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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글투에서 그가 보인다 (8)

- 답답한 글투 -

by zaka





# Y의 글 속에서...

Y도 글을 쓴다.

자기만의 작품을 쓰는 일은 어쩌다 한 번.

대부분 작가들의 글을 수정할 때다.


어느 날은 Y가 자기가 쓴 초고라며

영상 컨셉에 맞게 다듬으라는 거다.

긴 산문시 같기도 하고, 에세이 같기도 한

장르 불명의 글이었다.

자기도 뭔가 자기 글이 미심쩍었는지

다른 사람을 통해 검증받고 싶었나 보다.


내가 할 일은

출판 글을 영상 글투로 바꾸는 작업이었다.

판도라 행성에선 나비어를 써야 되듯

영상에선 영상 언어를 써야 돼서

손을 봐야 했다.


보아하니 Y가 준 글을 그대로 영상에 올렸다가는

영상 따로, 글 따로 될 판이었다.

영상에 섞이지 않는 글투였다.


먼저는 Y의 글 세계를 이해해야

영상 언어로 번역할 수 있기에,

먼저 그가 전하려는 글의 의도를 파악했다.

그리고 글이 어떤 그림으로

떠오르는지 머릿속에 그려봤다.


주제의 윤곽은 잡혔으나

잘 명시화되지 않았다.

서사가 불분명했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구조와 흐름이

자연스레 흘러가야 되는데

중간중간 뚝뚝 끊겼다.

왜 서사가 잘 이어지지 않나 봤더니

이야기 방식의 문제였다.


이걸 뭘로 설명해야지?


왜 그런 느낌 있지 않은가.

할 말 다 한 거 같은데,

돌아서면 다 안 한 거 같은

찝찝한 느낌.


분명 다 싸고 나왔는데

나와서는 다 안 싼 느낌.


Y의 글은

말을 하고는 있는데

온전히 마무리 짓지 않고

다음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앞에서 할 말을

앞에서 다 하지 못하고

조금 남겨 놨다가

그걸 뒤에 가서 하고 있는 거다.


말들이 온전히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빙빙 돌고 있었다.


이건 이거다라고

정확히 말 못 하고

에둘러서 말하는

글투가 너무 답답했다.


왜 말을 못 해!
이 남자가 내 남자라고
왜 말을 못 하냐고!



이런 식이면 영상 편집자도 속 터질 일이다.

애매모호한 글에 어떤 그림을 붙여야 할지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야기 방식을 전면 수정했다.

대화법으로 치면 직설법이다.

고쳐 놓고 보니

일단 내 속이 시원했다.

그림도 더 잘 떠올랐다.

사실, 수정 작업 내내

Y 맘에 들지 안 들지는

안중에도 없었다.


고친 대본을

Y의 메일로 보냈다.


며칠 후….


그에게서 답장이 왔다.

허허허허…

실소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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