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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봉낙타 Feb 11. 2024

정주고 마음 주고

민화 <백선도>

마지막으로 가족 아닌 누군가에게 선물을 한 적이 언제였더라? 생일 파티나 크리스마스 디너에 초대되거나 전시 오프닝 꽃다발 정도였다. 계절이 바뀌거나 날씨가 변한다고 선물을 주거나 안부 전화를 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누군가가 두바이 겨울이 끝나고 50도에 가까운 여름이 시작하려고 하니 건강 잘 챙기라며 비타민이나 과일 같은 선물을 보낸다면 반가우면서도 상당히 의심스러울 듯하다.


'나한테 뭘 바라나?'

'갑자기 이 사람 왜 이러지?'

'나 말고 아는 사람들한테 전부 보낸 건가?'

'무슨 사업이라도 하려나?'


김은희, <백선도>, 85 x 120cm, 2023/ 제12회 아랍에미레이트 라셀카이마 아트 (RAK ART) 2024 전시


<백선도>는 부채를 그린 그림으로 단오에 아름다운 부채를 서로 나누며 더위를 건강하게 이겨내려는 우리 선조들의 풍습을 그림에 담아낸 것이다. 무엇보다도 더위를 이겨내라고 부채를 서로 주고받는 모습을 상상하면 우리 선조들은 확실히 로맨틱하고 정이 많았던 것 같다.


부채 디자인도 모란, 산수, 나비 등 부귀, 영화, 출세, 재물, 행운, 건강, 기쁨 등을 상징하는 길상화가 곱디곱게 그려져 있다. 컬러와 모양도 굉장히 다양하다. 부채의 뼈대 재료부터 마감재까지 정성스레 하나하나 연구하고 그림을 그리고 완성품을 만들어 선물로 주며 건강과 행복을 빌다니!


직접 만나지 않고도 온라인 기프트 카드로 선물을 주고받는 요즘 세상과 비교하면 꽤 비효율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삼사백 년 후에 그런 기프트 카드를 발견한다면 참 외로운 사람들이었구나, 하지 않을까 싶다.


요즘 들어 효율적인 게 늘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메세지 앱에서 이야기하는 것보다 비디오 콜로 얼굴 보며 하는 스몰토크가 더 따뜻하고, 그것보다는 직접 만나면 사람한테서 느끼는 기운이나 감정은 사뭇 다르다. 보이지 않는 공감각적 그런 기운을 받는다.


<백선도 초본>, 한국-조선, 65 x 43cm, 소장품 번호: 남산 1432/ 국립중앙박물관


얇은 먹선으로 그린 국립중앙박물관의 <백선도 초본>은 총 7면이고 각 부채 면에는 컬러링북처럼 흑, 홍 등 어떠한 색이 칠해지는지 적혀있다. 바탕에는 숫자가 적혀있어 병풍으로 제작할 것을 염두에 두고 순서를 정한 흔적으로 보인다. 현재까지 알려진 병풍으로 된 백선도는 10점 내외인 것으로 파악되며 구성이나 레이아웃이 약간씩 다르고 비슷비슷한 디자인으로 이루어져 있다.


당시 복사기나 포토샵, 실크스크린의 기술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이 초안을 활용해서 각각 조금씩 다른 백선도를 만들었다. 삼사백 년 전의 민화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면 알수록 매력적이다. 작가 이름 없는 그래피티나 벽화처럼 당시 사람들의 생활과 생각을 유추하는데 이것보다 좋은 자료는 없을 듯.


장식적 특징의 민화는 포크 아트(Folk Art)와 결이 같고, 민화 중에서는 사회와 대중에 대한 스토리를 비주얼화한 작업들도 있으니 미국의 팝아트(Pop Art)와도 비등하다. 또 정규 트레이닝 없이 그린 취미미술 작품 같은 아웃사이더 아트(Outsider Art)와도 비슷한 류.


풍족하지 않았지만 민화를 그려 서로 나누며 행운을 빌었던 우리 조상님들. 확실히 로맨틱하고 정이 있었다. 그리고 충분히 표현하지는 않아도 한국 사람들은 여전히 그렇다는 사실이 참 좋다.


일 년에 딱 한번 구정 때마다 연락이 오는 친구가 있다. 소셜미디어도 하지 않아 일년내내 아무 소식이 없다가 정말 딱 한번 연락한다. 메세지를 받는 나도 쑥스러운데 그 친구는 오죽할까? 벌써 십 년째다. 한 번도 거른 적이 없다. 언젠간 만나게 될, 만나지 않더라도 누군가가 어디선가 나를 기억해 주고 행복을 빌어준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날 나는 한번더 웃는다. 정주고 마음주고 사랑도 주는 사람이 좋다. 해피뉴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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