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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엉짱 Feb 29. 2024

결혼 살이

[ 지극히도 평범한 엉차장의 퇴직 살이 ]

아내와 나는 결혼한 지 이십여 년이 넘은 동갑내기 부부다. 군대를 제대한 직후 여자 사람 친구를 달달 볶아 소개팅을 하게 되었고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첫 만남을 갖게 되었다. 아담하고 작은 체구에 웃음이 많으며 상대방에 대한 깊은 배려심에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눈이 뒤집혔는지 겁도 없이 만난 지 3개월 만에 아내의 부모님을 찾아뵙고 결혼을 허락해 달라며 넙죽 엎드렸다. 내 나이 이십 초반의 일이었다. 그 순간 부모님의 표정에는 황당함이 역력했다. 아버님께서는 딱 일 년만 사귀어 보고 서로의 마음이 변함없다면 결혼을 허락하겠다고 약속해 주셨다. 


우리는 일 년 동안 그 누구보다도 뜨겁게 사랑을 불태웠고 마침내 아버님과 약속한 일 년째 되는 바로 그날 아버님의 허락을 받아 결혼에 골인하게 되었다.


소꿉놀이 같던 신혼 생활이 한창이었던 겨울의 어느 날, 결혼한 지 일 년도 채 되지 않은 12월 중순에 첫째 딸이 태어났다. 첫째 딸의 출산 소식을 듣게 된 주변 사람들은 얄궂은 질문을 이어갔다.


“혹시 너희들 결혼 전에 사고 친 것 아냐?”


아내와 나는 임신 개월 수까지 따져가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이들에게 우리 딸이 허니문 베이비라는 진실을 오랜 시간 동안 설득시켜야만 했다. 이십 대 중반의 어린 나이였던 나는 아빠가 되었다는 출산의 경이로움이 피부에 와닿지 않았다. 이 아이는 결혼 처음부터 항상 우리 부부 곁에 있었던 것 같았다. 아빠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아무런 준비 없이 첫째 딸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너무나 어렸고 아빠가 처음인 나였다.


아내를 사랑하는 만큼 아이에게도 많은 사랑을 주며 열심히 키웠다. 그로부터 4년 뒤에 둘째 딸이 태어났다. 첫째 딸이 태어났을 때처럼 둘째의 출산에도 특별한 감흥이 생기지 않았다. 이 녀석도 첫째처럼 처음부터 우리 가족의 곁에서 늘 함께 해왔던 것만 같았다. 우리가 결혼했을 때부터 마치 두 딸과 함께 가족을 이루고 있었던 느낌이었다. 다만, 둘째가 태어났을 때 변한 것이 있다면 첫째 딸을 키우는 4년 동안 나는 어설프게나마 아빠가 되어가는 훈련을 했다는 것이다. 


성인이 된 두 딸을 보면 이 녀석들이 갓난아기였을 때가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두 녀석의 어린 시절이 아련한 기억이 되어 버렸다. 항상 드는 생각이지만 나란 사람은 아빠가 될 준비가 너무나 안 되어 있었고, 아이들에게 부족함이 너무나도 많은 아빠였다. 아빠가 되는 교육 좀 받을 걸 그랬다.


이십여 년의 결혼 살이를 해오는 동안  나름 힘든 일들도 많았지만, 그 어떤 가정보다도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왔다. 우리 부부는 가끔 이런 대화를 나눈다.


“만약에 다시 태어나면 나랑 또 결혼할 거야?”


내 질문에 아내의 대답은 늘 한결같다.

 

“아니, 다시 태어나면 결혼 안 할 거야. 혼자 살 거야.”


두 아이를 낳아 키우고 철없는 남편 뒷바라지를 하며 자신의 일을 해내는 것이 아내에게는 많이 힘들고 고된 일이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아내의 대답이 서운하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어찌 되었던, 이번 생은 나와 함께 마무리하고 싶다는 의미로 생각하니까. 아내의 진심이 무엇이든, 그냥 내가 좋을 대로 해석하는 것이다. 


오늘도 우리의 소꿉놀이 같은 결혼 살이는 또 다른 추억을 만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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