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사벨라(Steve Sabella)
이스라엘인 6명과 팔레스타인인 1명이 팬티만 입고 무표정으로 서있는 사진 작품을 보고 잠시 착각했다. 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가자-이스라엘 전쟁 중에 본 뉴스 기사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휴전 협상 조건이 2023년 10월 하마스가 잡아간 이스라엘 인질 200명 중 한 명과, 이스라엘 감옥에 갇아 놓은 팔레스타인 수감자 200명과 교환하자는 제안이었다.
왜 잡혀간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풀어주는 의도는 좋지만, 무슨 협상이 이런 식인가? 어떤 로직으로 한명과 200명의 목숨이 같아질 수 있는 걸까? 무자비한 공격으로 어린 아이들까지 죽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이스라엘을 규탄할 때마다, 그들은 여전히 2023년 10월 하마스의 선재 공격으로 피해자로 코스프레를 하고 있었다. 그날의 이스라엘 사망자 약 1,000명정도의 복수를 위해, 오늘도 지금 이 시각까지 가자지구의 6만명을 죽이고 있다. 숫자가 전부가 아니지만, 팩트만 봐도 너무나 불공평하다.
다만, 이 작가가 보여주려고 했던 것은 그런 숫자가 아니었다. 정체성에 관한 담론이었다.
옷을 모두 벗겨놓으니, 누가 이스라엘인인지 팔레스타인인지, 출신이나 배경보다도 다른 것들이 더 눈에 들어왔다.
이 사람들은 왜 여기 서 있을까? 서로 아는 사이인가? 배가 고픈 걸까? 무표정 속에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 별것 아닌 디테일들 - 텔이 많네, 표정이 굳어 있네 - 이런 시시콜콜한 것들이 더 궁금해졌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것은, 이 7명 중 단 한 명인 팔레스타인 출신 인물이 바로 작가 자신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는 어떻게 이스라엘인 6명을 설득해 이런 사진을 찍을 수 있었을까?
회색 뒷벽은 이스라엘이 예루살렘과 서안지구(West Bank) 사이에 세운 8미터 높이의 장벽을 의미한다. 서안지구에 사는 무슬림들의 예루살렘 출입을 막기 위해 세운 벽이다.
이 작품은 스티브 사벨라(Steve Sabella)가 2008-10년에 작업한 것이다.
카타르 도하의 마타프(Mathaf) 미술관에서 열린 Told, Untold, Retold 전시의 작품 중 하나인 〈Settlement - Six Israelis & One Palestinian〉이라는 실제 사이즈 사진 작업이다.
스티브 사벨라라는 이름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아랍식 이름이 아니다. 그 역시 테드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내가 어디 출신인지 계속 묻는다. 이스라엘인도, 팔레스타인인도, 서양 어딘가에서 왔다고 생각한다. 팔레스타인이라고 말해도 ‘그렇게’ 생기지 않았다며 믿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예루살렘 출신인 그는 고향을 찾아가도 이제는 이방인처럼 느낀다고 했다. 언어, 종교, 문화, 라이프스타일이 이미 새롭게 자리 잡아, 토박이가 토박이가 아닌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니까 스티브는 스테레오타입, 사회적 통념과 정체성의 헤게모니를 예술을 통해 파고들고 있다. '세계는 하나'라는 글로벌화된 오늘날, 오래된 통념은 그 경계가 흐려지기는 커녕 오히려 더 진해져 가고만 있다.
이스라엘인도, 팔레스타인인도 모두다 이방인인 그 땅에서, 무엇을 위해 싸우는 것일까? 인간은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해왔다. 다만, 머릿 속에 한번 박힌 통념은 왜 변하지 않는 걸까?
"팔레스타인인도 어떤 이념보다 먼저, 한 인간이다. (A Palestinian is a human being first before being a cause.)"
- 마흐무드 다르위시 (Mahmoud Darwish)
어느 나라 사람인지, 어디 출신인지, 어떤 종교를 믿는지, 정치 성향이 좌파인지 우파인지를 따지기 전에, 우리는 모두 인간이라는 사실부터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조금 더 말랑해졌으면 좋겠다.
“열 길 우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것들은 분석할 수 있지만, 정작 인간 스스로는 분석하고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우리가 역사 속에서 수많은 목표를 세우고 성취해온 것처럼, 이제는 사회 속에 만연한 통념을 깨뜨려 보겠다는 목표를 세워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