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브 클라인(Yves Klein), <블루 모노크롬, 무제>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풀꽃 1>
나태주 시인의 <풀꽃 1>을 읽으며 이브 클라인의 <블루 모노크롬, 무제> 작품이 떠올랐다. 오래, 또 자세히 보고 있으니 뭔가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엔 '이건 그냥 컨셉추얼한 실험적인 작품인가. 나도 블루 컬러는 좋아하지. 이것도 미술작품이라 할 수 있나.'라는 삐딱한 생각으로 작품을 슬쩍 봤다.
이래저래 자주보고 계속 보니 궁금해졌다.
이 세상에 사연 없는 건 없다고 무슨 사연으로 블루로만 그린 걸까?
분명히 비난하는 사람들도 많았을 텐데 이런 작품을 그리고 세상에 내놓은 작가는 대체 어떤 사람일까?
...
로 시작해서 우리 집에도 하나 걸고 싶다. 까지 해서
여러 생각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그림멍에 빠지고 있었다.
두바이 다운타운의 버즈칼리파가 보이는 씨티 뷰나 멋진 클래식 자동차 쇼룸은 아니다. 이래저래 '나 좀 봐줘'하니 볼 게 너무 많다.
내가 요즘 멍 때릴 때는 대부분 구름멍과 불멍. 일 년 내내 구름 한 점 없는 두바이 하늘에 10월과 2월 사이에는 간간히 구름이 있다(이 기간에 두세 차례 비가 오기도 하니). 새벽 일출 전 후로 하늘에서 슬로우모션으로 움직이는 구름을 보면서 구름멍을 하고 있으면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위로가 된다. 매일보고 자주 봐도 같은 하늘은 없고 매일매일 그저 어메이징.
사막에서 밤에 장작불을 피워놓고 장작이 타는 걸 보면서는 불멍에 빠진다. 멍해지면서 아무 생각도 감정도 없어지는 무(無)의 상태가 된다. 머리가 텅 빈 느낌. 불교에서 말하는 '마음은 비우는' 상태와 비슷한 것 같다. 그럼 멍 때린다는 건, 메디테이션, 즉 명상과 치유?!
두바이의 버즈칼리파 주변의 많은 빌딩들처럼 이브 클라인도 한 그림에 여러 색을 사용하면 문제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두 가지 색만 모여도 라이벌로 변해 서로가 더 많은 관심과 시선을 끌려고 할테니. 평화와 명상을 의도한 이브 클라인은 모든 위험을 제거할 솔루션으로 '모노크롬', 대담하게 한 컬러로만 그림을 그리기로 했다.
블루 모노크롬 작품 다음에 노란색, 녹색 모노크롬 작품들이 있으면 그 블루 모노크롬의 잔상이 남아 보는 사람에게는 결국 다시 혼란을 줄 수 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브 클라인이 좋아하는 컬러이자, 그의 고향인 프랑스 니스의 바다와 하늘의 블루 컬러를 선택했다. 나비, 나무, 꽃 같이 특정한 오브젝트를 연상시키는 컬러가 아닌, 형태가 없는 공기와 하늘의 컬러인 블루가 보는 사람들에게 무한한 상상과 명상이 되도록.
화려한 두바이 도시 빌딩 뷰뿐만 아니라 핸드폰만 열면 보고 듣고 읽을 게 너무 많은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이제 나한테 멍 때리는 시공간은 필수인 듯. 내 눈과 머리에도 휴식과 침묵이 필요하니까. 멍 때릴 수 있는 그림, 구름, 불이 있어서 다행이다. 이브 클라인에게도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