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한 거리, 적당한 온도

타인과 어느 정도의 거리를 유지해야 우리는 행복한 것일까.

by 이우

우리는 타인과 얼마만큼의 거리를 두고 살아가는 것일까. 만원 버스와 지하철, 혹은 클럽이나 공연장이 아니라면 타인들과 그다지 살을 부대낄 일이 별로 없다. 인파로 붐비는 축제 현장이나 번화가에서도 어깨 한 번 부딪치지 않고 잘 걸어 다닌다. 함께 사는 가족과도 살을 맞대는 것은 드문 일이다. 그들과 나누는 포옹도 특별한 날의 이야기이고, 그들에게 안겨 있던 날도 어린 시절의 이야기이니 말이다. 우리는 언제나 그저 서로 간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산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 이것은 인간 사회의 불문율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살을 부대낀다는 것은 생각보다 무의식적인 행동의 심리학이 개재하고 있다. 흔히 우리는 만남을 처음 가질 때 통성명과 함께 가벼운 악수를 나누곤 한다. 악수는 관계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다. 또한 연인 사이에서도 정서적인 유대 관계 못지않게 관계를 진척시키는 것은 서로의 온기이다. 때문일까, 우리는 어쩌다 살결을 스치기라도 하면 서로 놀라 사과를 한다. 이렇게 우리는 온도로 서로를 기억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버지의 온도, 어머니의 온도, 소중한 친구의 온도, 떠나간 연인의 온도. 이러한 것들을 세상에 단 하나 밖에 없는 온도이다.

모로코에 살고 있는 나는, 가끔씩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가 너무나 가까워서 놀라곤 한다. 이곳에는 그랑 택시(grand taxi : 프랑스어로 큰 택시라는 뜻)라고, 조금은 특별한 택시가 있다. 이것은 운전사를 포함해 다섯 명이 탈 수 있는 차량이지만, 정원을 초과한 일곱 명이 타야 출발한다. 이름처럼 그리 크지도 않은 택시이건만 조수석에 두 명, 뒷좌석에 네 명이 탄다. 옴짝달싹 할 수 없을 정도로 다른 승객들과 살을 부대껴야 한다. 주머니에서 동전 하나 꺼낼라 쳐도 온몸을 비틀어야 하고, 옆 승객들도 덩달아 움직여줘야 한다. 더욱이 에어컨도 안돼서 뜨거운 여름날에는 정말이지 그동안 알지 못했던 불쾌감이 치솟는다. 익숙해지기는커녕 날이 갈수록 거부감만 생긴다. 그럼에도 이곳의 교통수단이기에 탈 수밖에 없다.

한 번은 모로코에서 처음으로 사귄 친구로부터 초대를 받았다. 버스로 일곱 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은 에리쉬라는 아틀라스산맥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었다. 그의 집에 도착한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채 스무 평도 안 될 법한 정말 작은 공간에서 열한 명의 가족이 살고 있었다. 화장실 겸 샤워실은 문도 달려있지 않았다. 그저 공간을 임시로 분리해주는 발이 전부였다. 그곳에는 개인적인 프라이버시라곤 전혀 없었다. 무려 네 명의 숙녀도 함께 살고 있는데 말이다. 그래도 인간은 적응하는 동물인지라, 나는 그들과 부대끼며 일주일을 살았다. 그들은 나를 가족으로 받아들였고, 우리는 가족사진도 찍었다. 헤어질 땐 모두 눈물 흘릴 정도로 정이 들어 있었다.



아틀라스산맥을 뒤로 한 에리쉬의 전경. ©leewoo, 2017


친구에서 형제가 된 이 친구는 이방인인 내게 각별한 애정을 선사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은 뭐 하냐고, 어떻게 지내냐고, 특별한 일은 없었냐고 매일같이 물었다. 친구들에게도 답장을 늦게 보낸다고 싫은 소리를 자주 듣는 나였다. 너무 많은 메시지에 지쳐 한동안 답장을 하지 않았다. 친구는 메시지를 무시했다며 서운하다고 직접적으로 말했다. 나는 한국의 정서는 가끔씩 연락하는 것이 미덕이라고 그럴싸하게 둘러댔다. 그러자 그가 물었다. “너는 가족에게 얼마나 자주 연락해?” “이 주에 한 번 정도?” 내가 답하자 그가 말했다. “우리는 형제야. 그러면 내게도 그 정도는 연락해줬으면 좋겠어.” 나는 부담감에 그를 점점 피하기 시작했다.


모로코에서 느낀 타인과의 거리감은 내가 살아온 세계와는 확연히 다르다는 것이다. 너무 가깝다. 게다가 이 정겨운 사람들은 더 나아가 너무 깊숙이 다가오려고 한다. 그들이 너무나 살갑고, 친절하고, 순수한 까닭에 나는 무방비 상태가 되고 만다. 철저히 지켜왔던, 지켜야만 하는 개인적인 공간은 무차별적으로 침범 당하고 만다. 그들이 선사하는 너무 따뜻한 온기에 화들짝 놀라고 만다. 그렇다고 추운 건 싫지만, 어느 정도는 반드시 서늘해야 한다. 항상 따뜻한 건, 내게 익숙한 온도가 아니다. 새삼스레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재고해보는 바이다. 어느 정도의 거리가 적당한 것일까, 어느 정도의 온기가 적당한 것일까.

허나 이것은 수치로 따져볼 수가 없는 것이다. 장 그르니에는 말했다.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고독이 아니라 비밀이라고. 데카르트는 이러한 ‘행복한’ 삶을 영위했다고 한다. 당시 세계적인 대도시 중 하나였던 암스테르담에 살았던 그는 도시의 시끌벅적한 삶을 살면서도, 자신의 비밀스런 세계에서 철학사에 길이 남을 사상적 세계를 구축했다. 데카르트의 철학은 사람들의 온기 속에서 지킨 하나의 은밀한 삶에서 태어난 것이다. 현대인의, 도시의 삶에서의 행복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온기에 둘러싸인 비밀스러운 삶 말이다. 이처럼 우리는, 아니 적어도 나는 행복을 위해서는 반드시 자기만의 절대 공간이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나의 형제이자 친구는 종잡을 수 없었을 것이다. 고독은 싫어하지만, 또 너무 다가오는 것은 거북스러워 했던 나를 말이다. 여전히 나는 우리 사이에 필요한 적당한 거리를 도대체가 설명할 수가 없다. 아무래도 조율해야 할 것 같다. 친구와도 세상과도 말이다. 좋은 음악을 연주하기 위해서 악기는 반드시 조율이 필요한 법이다. 협연하는 다른 악기와도 화음을 조율해야 한다. 행복한 삶, 더 나은 삶을 위해 타인과의 거리를 조율해보려 한다. 팽팽한 것은 조금 느슨하게, 느슨한 것은 조금 팽팽하게, 그리고 새로운 줄도 연결해가며. 그런데 늘 그렇듯 그 적당히가 어려운 법이다. 사람들의 온기 속에서 온기가 그립다. 그리고 행복이 고프다.


모로코에서, 세계와 나의 거리를 고찰해보며.


우리는 타인과 얼마만큼의 거리를 두고 살아가는 것일까. ©leewoo,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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