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걸어온 길, 그리고 걸어갈 길
너 자신을 알라
- 고대 그리스 격언
소크라테스가 한 말로 유명한 "너 자신을 알라"라는 문구는 더 나은 삶을 위한 자아 인식과 자기 성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나라는 사람이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고, 어떤 상황에서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등에 대해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자기 자신에 대해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것을 소위 '메타인지'라고 부르기도 한다.
나 역시 틈틈이 나 자신에 대해 탐구해 왔지만, 흩어진 조각처럼 정리가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삶의 지도'라는 개념을 알게 되었고, 이 방법을 통해 흩어져 있던 조각들을 하나로 이어보고자 한다. 삶의 지도란 내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며, 그 과정 속에서 지금의 내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살피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구상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 인생의 주요한 사건들을 중심으로 나만의 삶의 지도를 그려보기로 했다.
중고등학생 시절, 나는 한국의 교육 시스템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반면, 매체에서 보이는 외국의 자유로운 분위기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 시절, 인터넷 펜팔을 통해 다양한 나라의 친구들과 소통하면서 다른 문화에 대한 호기심은 점점 커졌다. 언어는 서툴렀지만, 한국어가 아닌 언어로 전혀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과 이야기 나눈다는 사실은 묘한 설렘을 안겨주었다. 그들과 소통할수록 좁은 땅에 갇히지 않고 더 넓은 세상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열망이 커졌다.
처음에는 중국어를 배웠지만, 대학 전공은 스페인어로 결정했다. 영어는 기본이고, 중국어는 배우는 사람이 많으니 좀 더 희소성 있는 언어를 선택하고 싶었다. 당시 스페인어의 성장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도 한몫했다. 국립대에서의 5년은 만족스러웠다. 좋은 친구들과 교수님을 만났고, 학비 부담 없이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졸업 후였다. 대학 시절을 너무 즐긴 탓에 진로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다. 막연하게 전공을 살리고 싶었지만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다. 졸업 후 취업에 대한 고민과 통번역대학원 준비를 병행하다가 우연히 중남미지역학 수업을 듣게 되었다. 그곳에서 지역학의 매력을 느낀 나는 통번역 대신 국제지역대학원 진학을 목표로 바꾸었다. 솔직히 말하면, 절반은 취업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한 도피성 선택이었다. 그렇게 대학원에 진학했고, 그 선택에 후회는 하지 않는다. 중남미 지역의 사회 정치에 대해 연구하며 많은 걸 배웠고, 공부 자체도 즐거웠다.
그러나 졸업을 앞두고,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선행연구와의 유사성 문제를 알게 되었다. 논문이 거의 완성되었을 무렵이었는데, 표절 시비를 피하기 위해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그 후 강박적으로 선행연구 분석에 열을 올렸다. 이 과정에서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일이 반복되었다. 연구가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마다 스스로를 의심했고, 무력감에 사로잡혔다. 처음엔 논문을 '잘' 쓰는 것이 목표였지만, 점차 '완성하기만 해도 좋겠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그저 끝내기 위해 달리는 시간들이 이어졌고, 결국 뫼비우스의 띠 같은 그 과정을 지나 무사히 논문 심사를 통과했다. 손에 졸업장을 쥐었을 때, 기쁨보다는 안도감이 더 크게 다가왔다.
대학원 졸업장은 손에 쥐었지만, 남은 것은 너덜너덜해진 몸과 마음이었다. 이제는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다. 졸업과 동시에 집에서는 취업에 대한 압박이 시작되었다. 27살이라는 나이가 가족들에게는 늦은 출발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대학원만 졸업하면 당연히 좋은 직장을 얻을 줄 알았던 기대와 달리 나는 석사 학위만 가진 백수였다. 아무 데나 들어가고 싶진 않았다. 학부와 석사 과정을 일관되게 이어온 만큼 전공을 살리고 싶었다. 하지만 외국어 전공을 살릴 만한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았고, 해외에 나갈 자신도 없었다. 결국, 전공을 살리겠다는 포부는 현실의 벽에 막혀 점점 희미해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가족들의 인내심도 바닥을 보였다. "이제는 어디든 들어가서 돈이라도 벌어야 하지 않겠냐"는 말들이 날카롭게 다가왔다. 자존감은 바닥을 쳤고,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의지도 점점 사라졌다. 서류가 떨어지고, 면접에서 고배를 마실 때마다 나는 내 가치를 의심했다.
그렇게 막막한 시간을 보내던 중, 가족 지인의 추천으로 외국계 회사에 들어가게 되었다. 원하는 직무도, 산업도 아니었지만 그저 백수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입사 3일 만에 "가방끈 길다고 다 똑똑한 건 아니네" 따위의 말을 들었고, 한 달도 안 되어 선배에게 "네 인성이 어떻든 난 너랑은 일하기 싫다"라는 직격탄을 맞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입사 한 달도 되지 않은 신입이 뭘 알았겠냐 싶고 그런 말을 내뱉는 사람의 인성을 의심해봐야 했겠지만, 당시의 나는 모든 것이 내 잘못인 것만 같았다. 매일 오늘은 또 무슨 소리를 들을까 두려워하며 출근하고, 매일 내 탓을 하고 눈물지으며 퇴근했다. 가족들에게 어렵다고 몇 번 이야기했지만 모두들 "다들 그렇게 산다"며 참으라 했다. 그렇게 몇 달을 버티다가, 결국 '이렇게는 정말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퇴사를 결심했고, 고향으로 내려왔다.
고향으로 돌아왔다고 해서 모든 것이 나아진 것은 아니었다.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다시 백수가 되었고, 가족들의 시선은 따뜻하지 않았다. 받아주긴 했지만, 하루빨리 취업하길 바라는 눈치였다. 무기력한 날들이 이어졌다. 아침이 오면 또 견뎌야 할 하루가 시작될 뿐이었다. 삶의 의미를 찾지 못했고, 하루하루가 그저 버티기 위한 시간 같았다.
사실 내가 살아있는 이유는 단순했다. 내가 죽으면 남겨질 사람들의 슬픔이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때때로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내가 없으면 가족들이 더 편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조차도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무기력한 나를 바라보는 가족들의 시선은 더욱 나를 짓눌렀다.
그러던 중, 아주 작은 일들이 내 시선을 붙잡기 시작했다. 멋진 노을, 맛있는 아이스크림 같은 사소한 것들이었다. 아무 의미 없던 하루에 작은 이유가 생겼다. 어차피 죽음을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 두고 살던 시절이라 '어차피 죽을 거면 아이스크림 하나 더 먹고 죽을까?', '아, 그때 못 본 영화 보고 싶은데 그거 보고 죽을까?'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 식으로 하루, 이틀씩 죽음을 유예했다.
사실 나도 잘 살고 싶었다. 다시 긍정적이고 활발했던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을 다 해보자고. 병원을 찾았고, 상담과 약물 치료를 시작했다. 의사는 호르몬 문제라고 했고, 치료를 통해 충분히 나아질 수 있다고 했다. 반년 가량 치료를 받으며 천천히 상태가 호전되었다. 그 무렵, 우연히 국제보건 ODA 분야 인턴 기회가 생겼다. 생각해 본 분야는 아니었지만 전공을 살릴 수 있는 일이라 도전했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따뜻했고, 그들의 격려는 내게 큰 힘이 되었다. 자신감을 회복하면서 업무도 점점 익숙해졌고, 나는 다시 살아가고 있었다.
20대 후반 시간이 마냥 힘들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대학원 시절 친구의 추천으로 시작한 어학원 블로그 원고 아르바이트는 내게 색다른 즐거움을 주었다. 영어 콘텐츠뿐만 아니라 팝송, 영화, 여행지 소개 등 다양한 주제로 글을 썼고, 시간이 지날수록 블로그 방문자 수도 점차 늘어갔다. 신생 블로그가 평균 800명 이상의 방문자를 기록할 때는 작은 성취감마저 느껴졌다.
내가 쓴 글에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고, 댓글을 남기며 고맙다고 전할 때면 뿌듯했다. 글을 쓰는 그 시간 자체가 즐거웠고, 내가 만든 콘텐츠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기분 좋았다. 그러나 취업을 하게 되면서 아르바이트를 그만두어야 했다. 내가 키운 블로그였지만 결국 남의 것이었기에 모든 콘텐츠를 두고 떠나야 했다. 그때 결심했다. 남의 콘텐츠가 아닌, 나만의 콘텐츠를 키워보겠다고.
콘텐츠 제작은 여전히 내게 흥미로운 일이지만, 본업으로 삼기에는 아직 불안정하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연구자로 걸어온 길 역시 내게는 소중하다. 현재 나는 국제보건 ODA 분야를 떠나, 작은 민간연구소에서 사회과학 연구원으로서 지방정책 컨설팅을 맡고 있다. 때때로 국제무대에서 활약하고 싶었던 과거의 포부를 떠올리면 '내가 현실에 안주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지금 걸어가고 있는 길이 내가 원하는 방향이라는 안도감도 있다. 국제무대는 아니지만, 내가 하는 일이 실제 국민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에 반영된다는 점에서 충분히 의미가 있다. 사회과학 연구 분야를 선택한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하는 일이 실제 사람들의 삶에 도움이 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리 기업 대신 공공성을 띤 정부기관이나 비영리기관에서 일하기를 선호했다. 내가 하는 일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나아지게 만든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이와 함께 콘텐츠 창작에 대한 열정도 여전히 남아 있다.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낯선 사람들이 내 글을 읽고 반응을 남길 때 느껴지는 뿌듯함은 특별했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즐거움을 주는 콘텐츠를 만드는 일은 내게 큰 의미가 있다. 블로그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유튜브, 에세이, 웹소설 집필에도 관심을 가지고 조금씩 공부해 나가고 있다.
앞으로도 나는 사회과학 연구자로서의 길을 걸어갈 것이다. 공공성을 지닌 정책 연구를 통해 세상에 작은 변화를 만들어가며, 동시에 내가 좋아하는 콘텐츠 창작도 계속할 것이다. 큰 방향은 유지하되, 작은 변화들을 통해 나만의 길을 꾸준히 걸어갈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