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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 May 13. 2021

소설가는 어떻게 소설을 쓰는가 #1

1. 강렬한 감정은 소설의 씨앗이 된다

소설가는 어떻게 소설을 쓰는가, 그 첫 번째 이야기


- 소설의 영감을 얻는 과정과 그것의 집필 과정, 여덟 편의 소설을 통해 살펴보다



나의 소설집 <<페르소나를 위하여>>에는 여덟 편의 단편소설이 실려있다. 그 첫 번째 소설은 <잃어버린 고향>이다. 이것은 어느 날 한 친척의 결혼식에서 느꼈던 감정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집필하게 되었다. 지난 20대에 나는 친척들 모임에 잘 참석하지 않았다. 그 시간에 책을 읽고 여행을 하는 게 값지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서른에서야 처음으로 여유로운 마음 가짐과 함께 결혼식장으로 향했다. 부모님께서는 일이 생겨서 혼자 가게 되었지만, 부담은 커녕 설레기만 했다. 좋아하는 친척 어른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를 따스하게 반겨줄 것 같던 결혼식은 나를 낯설게 만들었다. 나는 그들을 알고 있었지만, 그 누구도 나를 몰라보고 있기 때문이었다.

6월 출간하는 소설집, <<페르소나를 위하여>>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 나는 방학이면 홍천의 피릿골이라는 작은 마을에 가는 걸 좋아했다. 그곳에 있는 작은 외할아버지 댁에서 한 달씩 지냈다. 할아버지의 농사일을 돕기도 했고, 개울에서 하루 종일 물놀이를 하기도, 강아지와 소들과 뛰어 놀기도 했다. 그곳은 어머니와 핏줄 이어져있는 씨족 마을이었다. 모두가 친척이었다. 어렸던 나는 모든 친척 어른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서로들 나를 자신의 집에서 먹이고 재워주었으며 따스한 사랑을 베풀어주었다. 그중 내가 좋아하는 네 명의 이모들이 있었다. 모두 고등학생과 대학생이었던 그녀들은 내게 따스한 사랑을 주었다. 나는 나를 사랑해주는 어여쁜 이모들이 좋았다. 한 달 동안 홍천에서 지내고 오면 가슴이 충만한 사랑으로 가득 찬 것만 같았다.


홍천 피릿골은 내게 마음의 고향이었다. 이 마음의 고향은 물리적 장소가 아니었다. 관념적 장소였다. 그때 그 시절 나를 사랑해 주었던 이들이 존재하고 있는 곳, 그곳이 바로 마음의 고향이었다. 그래서 서른이 되어 향했던 결혼식장은 내게 마음의 고향이나 다름없었다. 나를 보듬고 사랑해 주었던 이들이 모두 있었으니까. 하지만 고향에서 내가 마주한 건 낯섦뿐이었다. 식장에 있던 친척 어른들은 나를 몰라봤다. 나는 그들을 모두 기억했다. 나를 먹이고, 씻기고, 보듬어주었던 그들을 말이다. 하지만 그들은 내게 존댓말을 건네며 인사를 했다. 애써 나를 소개하자 "어머, 그새 이렇게 컸구나."하고 무덤덤하게 말할 뿐이었다. 심지어 내가 사랑했던 이모들은 계속 내게 존댓말을 썼다.


마음의 고향에 내가 있을 자리는 없었다. 그 시절의 나는 너무나 어른이 되어 있었고, 이제 그들에게 사랑을 받는 것은 그 시절의 내가 아닌 그들의 자식들과 손주들이었다. "왜 날 그때의 나로 대해주지 않으시는 거죠." 나는 따뜻했던 유년 시절의 추억을 잃은 것만 같은 상실감을 느꼈다. 그날 느꼈던 '유년의 행복했던 기억에 대한 상실감'은 하나의 영감이 되어 자라나기 시작했다. 나의 감정은 전혀 다른 시공간으로 이동해 가공의 인물 속에 녹아들었다. 그렇게 탄생한 인물이 '성원'이다. 그는 고아로 한국 전쟁기에 어느 마을에 버려져 입양되게 된다. 자신을 보살피는 한 여인과 온 마을로부터 사랑을 받고 자란 성원은 훗날 성년이 되어 이 마을로 돌아오게 되는데, 소설은 이때 벌어지는 일을 담고 있다.


이 작품 속에서 나의 '유년에 대한 상실감'은 성원을 통해 더욱 세밀하고 정교하게 증폭되어 소설로 구체화되었다. 이것은 결코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 가령 이 감정을 소설로 써야겠다고 염두에 두었던 것도 아니었고, 한국전쟁기에 고아였던 성원이라는 인물을 구상하고 있던 것도 아니었다. 정말 자연스럽게 내 안에서 이야기가 자라났다. 감정이 소설로 환원된 건 그 누군가에도 털어놓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에게 말했다면 그날의 감정은 해소되었을 것이다. 이 강렬한 감정이 그렇게 사라지게 두고 싶지 않아 가슴속에 계속해서 담아두었다. 이 감정은 씨앗처럼 뿌리내려 나의 자양분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씨앗은 나로부터 자라나 소설이 되었다. 내가 갖고 있던 지식, 경험, 정념 등 그 모든 것이 이 씨앗과 한데 엉켜 소설로 환원된 것이다. 그날의 감정은 성원으로 태어났고, 그날의 무대는 한국전쟁기의 어느 마을로, 사랑했던 이모들은 성원을 입양한 한 여인으로, 내가 방학마다 머물렀던 홍천의 피릿골은 성원이 자랐던 어느 작은 마을로 탈바꿈이 되었다. 그리고 이야기는 보다 풍성해져 개연성과 당위성으로 다듬어졌다. 이 모든 창조는 하룻밤 사이에 노트북 앞에 앉아 이루어진 일이다. 나는 내 안에 뿌리내렸던 감정이란 씨앗을 소설로 수확한 셈이었다. 때로 소설은 이렇게 소설가가 느낀 어떤 ‘강렬하고 정동적인 감정’으로부터 무의식적으로 탄생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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