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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엉짱 Feb 28. 2024

금수저와 흙수저

[ 지극히도 평범한 엉차장의 퇴직 살이 ]

늦은 밤, 헬스클럽에 운동을 하러 가는 길에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한 달 만의 연락이라 반가움에 소소한 인사를 주고받았다. 잠시 후 녀석이 분노와 억울함이 뒤섞인 목소리로 하소연을 하기 시작했다.


“나 회사 그만뒀다. 젠장할! 최근에 회장 아들이 경영진으로 합류했는데, 그 사람 하는 말이 몇 달치 월급을 챙겨줄 테니까 그만 회사에서 나가라더라. 불과 며칠 전에 연봉 협상도 끝냈는데 말이야. 대체 이게 말이나 되냐?”

“뭐야? 갑자기? 완전히 어처구니가 없잖아. 회장 아들이면 아들이지, 사람을 그렇게 쉽게 해고하는 경우가 어디 있냐? 이유는 따져봤어?”


내 질문에 친구는 계속해서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로 성토를 이어갔다.


“이번에 자기가 경영진에 새로 합류했으니, 회사의 분위기를 새롭게 바꿔야 한다나 뭐라나?”


듣기만 해도 정말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아직도 이런 회사가 있구나!’


녀석이 다녔던 회사는 상가 임대와 운영 관리를 하는 곳으로, 대학을 졸업한 후부터 약 이십 년이 넘도록 몸담아 온 곳이었다. 그런 곳에서 한순간에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회사를 그만둬야 했던 것이다. 친구의 말을 듣고 있자니 나 역시 분노가 더해졌다. 요즘 세상에 아직도 그런 회사가 있냐고, 금수저면 다냐고.


하지만 생각해 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현실 속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곳이 이디 한두 곳이겠는가? 회사는 오너의 소유물이며 그 안의 구성원들은 작은 부속품으로 언제라도 회사가 나가라고 하면 나갈 수밖에 없는 미약한 흙수저에 불과할 뿐이다. 이런 세상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금수저로 태어나야 하는데 아쉽게도 우리에겐 그런 선택권이 없다. 그냥 흙수저로 태어났으면 흙수저로 살아야 하는 운명을 받아 들어야 할 뿐이다.


녀석과 나는 한 시간이 넘도록 흙수저로 태어난 우리의 운명적 비애를 한탄하며, 다음에 만날 때는 소주나 한 잔 하자는 약속을 남기면서 전화를 끊었다. 회사를 그만두는 형태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희망퇴직, 명예퇴직, 권고사직, 정년퇴직 등등. 적어도 짧지 않은 인생을 함께 한 회사라면 직원들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회사와 이별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는 것이 인지상정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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