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해도 행복한 걸 어떡해?]
술을 즐기지 않는 나는 친구들과의 식사 모임을 무척 좋아한다. 맛있는 음식을 함께 나누며 좋은 사람들과 보내는 시간은 일상에서 소중한 일 중 하나이다. 그래서 며칠 전부터 약속된 모임 날짜가 다가올수록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다. 이번에는 어떤 맛집을 찾아갈지, 또 어떤 음식을 만나게 될지 생각만 해도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오늘의 모임 장소는 최근 메뉴를 업그레이드했다는 이름난 프랜차이즈 무한 리필 고깃집이었다. 이번에는 고기를 마음껏 먹어보자는 작심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사실, 나에게는 위장병이라는 오래된 친구가 늘 함께하고 있다. 이 친구는 주로 모임이 끝난 다음 날이면 나를 더욱 괴롭히는 특징이 있다. 과식이나 매운 음식을 많이 먹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이 친구와 함께해도 좋을 만큼 친구들과의 모임이 기대되었다.
저녁 시간이 되자 우리는 모두 약속 장소로 모였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났다. 우리는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석쇠 위에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빨갛게 불타오르는 숯불 위에서 먹음직스럽게 고기가 익어가기 시작했고 우리들의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한 친구는 둘째의 입시 문제로 머리가 복잡하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둘째가 방송 작가 쪽에 관심이 높다고 한다. 이를 위해서 예고 진학을 준비하고 있다는데 경쟁이 심해 쉽지만은 않은 길이라는 것이다. 또 다른 친구는 어머니의 병환 때문에 한동안 어머니와 함께 운영하고 있는 음식점 문을 닫고 있다고 했다. 여든이 넘은 연세에 음식점 일을 하신다는 것이 체력적으로 쉽지 않다고 한다. 어머니께서는 허리를 못 피고 계시며, 서 계시는 것은 더더욱 힘든 일이라고 한다. 모두 내가 얼마 전까지 겪었던 일들이다.
대화 주제는 자연스럽게 중년의 시기에 직면한 우리들의 공통된 문제로 흘러갔다. 자녀의 학업 문제, 부모님의 건강 문제, 그리고 각자의 직장과 가정에서 겪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요즘 우리 집은 온통 입시 이야기뿐이야. 둘째 녀석이 예고 입시를 앞두고 있어서 말이지. 어찌나 예민한지... 나도 덩달아 신경이 곤두서 있어.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말이야.”
한 친구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우리는 그 친구의 고충을 이해하며 직간접적인 서로의 경험을 토대로 조언을 나누었다. 자녀의 학업 문제는 결혼하고 자녀를 둔 대부분의 중년이 겪는 고민이었다.
“우리 어머니도 얼마 전부터 몸이 좋지 않으셔서 병원을 자주 다니셔야 해. 가게도 한동안 쉬고 있어. 연세가 있으시나 오히려 아프지 않다고 하시면 이상한 일이지.”
다른 친구가 어머니께서 건강 문제로 고생하고 계시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각자의 부모님께서 모두 병환 중에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부모님께 잘해드려야 한다며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했다. 대화는 때로는 진지하게, 때로는 웃음과 농담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 모든 대화는 끝없이 이어지는 고기 접시들 사이에서 이루어졌다. 우리는 양념갈비를 비롯해 준비되어 있는 다양한 부위의 고기를 마음껏 즐겼다.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접시 숫자가 늘어날수록 일상에서 느끼는 크고 작은 스트레스들을 잠시 내려놓기 시작했다.
“이 고기 정말 맛있네! 위장병이 도지든 말든 오늘은 그냥 마음껏 먹어야겠다!”
내가 한마디 하자, 친구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나도 모르게 위장병을 의식하면서도 마음껏 먹는 지금의 순간이 즐겁고 소중했다. 스트레스와 고민이 가득한 일상 속에서 이렇게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시간이 흘러 모임은 점점 무르익어 갔다.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공감하고, 또 함께 웃으며 시간을 보냈다. 위장병이 잠깐 도지든 말든 내게는 지금, 이 순간이 더 중요했다. 우리는 모두 고기 냄새가 가득한 고깃집에서 잠시나마 일상의 무게를 내려놓고 있었다.
모임이 끝나고 나서야 우리는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배는 부르고 마음은 더없이 따뜻했다. 내일이면 위장병이라는 친구가 또 찾아오겠지만, 오늘의 행복한 시간이 그 모든 불편함을 덮어줄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어두워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중년의 시기를 살아가면서 겪는 다양한 문제들이 나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지만, 친구들과의 이런 모임이 내게 큰 힘이 되어 준다는 것과 앞으로도 이런 시간들을 소중히 여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