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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나의 첫 중국

그땐 그랬다.

by 정물루

그러니까 홍콩은 내가 가본 최초의 '외국'이었다. 얼마 전,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가본 나라 체크하는 포스팅이 유행이라 한번 해봤는데 그 리스트에 있던 나라 중 거의 80%는 가본 듯 했다. 대학교 졸업 후, 해외 전시와 마케팅 기획 일을 하면서 나의 20대 후반과 30대는 끊임없는 출장과 사이사이의 짧은 여행으로 쉴틈 없이 돌아다녔다.


홍콩에서 일년쯤 살았을 때, 당시 한국과 중국은 '수교'라는 걸 맺었다고 했다. 나라끼리도 수교를 맺어야 서로 경제나 방문이 자유로워진다는 걸 처음 알았다. 그리고 대만과 미국과의 관계 때문에 한국은 그동안 중국과는 수교를 맺지 못했었다.


지금 찾아보니 한국이 중국과 수교를 맺은건 1992년도라고 한다. 그렇다면 내가 홍콩에 살기 시작했던 1994년에는 이미 수교가 이루어진 뒤였다. 어린 나는 이런 자세한 디테일은 몰랐지만, 아빠가 중국으로 가셔야 한다는 소식을 듣고 왜 가셔야 하는지를 알아보다가 이런 나라 간의 복잡하고도 미묘한 관계와 약속들에 대해서 처음 알게 되었다.


당시 중국과의 수교를 맺으면서 15억 중국인을 대상으로 한 엄청나게 큰 시장이 열렸다. 한국의 대기업부터 작은 사업을 운영하던 분들까지, 모두 중국 진출의 꿈을 안고 중국에 회사를 오픈하기 시작했다.




30년이 지난 지금, 최근 몇년간 그때와 비슷한 상황을 본 것 같다. 여기 두바이에서...


바로 사우디아라비아. 2030 리야드 엑스포부터 네옴시티 프로젝트까지 수천 건의 프로젝트들이 진행 중이고, 외국 자본과 인력들이 엄청난 관심과 기회을 기대하며 사우디로 몰려들고 있다. 그중 허황된 프로젝트들은 캔슬이 되거나 축소되었고 이제는 조금씩 실현 가능한 것들로 모양을 잡아가고 있는 듯하다.


90년대의 중국은 지금 사우디처럼 기회와 꿈의 공간이었다. 그 공간이 오픈되었고 홍콩에서 일하던 아빠는 중국에 법인을 세우기 위해 홍콩 바로 위에 있는 선전(심천, Shenzhen)으로 파견을 가시게 되었다. 그렇게 부모님은 주말부부가 되셨고 우리도 아빠를 주말에만 볼 수 있었다. 사실 아빠를 따라 홍콩으로 이사를 갔지만, 아빠는 홍콩에서도 출장이 잦아서 매일 얼굴을 보는 일은 거의 없었다.


지금처럼 실시간 채팅이 가능하지도 않았던 시절, 주말부부는 전화로만 연락이 가능했겠지? 선전과 홍콩 구룡은 붙어 있어서 서울에서 수원 정도의 거리라고 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다른 나라'였기 때문에 전화도 국제전화였다. 홍콩은 국가 전화번호가 +852, 중국은 +86이다. 그리고 국경을 넘어가야 했기 때문에 출입국 심사도 필수였다.


한번은 선전에 아빠를 보러 갔다. 홍콩 외에는 처음 가보는 외국이었다. 기차를 탔는지, 아니면 페리를 탔는지는 확실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금방 도착했다. 출입국 심사대에서 중국에 사는 중국 사람을 처음 봤다. 무표정한 얼굴로 제복같은 걸 입고 중국말로 뭐라고 샬라샬라.


학교에서 중국어를 제2외국어로 배우고 있었지만 중국 본토 사람한테 처음 들은 중국어는 왠지 낯설었다. 홍콩 사람들이 쓰는 광둥어와도 또 다른 듯하고. 여튼 멍하게 쳐다보니 또 뭐라고 중국말로 샬라샬라.


누군가 도와줬던 것 같은데 어떻게든 출입국 심사대를 지나고 드디어 중국이라는 곳으로 발을 디뎠다. 터미널을 나오자마자 보이는 건 길가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냥 소풍 나온 모습들은 확연히 아니었고 터미널에서 나오는 사람들을 향해서 다가오기 시작했다. 꽃 한 송이를 들고 다가오는 아이들도 한두 명이 아니었다. 아빠가 아이들에게 돈을 주지 말라고 했다. 돈을 주면 멀리서 보고 또 계속 온다고. 늘 마음이 따뜻했던 아빠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충격이었다.




첫 인상부터 홍콩과는 너무 달랐던 중국이었다. 사람들은 비슷하게 생겼고 비슷한 말을 했으며 음식도 비슷했지만, 홍콩은 뉴욕의 타임스퀘어같았고, 40분 거리에 있는 중국은 한국에서 가본 시골보다도 더 시골같았다. 영어로 된 간판도 전혀 볼 수가 없었다. 모든 사이니지는 중국어로만 되어있었고 맥도널드도 없었다.


그리고 내가 마지막으로 선전에 간 건 2010년이었다. 15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2010년의 선전은 초현대적인 도시로 변해 있었다. 1995년에 터미널에서 느꼈던 그 ‘중국’의 인상은 마치 지난 세상에서 보았던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으니.


'중국' (년도 미상), 출처: 핀터레스트, 작가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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