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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전쟁

이브라힘 누바니(Ibrahim Nubani)

by 정물루

역사적으로 ‘평화로운’ 시대는 그리 많지 않았다. 평화란 분쟁이나 갈등 없이 조화로운 상태를 말한다고 한다. 조화란, 서로 다른 것들이 균형 있게 어우러지는 상태 - 같음이 아니라 다름을 인정하면서 어우러지는 것이다. 사람 사이의 조화, 사회의 균형, 자연과의 공존, 그 어느 것도 쉽지 않다.


그래서일까. 수많은 노래 가사와 영화, 책들이 평화를 갈망한다. 성당 미사가 끝나기 전, 신부님이 서로에게 인사를 나누라고 할 때도 사람들은 ‘평화를 빕니다’라고 말한다. 너무 일상적이지만, 참 간절한 말이다.


'매일매일이 전쟁이야.'

정신없이 회사생활을 하던 시절, 내 하루는 늘 그랬다. 보이지 않는 예민한 정신적 싸움부터, 밀려드는 업무, 처음 만나는 사람들, 하기 싫은 서류 일까지. 잠깐 시간이 나면, 나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매일 이렇게 전쟁통 같은 시간들을 보내고 있는 건지 생각하다가 괴로워지곤 했다. 코로나19 때 텅 빈 거리를 바라보며 정말 인류에게 평화가 올 수 있는 건지 의심이 들었다.


중동 지역은 지금도 대부분 전쟁 중이거나, 전쟁 발발 위험이 높은 곳이다. 두바이에 거주한 지 12년이 넘었지만, 요즘처럼 전쟁이 가까이 느껴졌던 적은 없었다. UAE는 탈중동 국가라며, 무슬림 국가 같지 않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그렇다면 ‘무슬림 국가답다’는 건 대체 어떤 걸까?


2014년 두바이에 처음 이주했을 당시, 시리아는 이미 내전에 휩싸여 있었다. 시리아 출신 동료 중 한 명은 정부를 비판하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가, 소셜미디어 검열에 걸려 더 이상 자기 나라로 입국할 수 없게 되었다고 했다. 그때는 중동도 잘 몰랐고, 내전이라는 말도 무슨 말인지 와닿지 않아 그냥 멍하니 듣기만 했다. 공산당도, 북한도 아니고 21세기에 그런 일이 있다고? 현실감이 없었다.


그 후로, 팔레스타인 출신 동료들이 해외 출장에서 겪는 불편함을 직접 목격했고, 외국인인 나조차 이란에 출장을 갈 때 머리 스카프를 둘러야 했다. 사우디 출장에서는 아바야를 입고, 혼자 쇼핑몰을 돌아다닐 수도 없었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아바야 착용 의무도 없고, 여성 단독 외출도 가능하다.) 요르단 암만의 전자상가를 둘러볼 때, 나 혼자만 여성이었다는 사실도 기억난다.


아라비안 반도와 중동 지역은 인류 최초의 문명인 메소포타미아의 발상지였고, 찬란한 문화의 중심지였다. 그런데 오늘날 이 지역은 왜 이렇게 많은 억압과 가난이 남아 있는 걸까? 종교색 짙은 문화는 오히려 더 평화롭기는커녕, 크고 작은 갈등과 전쟁이 끊이지 않는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이스라엘이 있다.


같은 아브라함의 후손인 아랍인과 유대인의 갈등은 이슬람의 시작과 함께 격화되었고,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후, 아랍인들과의 신경전과 무력 충돌은 쉬지 않고 이어져왔다.

언제나 그 피해는, 무고한 사람들이 고스란히 떠안는다.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없을 때, 나는 그리기 시작했다.”


이브라힘 누바니(Ibrahim Nubani)는 1961년, 이스라엘 영토 안에 있는 팔레스타인 북부 도시 아크레에서 태어났다. 가족과 조상은 모두 팔레스타인인이지만, 법적으로는 이스라엘 시민이다. 학교에서는 히브리어로 교육받고, 유대 국가의 상징을 외우며 성장했지만, 집에서는 아랍어를 쓰고 추방당한 민족의 기억과 함께 살아간다.


이는 단순히 이민자 2세로서의 정체성 혼란과는 다르다. 한국계 미국 교민들과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다. 누바니는 본인이 원해서 국경을 넘은 것도, 돌아갈 수 있는 나라가 있는 것도 아니다. 같은 이스라엘 시민이라 해도, 팔레스타인 출신 사람들은 '2등 시민’으로 취급당한다.


실제로 얼마 전 이란이 이스라엘의 텔아비브를 공격했을 때, 일부 지역에서는 팔레스타인인들이 대피소 접근에 제약을 받았다는 증언도 있었다.


“어릴 적부터 시온주의 교육과 팔레스타인 생활 사이에서 살았다.”


정체성과 현실이 분열된 삶. 그 틈에서 그는 무너져버렸다.

1987년부터 시작된 팔레스타인 민중의 대규모 저항운동, 이른바 ‘인티파다’는 누바니에게도 큰 충격이 되었다. 그는 극심한 불안과 공포, 감시, 정치적 긴장 속에서 조현병 진단을 받았다. 이스라엘 교육 체계 속에서 정체성을 지우며 살아야 했던 일상과, 팔레스타인이라는 존재의식을 포기할 수 없었던 내면 사이에서 균열이 일어난 것이다.


“나는 팔레스타인 출신이지만, 이스라엘 교육 시스템에서 자랐고, 말하지 않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림은 말하지 않는 방식으로 말할 수 있는 도구였다.”


Image 6.jpeg Red, 2013, Oil on canvas


그의 그림은 구성이 아닌 상징으로 말한다.


색과 눈, 선, 겹겹이 쌓인 형태들은 누바니의 감정이고, 기억이고, 삶의 모습이다.

<Red>라는 작품에서는 여러 시점과 시간대가 한 화면 안에 중첩된다.

조현병적 내면에서 비롯된 환각과 분열, 억압된 감정들이 화폭 위에서 서로 충돌하고, 다시 균형을 이루려 한다.


그의 작품을 보면, 전쟁은 총과 폭탄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말하지 못하게 하는 것, 잊게 만드는 것, 기억을 지우는 것 - 그 또한 폭력이다.

누바니는 그 침묵에 맞서, 그림이라는 방식으로 평화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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