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엉짱 Mar 07. 2024

죽마고우의 실직 소식

[ 지극히도 평범한 엉차장의 퇴직 살이 ]

죽마고우인 친구와 저녁 식사를 했다. 이 친구 밥 먹다 말고 대뜸 한다는 말이 회사에서 해고 통보를 받았다는 것이다. 젊은 후배들에게 자신의 자리를 내줘야 하는 상황이라고 한다. 이미 같이 근무하던 비슷한 연령대의 다른 동료들은 후배들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회사를 떠났으며 나마 자신은 오래 버틴 것이라고 했다. 


벗들의 퇴직 소식이 이어지는 걸 보면 이제는 우리 나이가 직장에서 버티기에 쉽지 않은 나이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서글프고 착잡하고 씁쓸한 마음이 밀려왔다.


이 친구와 친해진 것은 대학교 1학년 신입생 OT 때 같은 조가 되면서부터이다. 대학 생활 내내 붙어 다녔고 군대도 같은 시기에 다녀왔으며, 연애와 결혼도 같은 시기에 했다. 꼭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삶의 순간순간을 함께 해온 막역한 사이라 서로가 서로를 너무나 잘 알았다. 그 세월이 벌써 30년이다. 그러고 보니 실직도 같은 시기에 하게 되었다. 정말 죽마고우가 따로 없다. 이 무슨 조화인지...


친구의 첫째 아들은 대학 입시생이고 둘째인 딸은 이제 중학생이라 모두 만만치 않은 교육비가 들어갈 시기이다. 친구는 이 같은 상황에서 회사를 나와야 한다는 현실에 좌절감과 막막함으로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한다. 친구의 하소연을 듣는 내내 가슴이 먹먹해져 왔다. 우리는 상실감에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서로에게 그 어떤 위로의 말도 할 수 없었다.


우리 실직자들은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안정된 직장에서 성실하게 맡은 일을 해내며 월급이라는 보상을 받고, 행복한 가정을 꾸려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불쑥 찾아온 퇴직으로 우리의 삶은 하루아침에 무너져 내렸다. 충격과 혼란에 휩싸였고 아픔과 불안이 우리의 삶을 파고들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실직자에게는 먹고사는 현실의 혹독함만 더해간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한없이 커져만 간다. 당연하게 여겼던 삶의 하나하나가 이제는 당연하지 않은 것들이 되어가고 불안함과 무력함만이 자리를 차지해 간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이 어두운 현실 속에서 허우적댈 것인가. 쥐구멍에도 볕 들 날이 있다고 했다. 우리가 처한 실직의 아픔은 어쩌면 다른 도약을 위한 일시적인 정체 상황일지도 모른다. 새로운 기회로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스스로 길을 찾아야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매일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한다.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난 오늘 최선을 다 했는가?’


친구와 난 위로의 마음으로 서로의 어깨를 토닥이며 각자 가족이 기다리는 집으로 향했다. 길고 침울한 밤이 마음을 더욱 무겁게 만든다.

이전 24화 아버지의 일곱 번째 수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