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 기록 #20
북대서양을 마주한 모로코의 작은 해안 아가디르. 홀로 버스에 몸을 실으며 기대해던 건 지친 몸과 마음을 치유해 줄 푸르른 바다와 따스한 햇살이었다. 하지만 마주한 아가디르는 기대와는 달랐다. 대기에는 갈색의 입자들이 부유했다. 사람들은 사하라 사막으로부터 불어온 모래라고 했다. 그 사이로 비춰오는 햇살은 이상하게도 온 세상을 은빛으로 물들였다. 파도도 은빛으로 넘실거렸고, 윤슬도 은빛으로 반짝였다. 지난날 사하라를 횡단하던 대상들의 은빛 환영도 일렁거렸다. 온통 찬란한 은빛의 세계였다.
은의 시대. 나는 이곳에 꿈을 두고 가기로 결심했다. 아직 마주한 적 없는 지난날의 찬란한 꿈, 황금빛과는 어울리지 않는 소소하고 아기자기한 꿈. 메말라가는 나의 마음보다는 이 아가디르의 은빛 세상에 더 어울릴 법한 꿈. 더 이상 간직하다간 꿈은 머지않아 빛을 잃어버릴 거란 걸 알고 있었다. 놓아주어야만 했다. 꿈을 위해.
나는 아직도 홀로 있던 아가디르의 해변을 꿈꾸곤 한다. 찰랑이는 은빛 파도로 반짝이던 은의 세상. 상처를 모르는 아이는 반짝이는 윤슬 속에서 순수한 미소로 헤엄치고 있다. 마치 지난밤의 꿈속을 헤엄치던 것처럼 자유롭게. 나를 위한 꿈이었던 너는 이제 꿈을 위한 꿈이 되어 꿈속을 헤엄치는구나. 오, 은빛으로 영원히 빛날 꿈이여. 오늘도 나는 너를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