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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엉짱 Mar 04. 2024

또 하나의 가족

[ 지극히도 평범한 엉차장의 퇴직 살이 ]

우리 집에는 또 다른 가족인 반려견 세 마리가 함께 살고 있다. 가족들이 외출할 때면 세 녀석은 모두 현관 앞까지 따라 나와 꼬리를 힘차게 흔들며 잘 다녀오라고 인사를 한다. 귀가할 때도 가족들의 발소리를 귀신같이 알아듣고는 미리 마중을 나와 가족 한 명 한 명을 반갑게 맞이해 준다. 감정 표현이 지나치게 넘쳐나는 녀석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흐뭇해진다.


첫째는 푸들 암컷으로 미미라 부르는 녀석이다. 18살이 된 노견이지만 여전히 활기찬 에너지가 가득 차 있다. 항상 생동감 넘치게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녀석은 회춘한 것이 확실하다는 생각이 든다. 함께 산책을 나가면 녀석의 뒤를 따라다니기가 힘들 정도다. 그래도 늘 걱정스러운 녀석으로 항상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잘 지냈으면 좋겠다.


둘째 녀석은 슈나우져 암컷으로 쭈쭈라 부른다. 세 녀석 중 가장 애교가 많아 가족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한다. 나는 저녁 식사 후 거실 소파에 등을 기대고 앉아 TV를 보는 습관이 있는데, 녀석은 매일 이때를 놓치지 않고 내게 달려들어 두 앞발로 멱살을 잡으며 입술을 훔친다. 아내와 딸들에게도 쉽게 내주지 않는 이 비싼 입술을 아무렇지도 않게, 너무나 쉽게 훔치는 녀석이다.


마지막 막내는 믹스견 수컷으로 꼬맹이라 부르는 녀석이다. 덩치는 세 녀석 중에서 가장 크지만, 상대적으로 겁이 제일 많은 쫄보 녀석이다. 이 녀석이 우리 가족이 된 데에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 


작은딸이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딸아이는 비 내리는 하교 길 어느 골목 담벼락 밑에서 혼자 떨고 있는 작은 강아지 한 마리를 발견했다. 딸은 녀석과 함께 주인이 찾아오기를 한참 동안 기다렸다고 한다. 다 늦은 저녁이 되어도 보호자가 나타나지 않아 딸은 녀석을 품에 안고 집으로 데려왔다. 하룻밤을 재우는데 사람을 가리지 않고 어찌나 귀여운 짓을 많이 하던지 금세 가족들과 친해졌다. 


다음 날, 우리는 녀석을 집 앞 동물병원으로 데려가 유기견 신고를 했다. 동물병원 원장님은 녀석의 사진과 함께 보호자를 찾는다는 전단을 만들어 동물병원 쇼윈도에 붙였다. 원장님은 보호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녀석을 유기견 센터로 보낼 수밖에 없고, 센터 입소 후 일주일 동안 주인이나 입양자가 나타나지 않을 경우 안락사에 처해진다고 말했다.


며칠 후 동물병원 원장님으로부터 녀석이 유기견 센터에 보내졌다는 연락을 받았다. 녀석이 너무 걱정스러웠다. 우리는 수시로 유기견 센터에 전화를 걸어 녀석이 밥은 잘 먹는지, 주인이나 입양할 사람이 나타났는지 계속해서 확인을 했다. 특히, 작은딸이 안절부절이었다. 센터 담당자는 녀석이 한쪽 구석에서 엎드린 채로 밥도 먹지 않고 힘없이 풀 죽어 있다고 했다. 보다 못한 우리 가족은 긴 회의 끝에, 힘들겠지만 녀석을 셋째로 입양해 키워보자는 결정을 내렸다.


입양을 결정한 다음 날, 우리는 유기견 센터에 전화를 걸어 녀석을 입양하겠다는 뜻을 전하고 입양 조건에 대한 상담을 받은 후 방문 일정을 잡았다. 녀석과의 재회는 센터에 입소한 지 일주일이 지난 후였다. 단지 하룻밤의 기억이었을 뿐인데 녀석은 신기하게도 센터에 방문한 우리 가족을 바로 알아차리고는 작은 솜뭉치가 쉴 틈 없이 굴러다니듯 반갑게 웃으며 센터 사무실을 활기차게 뛰어다녔다. 센터 담당자도 녀석이 이렇게까지 반가워하며 정신없이 뛰어다닐 줄은 상상하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입양 절차를 마치고 녀석과 함께 집으로 향하는 차 안은 온기가 넘쳐났다. 녀석은 그렇게 우리 가족이 되었다. 벌써 십여 년 전의 일이다.


오늘 아침에도 공유 오피스로 출근하기 위해 현관문을 나서는데 아내와 함께 세 녀석이 어김없이 꼬리를 힘차게 흔들며 따라와 배웅을 해주었다. 퇴근 후 집에 들어갈 때도 녀석들은 미리 마중을 나와 집에 들어서는 내 모습을 보며 기쁘게 맞이해 줄 것이다. 매일 집안을 다다다다 시끄럽게 뛰어다니는 말썽꾸러기 녀석들이지만 우리 가족과 평생을 함께 할 또 하나의 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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