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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의 게르니카

말락 마타르(Malak Mattar)의 색을 잃은 시간

by 정물루

말락 마타르(Malak Mattar)는 런던의 대표적인 예술 학교인 센트럴 세인트 마틴(CSM, Central Saint Martins)에서 개인전을 연 첫 팔레스타인 예술가이다. 센트럴 세인트 마틴은 런던예술대학(UAL) 소속의 세계적인 예술·디자인 학교로, ‘세계 미대의 하버드’라는 표현을 들을 정도로 영향력이 크다. 이곳에서는 학생 전시가 비교적 흔하지만, 외부 예술가의 단독 개인전은 거의 열리지 않는다. 보통은 유명 큐레이터나 국제적으로 잘 알려진 아티스트, 혹은 동시대에 주목받는 신진 작가만 초대된다. 그런 점에서, 팔레스타인 특히 가자(Gaza)라는 폐쇄적이고 검열이 심한 지역 출신이며, 아직 20대 중반에 독학으로 출발한 말락 마타르가 CSM에서 개인전을 했다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말락의 개인전은 올해 5월에 열렸다.


컬러풀한 작업으로 알려진 말락은 약 1년 동안은 흑백 작업만을 이어갔다. 런던으로 이주해 석사 과정을 밟으며 팔레스타인에 남아 있는 가족과 친구들의 사망 소식을 접한 뒤, 말락은 더 이상 작품에 색을 입힐 수 없었다고 한다.


Image 5.jpeg 말락이 런던에서 작업하던 흑백 작품 - No Words (2024)


말락이 처음 그림을 시작한 것은 2014년 이스라엘의 50일간 가자 침공 당시였다. 당시 14세이던 말락은 집에 갇힌 채, 가장 친한 친구를 잃은 슬픔을 그림으로 풀어냈다. 이후 이스라엘에서 열린 팔레스타인 문화 박람회에 참가하기 위해, 드물게도 이스라엘 당국의 허가를 받아 예루살렘에 갈 수 있었다. 말락은 고통과 독립심으로 가득 찬 여성 초상화에 전통 팔레스타인 예술의 모티프를 결합한 작업을 선보였고, 당시 아마도 가자 출신 예술가 가운데 가장 어린 나이에 이스라엘 여행 허가를 받은 사례일 것이라고 한다.


가자의 180만 주민은 이스라엘이나 이집트의 허가 없이는 영토를 벗어날 수 없다. 최근 약 10년간 이스라엘이 가자 주민에게 여행 허가를 내주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전력과 물 부족에 항상 시달리며, 삶 전반이 이스라엘의 통제 속에 놓여 있었다. 말락은 자유 없는 삶은 견딜 수 없었다며, 도망치듯이 새로운 사람들을 창조하기 위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10대 후반부터 말락은 팔레스타인의 여성들, 올리브 숲과 과일들을 밝고 화려한 색감으로 그린 작품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2023년, 런던에서 순수미술 석사 과정을 위한 장학금을 받았지만, 같은 해 9월 이스라엘의 방해로 출국에 실패했다. 결국 전쟁 발발 하루 전인 2023년 10월 6일에야 가자를 떠날 수 있었다. 이후 전쟁으로 가족, 동료 예술가, 친구들이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을 접하며 말락은 색을 잃고 흑백 작업을 이어간 것이다.


1937년 피카소의 <게르니카>가 전쟁의 끔찍함을 통해 인류애(Humanity)의 파괴를 드러냈다면, 말락은 그 맥락을 이어가며 가자의 현실을 자신만의 흑백 언어로 표현했다. 말락의 센트럴 세인트 마틴 전시는 CSM 역사상 첫 팔레스타인 단독전이라는 상징성을 지녔지만, 동시에 여러 제약과 모순도 있었다. 원래는 몇 주 동안 이어질 예정이었으나, 정치적 압력과 조직적 침묵 속에서 전시는 단 3일만 일반에 공개되었다. 말락은 오프닝을 앞두고 아무런 소식도 듣지 못해, 전시 자체가 취소되는 것이 아닐까 두려웠다고 한다.


말락은 런던 미대 동료 학생과 스태프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고 여러 인터뷰에서 밝히며, 예술계 안팎에서 팔레스타인에 대한 지지와 인식이 얼마나 제한적인지, 그리고 우크라이나 사례와 비교되는 불평등이 얼마나 뚜렷한지를 몸소 경험했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이번 전시는 단순히 개인의 승리로 끝나지 않는다. 팔레스타인의 한 소녀가 세계 무대에 나아가 자기 목소리를 크게 낸 사건이었다. 말락의 작품은 파괴와 상실의 기록이자, 동시에 회복과 저항의 흔적으로 남는다.


'정신적 상처와 상실은 예술에 어떤 흔적을 남기는가?'

말락의 예술 여정을 통해, 다시 묻게 된다.






*The Art Newspaper의 기사를 참고하여 쓴 글입니다.

https://www.theartnewspaper.com/2025/05/09/malak-mattar-becomes-first-palestinian-artist-to-get-solo-show-at-londons-prestigious-central-saint-martins


https://www.theartnewspaper.com/2016/06/08/young-gaza-artist-malak-mattar-shows-in-jerusal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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