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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엉짱 Mar 10. 2024

밥 잘 사주는 예쁜 형님

[ 지극히도 평범한 엉차장의 퇴직 살이 ]

교육 사업에 처음 몸담았을 때 함께 근무했던 형님으로부터 카톡 메시지가 왔다. 다음 주에 소주나 한 잔 하자는 것이었다.


“형님, 무슨 일 있어요?”

“무슨 일이 있어야만 하냐? 그냥 얼굴 한 번 보자는 거지.”

“네, 형님. 그럼 다음 주에 봐요.”


퇴직 전 두세 달에 한 번 정도 연락하고 지냈던 형님이 내가 퇴직한 이후로는 한 주에 한 번씩 잘 지내냐고 안부를 물어오고 한 달에 두세 번씩은 밥을 사준다. 형님의 사소한 말 한마디가 고맙게 다가온다.


“내가 아니면 누가 널 챙기겠냐?”


부모님께는 종종 이런 말씀하셨다. 


“사람은 어려울 때일수록 더 들여다보고 챙겨줘야 한다.”


오히려 이 형님이야말로 내 부모님의 말씀을 행동으로 옮기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이다. 때로는 과격해 보이지만 때로는 온화해 보이는 극과 극을 달리는 사람이지만 그는 어려운 상황에 놓인 후배들을 외면한 적이 없다. 그는 항상 진심이었다.


약속한 날이 다가와 형님을 만났고 우리는 먹음직스러운 족발과 함께 시원한 소맥으로 목을 축였다. 형님은 밥 잘 사주는 예쁘지 않지만 예쁜 형님이다. 항상 그래왔듯이 지난날들의 추억에 대한 이야기,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 생활, 잠깐 동안의 실직 시절 이야기, 인생 선배로서의 당부 등으로 우리의 시간은 채워져 갔다. 


이십 년이 넘는 시간을 만나 온 형님이지만 겉모습도, 생각도, 말 한마디도 그 어느 것 하나 변함없이 한결같다. 어떤 사람은 많은 것들이 변하여 마주하기가 불편할 때가 있지만 이 형님과의 만남은 언제나 익숙하고 편안하다. 내일도, 다음 달도, 내년에도 그럴 것이다. 나도 후배들에게 형님과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 보니 이젠 형님도 정년퇴직이 얼마 남지 않았다. 형님, 꼭 정년퇴직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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