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리사 산수르(Larissa Sansour)
US suspends most visas for Palestinian passport-holders, reports say
이틀 전, BBC의 기사를 읽었다. 미국이 팔레스타인 여권 소지자들의 비자를 대부분 중단했다는 소식이었다. 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미국 방문을 막는 걸까?
팔레스타인은 얼마 전 UN에서 ‘최고 단계의 기근 상태’라고 공식 선포되었다. 불과 지난주에는 학자들이,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행하는 행위가 Genocide - 종족멸망 - 임이 확실하다고 발표했다. 무려 23개월 만에 내린 결론이었다.
음식도, 교육도, 의료도, 심지어 이동의 자유조차 없는 땅에서 살아가는 이들을 미국은 또다시 봉쇄한다. 무엇이 두려운 걸까?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세계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그 사실이?
그런 생각을 하던 중, 우연히 보게 된 작품이 있다.
아,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먼저, 지구 밖 다른 행성에 자리를 잡게 된 것일까?
아니면, 도저히 팔레스타인인들이 이 지구상에 더 이상 갈 데가 없어서 근 80년을 지구를 헤매다가 결국 우주로 탈출하게 된 걸까?
팔레스타인 출신 아티스트 라리사 산수르(Larissa Sansour)의 2009년 필름 작업이다. 2010년 두바이 국제영화제에서 단편 부문 상을 받았던 이 작품은 제목처럼 팔레스타인의 ‘우주로의 탈출’을 다룬다.
If we do not have a space ro live decently on earth, then no problem, we will settle and thrive on the moon.
지구에서 우리를 위한 공간이 없다면, 문제없다. 우리는 달에 터전을 잡고 계속 번영할 것이다.
달에 정착한 팔레스타인. 낯설고 기이하지만, 어쩐지 뭉클하다. 슬프고 흐뭇하면서도 씁쓸하다. 작가는 유머와 상상을 통해 슬픔과 고통을 다른 차원의 이야기로 바꾸어낸다.
라리사 산수르는 1973년 예루살렘에서 팔레스타인인 아버지와 러시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첫 번째 인티파다 시기에 영국으로 건너가 공부했고, 이후 미국에서 학업을 이어간 뒤 현재는 런던과 코펜하겐을 기반으로 작업한다. 그는 여전히 팔레스타인을 종종 방문하는데, 그때마다 자연스럽게 존재하던 풍경 사이로 새로운 모습들이 생겨나는 것을 목격하며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허구인지’ 끊임없이 묻는다.
초기에는 다큐멘터리적 성향이 강한 영상을 제작했지만, 점차 추상적이고 초현실적인 내러티브, 나아가 공상과학(Sci-fi)적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작업들을 하고 있다. 그녀의 작업에는 종종 서구 제국주의를 풍자하는 요소가 스며 있으며, 슬픔과 고통을 유머와 상상으로 치환해 인간과 인류에 대한 다층적인 성찰을 이끌어낸다.
달에 간 팔레스타인이라니. 우리가 보아온 달 착륙 영화의 주인공은 대부분 미국인이었다. 팔레스타인 출신의 문화비평가이자 컬럼비아 대학 교수였던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는 그의 저서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에서 서양을 이성적이고, 과학적이며, 미래지향적인 이미지로 그렸다고 말했다. 반면, 그들이 만들어낸 '동양'이라는 환상은 감정적이고, 비논리적이며, 체계가 없어 지배받아야 마땅한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고 주장한다.
어느새 우리 머릿속에도 서양이 규정한 '동양'의 이미지가 내재되어, 우리 스스로를 그렇게 믿고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팔레스타인의 이미지 역시 농부, 순수함, 토속적이라는, 긍정적으로도 보일 수 있지만 사실은 제국주의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개념 속에 갇혀 있는 것이다.
라리사의 또 다른 작품 Nation Estate(2012)는 이 고정관념을 정면으로 뒤흔든다. 초고층 빌딩 내부에 팔레스타인 도시와 유적이 층층이 들어선 미래적 풍경은, 두바이의 버즈 칼리파를 연상케 한다. 관광포스터처럼 보이지만, 팔레스타인을 초현대적 건물 속에 가둬놓는 이 이미지는 어딘가 어색하고 불편하다.
여기서 라리사는 팔레스타인을 ‘전통적이고 토속적인 땅’으로만 인식해 온 세계의 시선을 뒤집는다. 그리고 우리에게 묻는다. 팔레스타인을 향한 이미지는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부터가 허구인가?
그러니까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에드워드 사이드가 지적했듯, 서양이라 불리는 서유럽과 비교해 ‘동양’이라 묶인 지역은 지정학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얼마나 방대한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하나의 이미지로 일반화하는 것은 완벽한 오류이며, 우리는 그것을 무의식적으로 믿으며 살아가고 있다.
이 사실을 모르는 건 아니다. 라리사는 바로 그 지점을 파고든다. 비주얼로, 영화로, 일상적이지만 놀라게 한다. 모르는 척하지 말라고. 불편하더라도 진실을 직시하라고. 그리고 익숙하게 외면하던 대상을 낯설게 한번 바라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