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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 Nov 12. 2020

사랑을 원하는 건 예쁜 욕심이니까

외모와 사랑의 메커니즘을 소설로 이야기하다

이따금씩 사랑도 부와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에도 빈부격차가 있다. 누구는 세상으로부터 넘치는 사랑을 받고, 또 누구는 사랑에 결핍되어 외로움에 허덕이고 있다. 부가 자본주의 시장의 논리로 움직이는 것이라면, 세상의 사랑은 어떻게 흐르고 있는 것일까.


위클리우 2주차 소설 「생태교란종」에서는 사랑의 흐름을 ‘외적 아름다움’이라는 키워드로 파악해 보았다. 물론 사랑을 하고 또 사랑을 주는 많은 이유들이 있지만, 가장 원초적인 것은 단연 시각적인 것들이다. (속물적이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지만, 이것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것이 바로 외적 아름다움, 즉 외모이다.


(아직 소설을 안 읽은 독자분들은 스포주의)


소설 속에는 주인공 수영이 등장한다. 그녀는 외모 컴플렉스를 갖고 있다. 스스로를 예쁘지 않다고 여기는 것이다. 자존감이 없어 을의 연애를 한다. 사랑을 하지만 사랑에 목말라있다. 남자친구는 그녀를 창피해 하기까지 한다.그런 남자친구에게서 어느 날 이별 통보를 받은 그녀는, 시련의 원인을 외모라고 판단한다. 그리고 성형을 하기에 이른다. 성형의 고통 끝에 얻게 된 아름다움. 그녀는 자신을 대하는 세상의 태도가 바뀐 것을 느낀다. 소소한 일상에서부터 친구 관계, 그리고 남자관계까지. 모두 그녀를 호감과 사랑의 태도로 대한다.


나는 세상에 편재한 외모와 사랑의 상관관계에 기초한 일종의 메커니즘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성형으로 아름다움을 갖게 되는 이들은 일종의 ‘생태교란종’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해 토착 생태계를 어지럽히는 ‘황소개구리’처럼.수영은 성형 이후 자신을 둘러싼 인간관계가 온갖 호의와 사랑과 함께 재정립 되는 것을 느낀다. 사실 초고의 분위기는 굉장히 느와르적이다. 마지막 장면은 그녀가 여자들의 아킬레스건인 고등학교 졸업앨범을 공터에 나가 불태우는 장면으로 끝이난다. 이곳의 사랑 생태계의 상위 개체가 되겠다며.


하지만 최종본은 느와르적인 요소는 없앴다. ‘생태교란종’이 어떻게 ‘토착화’되어가는 가에 주안점을 두고 마무리 지었다. 그건 아무래도 수영이라는 캐릭터에 애착이 생겨서인 것 같다. 사랑에 허덕였던 그녀를 원망과 복수가 아닌 사랑의 풍요 속에 살게 해주고 싶었다. 사랑을 원하는 건 예쁜 욕심이니까.





여자를 주인공으로 쓴 소설은 「페르소나를 위하여」 이후 두 번째이다. 이 소설은 위클리우 시즌1과 네이버 오디오 클립에 소개되었는데, 함께 연재한 소설 중 가장 독자 호응이 좋았던 소설이었다. 이번 소설은 독자들에게 어떻게 다가갈 수 있을지, 그 귀추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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