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지 않아 좋다
'집'을 주제로 대형 설치미술 작업을 하는 서도호 작가의 인터뷰에서 '집'하면 떠오르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서도호 작가는 한국을 떠나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했고, 미국과 영국에서 생활하고 있다. 육체적으로는 집을 떠났지만, 오히려 정신적으로는 집과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고 했다. 이상한데 이상하게 들리지 않았다. 나 역시 해외에서 인생의 반을 살았기에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공간이란 안에 있을 때는 잘 의식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 공간을 떠나 멀리서 바라보면 전혀 다른 풍경으로 다가온다. 한창 공간 디자인을 기획할 때, 내가 꼭 중요하게 생각했던 뷰가 바로 Bird’s Eye View였다. 새의 눈으로 내려다본 전체 공간을 잡아 렌더링을 돌리면, 방문자의 동선에 문제가 없는지, 전체적인 레이아웃이나 색감, 소재, 형태가 조화를 이루는지 한눈에 볼 수 있다. 그 공간 안에서의 퍼스펙티브 뷰나 디테일 뷰에서는 보이지 않던 큰 그림이 Bird’s Eye View에서는 분명하게 드러났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시선을 좋아했다. 멀리 떨어져 높이 올라가야만 보이는 것들이 있었고, 그것이 늘 새로웠기 때문이다.
‘집’ 하면 무엇이 떠오르냐는 질문에, 서도호 작가는 특이하게 교복이라고 대답했다. 부모님과 함께 살던 시절에는 중고등학교 교복을 매일 입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대부분은 중고등학교 6년은 교복을 입는다. 그리고 남자들은 군대까지 이어진다. 요즘은 한국 복무 기간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지만, 그러니까 인생 80년, 아니 이젠 백 년이라고 하면 교복 입는 기간은 길어야 겨우 십년 안쪽이다. 인생의 십 퍼센트 남짓 입는 옷인데 그 철저한 복장 규율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 보려고 살짝이라도 다른 애들이랑 달라 보이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한다. 양말이나 신발, 치마 길이, 머리 스타일이라도 어떻게든 살짝 삐딱함이 목적이었다.
그리스 신화 속 오르페우스가 뒤돌아보지 말라는 말을 듣고도 끝내 뒤돌아보듯, 사람 마음이란 참 묘하다. 나는 중학교 생활을 한국에서 맛만 보고 바로 홍콩으로 이사했다. 그곳에도 교복은 있었다. 벌써 30년이 지났으니 달라졌나 하고 학교 홈페이지를 찾아보니, 놀랍게도 여전히 그대로였다. 원래 교복은 불변하는 것일까.
하지만 홍콩의 교복은 달랐다. 교복은 입되, 머리 모양이나 액세서리, 신발 등에 대한 규제는 거의 없었다. 교복 안에서 오히려 자유가 허락된 셈이다. 나는 홍콩에서 귀를 뚫었다. 귀걸이를 하고 학교에 갈 수 있다는 사실에 말도 못 하게 설레었던 순간은 지금도 선명하다. 그 경험 때문에 교복이 싫지 않았다. 홍콩에서의 교복은 단순히 통일성과 소속감을 강요하는 장치가 아니었다. 소재와 디자인도 활동하기에 편했고, 학교에 속해 있다는 자부심까지 느낄 수 있었다. 여학생들의 하의는 긴바지, 치마바지, 반바지 중에서 고를 수 있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대학 점퍼처럼 소속을 드러내는 상징 같은 역할이었던 것 같다. 관리와 통제를 받는다는 의식 없이, 교복을 입고도 자유롭고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었서 교복입은 모습이 안정적이고 자연스러웠다.
최근 한국도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두바이에 가족 여행을 온 친구에게 들었는데, 이제는 머리 길이나 염색, 메이크업, 악세사리까지 규제가 거의 없다고 한다. 친구는 아침마다 화장하고 반지와 팔찌까지 챙겨 학교 가는 딸아이를 보며, 짜증이 나면서도 질투가 난다고 하소연을 했다.
교복을 입고 친구들과 나눴던 수많은 이야기들, 함께 갔었던 장소들, 먹고 마시던 모습들이 차곡차곡 추억으로 쌓여서 종종 생각이 난다. 어떤 사물은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그것과 함께했던 시공간 속으로 돌아가게 해 준다. 지금도 홍콩에 남아 있는 친구들의 아이들이 이제는 우리가 다니던 학교에 다닌다. 소셜미디어에서 그 아이들이 나와 같은 교복을 입고 있는 모습을 보면 참 묘연해진다. 30년이 이렇게 빨리 흘렀구나. 그리고 다음 30년도, 또 금방 지나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