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팔레스타인 라말라의 Galley79에서 있었던 일이다. 지금은 팔레스타인의 대표 화가인 슬리만 만수르의 솔로 전시가 있었다. 만수르도 이스라엘의 미술 검열과 압수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었기에 가장 중요한 작품들은 제외하고 전시를 위한 작품들 설치를 마쳤다. 그러나 전시 오픈을 한 다음 날, 갤러리 문은 잠겨 있고 열쇠는 사라졌다. 이스라엘 경찰이 가져간 것이다.
경찰은 왜 이렇게 정치적이고 민족적인 그림만 그리냐며, 차라리 꽃이나 나무, 누드화를 그리라고 충고했다고 한다. 팔레스타인을 떠올릴 만한 그림은 전부다 불법이라며 장식용, 예쁜 그림들을 그리라고. 그런 그림이라면 전시도 가능하고 자신들도 구입할 것이고, 예술가들은 작품을 팔아서 돈도 벌 수 있는데 왜, 굳이 이런 그림들을 그리냐는 것이 었다. 이런 예술은 팔레스타인에게도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팔레스타인을 떠올리게 하는 어떤 것도 예술 작품이 될 수 없다며, 수박을 그려도 전부 압수될 거라고 하였다. 빨랑, 초록, 검정, 하얀색의 팔레스타인 국기의 컬러들이 있는 수박 말이다. 이 경찰과의 불쾌한 대화 속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슬리만 만수르는 그 후에 수박을 그의 작품 곳곳에 그렸고, 결국 수박은 팔레스타인을 상징하는 하나의 심볼이 되었다.
소속감은 스스로 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선택할 수 있는 옵션도 아니다.
예술은 감정에서 나오는 경험을 꺼내는 작업이다. 평소 생각하지 않았거나 경험하지 않은 것을 억지로 그리고 쓰고 만든다는 건, 잠시 가능할 수는 있지만 거기엔 영혼이 빠져 있다. 예술을 보는 이들은 곧바로 안다. 창작자의 마음이 담기지 않은 작품에는 Soul이 없다는 걸. 예술을 잘 몰라도, 그걸 창조하는 사람의 마음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그런 느낌이 있다.
그래서 홈쿡 푸드, 핸드메이드 물건들, 손편지에 감동이 배가 된다. 단순히 결과물이 아니라, 그걸 만드는 사람의 시간과 공간, 노력과 마음을 함께 받기 때문이다. 예술 작품이라는 결과물이 아닌, 사람과 사람 사이에 그 작품이 존재하는 것이다.
예술은 세상을 바꿀 수 없다.
만수르는 젊은 예술가들에게, 예술로 세상을 바꾸려 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다만 자신이 좋아하는 것, 사랑하는 것을 그리라고 한다. 그러다 보면 그 사랑이 전해지고, 예술은 사람들의 삶을 아주 조금씩, 1mm씩 움직이게 된다. 원래 소중한 건 시간이 걸리는 법이다.
그렇기에 팔레스타인 예술가들에게 정치적이지 않은 그림을 요구한다고 해도, 꽃을 그려도, 수박을 그려도 결국 그들의 마음은 무의식적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다.
어떤 배경 설명도 없이, 불현듯 특정 작품이 마음에 들어오는 순간이 있다. 전시회나 아트 페어에서 수많은 작품 중에 갑자기 시선이 멈추거나, 꼭 갖고 싶다는 충동이 일어나는 순간.
왜일까. 내 과거가 불려왔을 수도 있고, 기억이나 감정의 어딘가에 닿았을 수도 있다. 예술가가 무의식적으로 표현하듯, 뷰어 역시 무의식적으로 끌리는 그 화학 작용이 늘 궁금하다.
그래서 나는 음악, 공연, 책, 예술을 더 깊이 들여다본다. 나를 모르는 나를 알기 위해서. 남의 눈에 비친 내가 아닌, 세상의 기분이 아닌, 내가 보는 ‘정확한 나’는 어떤 사람일까.
*이 글은 슬리만 만수르(Sliman Mansour) 의 인터뷰를 참고했습니다. https://youtu.be/Zcw9WYVih1s?si=wo3hsY-zdx0H3pM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