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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봉낙타 Jan 23. 2024

이브 클라인(Yves Klein), <블루 모노크롬, 무제>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풀꽃 1>



나태주 시인의 <풀꽃 1>을 읽으며 이브 클라인의 <블루 모노크롬, 무제> 작품이 떠올랐다. 오래, 또 자세히 보고 있으니 뭔가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엔 '이건 그냥 컨셉추얼한 실험적인 작품인가. 나도 블루 컬러는 좋아하지. 이것도 미술작품이라 할 수 있나.'라는 삐딱한 생각으로 작품을 슬쩍 봤다.


이래저래 자주보고 계속 보니 궁금해졌다.

이 세상에 사연 없는 건 없다고 무슨 사연으로 블루로만 그린 걸까?

분명히 비난하는 사람들도 많았을 텐데 이런 작품을 그리고 세상에 내놓은 작가는 대체 어떤 사람일까?

...

로 시작해서 우리 집에도 하나 걸고 싶다. 까지 해서

여러 생각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그림멍에 빠지고 있었다.



나는 언제 '멍' 때리지?


두바이 다운타운의 버즈칼리파가 보이는 씨티 뷰나 멋진 클래식 자동차 쇼룸은 아니다. 이래저래 '나 좀 봐줘'하니 볼 게 너무 많다.


내가 요즘 멍 때릴 때는 대부분 구름멍과 불멍. 일 년 내내 구름 한 점 없는 두바이 하늘에 10월과 2월 사이에는 간간히 구름이 있다(이 기간에 두세 차례 비가 오기도 하니). 새벽 일출 전 후로 하늘에서 슬로우모션으로 움직이는 구름을 보면서 구름멍을 하고 있으면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위로가 된다. 매일보고 자주 봐도 같은 하늘은 없고 매일매일 그저 어메이징.


사막에서 밤에 장작불을 피워놓고 장작이 타는 걸 보면서는 불멍에 빠진다. 멍해지면서 아무 생각도 감정도 없어지는 무(無)의 상태가 된다. 머리가 텅 빈 느낌. 불교에서 말하는 '마음은 비우는' 상태와 비슷한 것 같다. 그럼 멍 때린다는 건, 메디테이션, 즉 명상과 치유?!


Yves Klein, Untitled Blue Monochrome, 1959


이브 클라인도 사람들이 멍 때리기를 의도했나?


두바이의 버즈칼리파 주변의 많은 빌딩들처럼 이브 클라인도 한 그림에 여러 색을 사용하면 문제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두 가지 색만 모여도 라이벌로 변해 서로가 더 많은 관심과 시선을 끌려고 할테니. 평화와 명상을 의도한 이브 클라인은 모든 위험을 제거할 솔루션으로 '모노크롬', 대담하게 한 컬러로만 그림을 그리기로 했다.


그런데 왜 블루만 쓴 걸까? 


블루 모노크롬 작품 다음에 노란색, 녹색 모노크롬 작품들이 있으면 그 블루 모노크롬의 잔상이 남아 보는 사람에게는 결국 다시 혼란을 줄 수 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브 클라인이 좋아하는 컬러이자, 그의 고향인 프랑스 니스의 바다와 하늘의 블루 컬러를 선택했다. 나비, 나무, 꽃 같이 특정한 오브젝트를 연상시키는 컬러가 아닌, 형태가 없는 공기와 하늘의 컬러인 블루가 보는 사람들에게 무한한 상상과 명상이 되도록.




화려한 두바이 도시 빌딩 뷰뿐만 아니라 핸드폰만 열면 보고 듣고 읽을 게 너무 많은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이제 나한테 멍 때리는 시공간은 필수인 듯. 내 눈과 머리에도 휴식과 침묵이 필요하니까. 멍 때릴 수 있는 그림, 구름, 불이 있어서 다행이다. 이브 클라인에게도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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