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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엉짱 Mar 01. 2024

추억이라는 것

[ 지극히도 평범한 엉차장의 퇴직 살이 ]

나이가 들수록 가슴속에 담아두었던 추억을 꺼내 보는 일이 점점 늘어나는 것 같다. 친구들을 만날 때도 미래의 기대나 희망보다는 과거 속에 담긴 그때 그 시절 함께 했던 우리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나누게 된다. 배낭을 둘러메고 무작정 떠났던 여행 이야기, 이성과의 연애 이야기, 군대 이야기,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았던 당구장 이야기, 강의실보다 더 많이 들락거렸던 호프집 이야기, 단잠을 자기 위해 드나들었던 도서관 이야기 등등......


특히, 대학 시절에는 동기에게 처음 당구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수업이 끝나면 불이 나게 달려갔던, 사장님이 퇴근할 때까지 살다시피 한 당구장에 얽힌 기억이 많이 생각난다. 그때 그 당구장 이름이 학사 당구장이었는데, 학사 학위를 이곳 사장님으로부터 받지 않은 것이 다행스러울 정도였다. 그런데 왜 당구 실력은 좀처럼 늘지 않는지 아직도 미스터리한 일이다.


매일같이 페이스북은 '과거의 오늘'이라는 서비스로 하루도 빠짐없이 지난날들의 기억들을 소환해 준다. 내 페이스북에는 주로 가족들과 함께 한 추억들로 채워져 있다. 특히, 아이들의 성장 과정을 하나하나 새롭게 다시 만나는 설렘을 선사해 준다. 지금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어린 두 딸, 아내와 함께 한 여행의 추억, 놀이공원에서 괴성을 지르던 순간, 노래방에서 탬버린 소리에 흥겨워하던 어린 딸들의 미소가 담긴 순간, 맛있는 음식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갔던 기억, 설레었던 딸들의 입학식과 졸업식 등 지금은 기억의 저편으로 멀어진 많은 추억들을 되돌아보게 된다. 그중에서 아이들이 처음 교복을 입고 찍은 사진은 다시 봐도 소중했던 순간으로 다가온다.


동갑내기 친구 같은 아내와의 추억들도 소중하게 남아있다. 어느 날 사진첩을 보다 디지털 파일로 간직하고 싶은 사진이 있어 페이스북에 저장했다. 불타는 연애 시절 당일치기로 간 우리의 첫 번째 가평 여행에서 찍은 사진이다. 페이스북은 일 년에 한 번씩 잊지 않고 이 사진을 보여주는데 아직도 내 가슴을 설레게 한다. 


둘이 강가를 거닐던 기억, 어설픈 노질을 무릅쓰고 나룻배를 탔던 기억,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의 좌석표가 없어서 입석표를 끊을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돌아오는 내내 미안한 마음에 아내의 눈을 마주 볼 수가 없었던 기억, 그런 내게 오히려 다리 아프지 않냐며 걱정스러운 표정과 함께 연신 소녀 같은 미소를 지어주던 아내의 얼굴......


순수함, 열정, 사랑이 가득했던 젊은 날의 추억들은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보물이다. 흰머리가 하나둘씩 늘어나는 중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내게는 행복한 추억들을 새롭게 채워갈 가슴속 빈자리가 많이 남아있다. 지금은 실직의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새롭게 시작하는 날들은 새로운 추억으로 차곡차곡 쌓아가고 싶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좋은 추억들을 만들어 갈 새로운 날들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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