아픔들을 강물 속에 던져 넣으며 나는 울지 않고도 실컷 눈물을 흘렸다. 방랑의 욕망과 회귀의 본능이 어우러져 있는 크루아상을 고향 빵집에서 먹으며 그토록 달아나고 싶어 했던 마음을 다독이는 일은 나를 조금 철들게 했다. 이제는 종이 봉지 가득 세련되지 않은 고향의 빵을 사와서 식탁 위 빵 광주리에 담아 놓고 고향을 생각한다. 가슴의 거친 모서리를 긁어내면 가장 사소한 감정까지도 고향의 하늘에서 배우고 들판의 바람으로부터 들었던 것임을 빵 냄새를 맡으며 되새겨본다. 무엇이든 참으로 성실하게 아프고 그리워하면 그 자체가 치유제가 되는가 보다.
(이운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